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의 한숨 “귀국하니 정치권은 제자리걸음만…”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전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입장하며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11일 송영무 국방부장관·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을 며칠 늦추고 여야 협상 결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야권이 두 후보자에 대한 임명을 단행할 경우 추가경정 예산안과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물론 앞으로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고위공직 후보자에 대한 청문절차도 올스톱 시키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는 상황을 감안한 불가피한 조치로 풀이된다. 하지만 야권이 민생을 볼모로 정쟁을 벌이고 있는 만큼 국정을 책임져야 할 문 대통령의 인내심도 무한정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국회 정상화를 위해 송영무·조대엽 후보자에 대한 임명을 연기해 줄 것을 문 대통령에게 공개 요구했다. 문 대통령은 이를 수용해 장관 임명을 연기하기로 했다고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문 대통령이 여당 원내대표의 요청을 수락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청와대 내부에서도 두 장관 후보자 임명을 늦춰야 한다는 신중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입장은 단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다른 것은 몰라도 야당이 추가경정 예산안과 정부조직 개편을 인사 문제나 다른 정치 문제와 연계시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며 야권의 정쟁 유발에 일침을 가했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외교무대에서 워낙 많은 일이 있어서 많은 시간이 흘러간 느낌인데 막상 귀국해보니 국회 상황은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추경과 정부조직 개편만큼은 야당이 대승적으로 국가를 위해 협조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고 거듭 협조를 요청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추경 처리의 시급성에 대해 “이번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비롯한 국제기구들은 한결같이 세계 경기가 회복세라고 진단했다”면서 “하지만 국제 정치적으로는 보호주의를 비롯한 여러 불확실성이 있기에 각국이 경기 상승세를 살려 나가는 데 총력을 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 재정의 역할 중요하다는 것을 모든 국제기구가 강조했는데 우리의 추경은 그 방향에 정확하게 부합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추경은) 우리 경제 성장률을 2%대에서 탈출시킬 수 힘이 될 것이며 정부조직 개편도 새 정부의 정책 기조를 살려 나가기 위해 필요하다”면서 “하지만 지금 미국이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요구하는 마당에 그에 대응하는 통상교섭본부를 빨리 구축하기 위해서도 매우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최근 한·미정상회담과 G20 정상회의에서 거둔 성과를 강조하면서 “우리가 뼈저리게 느껴야 하는 것은 우리에게 가장 절박한 한반도의 문제인데도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해결할 힘이 있지 않고 우리에게 합의를 끌어낼 힘도 없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엄혹한 국제사회 현실은 외면하고 국내 정치권은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음을 에둘러 꼬집는 발언이라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