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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세실리아 리 수녀의 사랑과 헌신의 공공외교

[기고]세실리아 리 수녀의 사랑과 헌신의 공공외교

기사승인 2017. 05. 2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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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종연
추종연 주 아르헨티나 대사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에서 자동차로 1시간을 달려 낄메스(Quilmes) 시 인근의 비샤 이따띠(Villa Itati)에 도착하니 권총을 찬 군청색 복장의 경찰 네 다섯명이 둘러싼다. 눈빛을 통해 그들이 긴장하고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외국대사의 방문이 처음이라고 한다. 아르헨티나에서 비샤(Villa)는 고급주택이 아닌 무허가 빈민촌을 의미한다. 굳이 비교하자면 미국 도시의 할렘이나 브라질의 파벨라(Fabela) 같은 곳이다. 조금 있으니 낡은 승용차에서 내린 작은 체구의 세실리아 리 수녀가 반갑게 우리 내외를 맞이한다.

세실리아 수녀와 경찰들의 안내를 받아 빈민촌 안으로 발을 디디니 시궁창 냄새가 코를 찌른다. 쓰레기와 진창을 피해서 걷다가 이내 포기했다. 이곳에는 하수시설이 없고 전기·가스·상수도 시설도 변변치 않다. 청소차가 들어오지 못해 쓰레기 수거가 어렵다. 잘 드러나지 않은 아르헨티나의 속살이다. 아르헨티나에는 대도시 인근에 2000곳이 넘는 빈민촌이 있으며 300만 가까운 인구가 그곳에 산다. 거주민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우리 일행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얼굴의 윤곽은 백인인데 햇볕에 그을려 거무스름하다. 그들의 눈길이 섬뜩하게 느껴지지만 경찰들이 있어 안심이 된다. 그들의 남루한 옷과 지친 눈빛에서 삶의 고단함도 느껴진다. 세실리아 수녀가 보이자 환한 모습으로 인사를 한다. 주고받는 눈빛에서 신뢰감이 묻어난다.

세실리아 수녀가 사는 집안을 둘러보니 작은 침대 2개, 페인트칠이 듬성듬성 벗겨진 나무식탁, 20년이 족히 됐을 뚱뚱한 텔레비전(TV) 그리고 벽에 붙은 낡은 싱크대가 전부다. 폴란드 수녀와 둘이 지낸다고 한다. 위험해서 현지인들도 발들이기를 꺼려하는 이 빈민촌에서 두 외국인 수녀가 지치고 소외된 사람들을 보듬고 있다. 세실리아 수녀는 넝마주이들을 모아 협동조합을 만들어 기계를 설치하고 수거된 플라스틱 병이나 골판지를 공동 가공해 판다. 그녀는 이 공동체를 기반으로 소외된 아이들을 위한 교실을 열고 미혼모 쉼터를 마련했으며 마약중독자 재활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세실리아 수녀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짓눌려온 거주민들에게 자존감을 알게 해줬다.

“가난한 이웃과 나누는 삶이 즐거우며 이와 같은 삶이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이 작은 여인에게서 예수님의 모습을 본다. 많이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함은 커녕 더 갖고자 이전투구(泥田鬪狗)하는 우리들의 삶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세실리아 수녀를 격려하고자 이곳을 찾았지만 오히려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가져간다. 우리 동포사회도 성당을 중심으로 세실리아 수녀의 활동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오고 있다. 그녀가 1976년 이 땅에 발을 디딘 한인 이민자 가정의 딸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우리 동포들에게 자긍심을 갖게 해주고 있다.

“세실리아 수녀가 보여준 헌신적인 활동에 대해서 아르헨티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감사하고 있다. 세실리아 수녀를 지원하는 한인사회와 한국대사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주(州)정부로서도 화재피해 복구와 수녀님의 구제활동을 최대한 지원하겠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정부 사무총장의 말이다. 지난 해 말 누전으로 재활용품 가공공장이 전소된지라 수심에 잠긴 세실리아 수녀 생각이 나서 운을 떼었는데 그 반응이 시원하고 고맙다. 현지 언론도 세실리아 수녀의 활동을 여러 차례 보도했다. 넝마주이 협동조합 결성이 빈민촌의 빈곤탈출 모델로 신선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세실리아 수녀는 마크리 대통령정부의 ‘빈곤제로(Pobreza Zero)’ 정책을 이미 오래 전부터 선도적으로 시행해오고 있는 셈이다.

세실리아 수녀의 삶은 소외된 아르헨티나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헌신으로 엮어져 왔다. 아르헨티나 사람들보다도 더 아르헨티나 사람들을 사랑하는 한국인이다. 그녀는 이역만리(異域萬里) 아르헨티나에서 온몸을 던져 대한민국 공공외교를 하고 있다. 자랑스러운 그녀의 한국이름은 이영향이다.

세실리아 리(오른쪽 끝)
세실리아 리(오른쪽 끝) 수녀와 추종연 주아르헨티나 대사 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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