[취재뒷담화]거래소 ‘오락가락’ 고무줄 공시 잣대

장진원의 기사 더보기▼ | 기사승인 2017. 04. 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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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장진원 기자 = 기업의 주요 경영사항에 대해 답변을 요구하는 ‘조회공시’는 투자자 보호를 위한 한국거래소의 대표적인 제도입니다. 언론 보도나 풍문에 대해 해당 기업에 직접 사실관계를 묻고, 기업은 당일 오후, 늦어도 이튿날 정오까지는 답을 해야만 합니다.

18일 기아자동차의 인도공장 설립 뉴스가 좋은 예입니다. 1조8000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새롭게 해외거점 구축에 나섰다는 내용으로, 거래소는 이날 장 마감 후인 오후 3시 53분에 기아차에 조회공시를 요구했습니다. 기아차는 이튿날 오전 “공장부지 확보를 검토 중이며, 투자규모는 확정된 바 없다”고 답했습니다.

드러난 과정만으로는 별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날 조회공시를 요구하기까지 거래소가 보여준 대응은 시총기준 세계 15위 거래소라는 위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보도 직후 “조회공시 요구가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거래소 공시 담당자는 “공장 설립 비용이 기준에 미치지 않아 ‘조회공시 요구 계획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공장·신기술 투자’ 항목의 경우 자기자본의 5%(기아차는 1조3200억원 수준) 이상만 공시 대상이라는 답변이었습니다.

거래소는 그러나 불과 몇 시간 뒤 말을 바꿔 조회공시 요구에 나섰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오전 보도에는 투자금이 1조600억원이었는데, 오후 들어 1조8000억원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조 단위의 주요 경영사항에 대해 ‘오전과 오후 기사 내용이 달라졌다’는 이유만으로 공시를 요청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다 하니 마치 허무개그의 한 장면을 본 것 같은 허탈함이 밀려왔습니다.

조회공시 요구 기준도 불합리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자산총액 2조원 이상 대규모법인의 경우, 자기자본의 5%를 넘는 투자에 대해서만 조회공시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작위적이긴 하나 기아차의 투자 규모가 ‘1조3190억원’이라고 보도됐다면 어땠을까요? 거래소 기준대로라면 조회공시를 통한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 없습니다.

지난 10일 거래소는 LG디스플레이의 ‘구글 1조원 투자 보도’에 대해 조회공시를 요구했습니다. 기아차의 투자 규모가 애초 파악한 것처럼 1조600억원이었다고 가정해보죠. 이대로라면 기아차 주주들은 LG디스플레이 주주들에 비해 주요 경영정보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특정 기업이 아닌 상장사 전체에 적용되는 기준을 채택할 수밖에 없다”는 거래소의 설명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닙니다. 하지만 제도는 현실을 담아내는 그릇이 돼야 합니다. 애초 조회공시 요구 제도가 투자자 보호와 정확한 정보 제공을 위한 것임을 감안하면 조회공시 기준에 대한 합리적인 변경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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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w@as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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