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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화 칼럼] 한여름 오이단상

[고대화 칼럼] 한여름 오이단상

기사승인 2017. 06. 26.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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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없던 시골집, 더운 날 먹던 어미니의 오이냉곡에 대한 추억과 중국서 만난 파이황과로 잊는 무더위
고대화 대표
고대화 아우라미디어 대표프로듀서
서울 한복판 사무실 마당에 조그만 텃밭이 있습니다. 상추와 고추가 주로 심던 작물인데, 올해는 직원들이 오이를 조금 심었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오이는 상추나 고추에 비해 가꾸기가 그리 쉬운 채소는 아니더군요. 넝쿨로 자라기 때문이죠. 지주를 세우고 물을 많이 주어야 했습니다. 한마디로 손이 많이 가는 식물인거지요. 그렇게 열심히 해도 노균병이나 진딧물 등 병과 해충이 적지 않다고 하니 저 같은 얼치기 농부가 제대로 된 오이를 수확해서 먹는 것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도 예로부터 어느 집 할 것 없이 농부의 집에 오이넝쿨이 자라고 있었던 걸 보면 오이는 없어서는 안 될 반찬이고 청량제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이는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채소입니다,

아직 6월인데 폭염주의보랍니다. 올해 얼마나 더우려고 벌써 이러는지, 지레 걱정이 됩니다. 땀이 많은 체질인지라 더운 날에는 앉아만 있어도 땀이 흐르거든요. 어린 시절 시골에 놀러갔을 때 밖에서 뛰어놀다 더위에 지쳐 집에 들어오면 형님들하고 손으로 펌프질해서 물을 퍼 올려 시원하게 등물 한 번 하지요. 그리고는 대야에 떠있는 오이 척척 씻어서 한 입 베어 먹던 추억이 생각납니다. 냉장고도 없던 시골집에 오이만큼 시원한 게 또 있었을까요. 한 입 베어 먹을 때 입안에 차오르는 그 맛, 아삭하는 소리와 함께 시원하고 개운한 맛은 오이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맛입니다. 그 연하고 상큼하고 비릿한 향기와 함께요.


물외냉국 - 안도현

외가에서는 오이를/물외라 불렀다 물외는
금방 펌프질한 물을 퍼부어 주면/좋아서 저희끼리 물 위에 올라앉아
새끼오리처럼 동동거렸다

그때 물외의 팔뚝에/소름이 오슬오슬 돋는 것을
나는 오래 들여다보았다

물외는 펌프 주둥이로 빠져나오는/통통한 물줄기를 잘라서
양동이에 띄워놓은 것 같았다

물줄기의 둥근 도막,/물외를 반으로 뚝 꺾어
젊은 외삼촌이 씹어 먹는 동안/외할머니는 저무는 부엌에서
물외 채를 쳤다

햇살이 싸리울 그림자를/마당에 펼치고 있었고
물외냉국 냄새가/평상 위까지 올라왔다

펌프질 한 시원한 물에 동동거리던 오이라. 오이는 여름채소로 시원한 성질이 있어 화상을 다스린다고도 합니다. 저에게 오이는 뜨거운 여름이고, 시원한 여름이며, 맛있는 여름입니다. 이른 저녁, 식구들이 평상에 둘러앉아 어머니가 해 주신 오이냉국을 먹던 생각도 납니다. 어머니는 찬 물에 미역을 불려 넣고, 오이를 체 썰어 넣고 식초 약간 뿌린 냉국을 주셨지요. 양은 국그릇에 담긴 시원한 오이냉국 한 사발은 여름 뙤약볕에 몸과 마음이 지친 식구들의 더위를 달래주는 청량제였던 거지요.

저는 드라마일로 중국에 자주 가는 편인데, 중국요리 중에 파이황과(拍黃瓜)라는 음식이 있습니다. 중국식 오이무침입니다. 오이를 때려서 부수면 오이 속 씨를 터트려 오이향이 더욱 진하게 나지요. 파이황과의 파이(拍)는 치다 라는 뜻으로 오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때려서 부순 오이에 소금·마늘·식초로 간단히 무쳐내어 바로 먹는 거지요.

이 파이황과를 처음 먹고 중국음식에 감동했습니다. 가장 빠른 시간에 맛이 배어들게 하기 위해서 절단면을 칼로 자르지 않고 부수어서 간을 하는 거지요. 재료를 잘 알고 성질을 이해하지 못하면 절대 생각할 수 없는 음식입니다. 잘 하는 집에서 먹는 파이황과는 새콤하며 아삭거리며 달콤하고, 시원하며 고소하기까지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오이소박이와 더불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오이요리라고 생각합니다.

오이 / 허수경

어라,
아직 여름길은 제대로 나지 않았는데/오이넝쿨의 손은 하늘을 더듬더라
그때 노란 꽃은 후두둑 피기 시작하더라

아직 여름길은 나지 않았는데/바다로 산책을 나간 새들은
오이 향을 데리고 저녁이 닫히기 전 마을로 돌아오더라

오이꽃에서는 바다의 향기가 나더라

바다에 빠진 태양빛 같은 새들의 수다 속에서
꽃은 지고 오이 멍울이 화반에서 돋아나더라

여름길이 열리고 그 노란 꽃 가녘에
흰 나비는 스르르 속옷을 열더니 쪼그리고 앉더라
먼 사랑처럼 기어이 휘어지면서 오이가 열리든 말든

마당에 노란 오이꽃이 피었습니다. 이제 뜨거운 여름이 열리겠지요. 넝쿨이 먼 사랑처럼 휘어지며 오이가 익어가면 아주 더운 날, 오이 두어개 잘 따서 하나는 오이냉국을, 하나는 파이황과를 해 먹어 볼 요량으로 오늘도 잡초를 좀 뽑아 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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