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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화 칼럼] 손두부와 마파두부

[고대화 칼럼] 손두부와 마파두부

기사승인 2017. 08. 02.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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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에서 만난 손두부와 중국 촬영지서 맛보는 마파두부
고대화 대표
고대화 아우라미디어 대표프로듀서
요사이 준비하는 드라마 일로 강원도에 자주 다녀오게 됩니다. 지난주에 강원도 평창을 다녀오다가 지인이 추천한 맛있다는 두부집에 가려고 고속도로를 버리고 샛길로 한참을 갔더랬습니다.

자연과 어우러져 조용히 들어앉은 사찰 옆쪽으로 잘 지은 초가집에 두부를 전문으로 내는 음식점이 있더군요. 한 구석에 자리잡고 앉아 “동동주 한 동이와 손두부 한접시”를 주문합니다.

고된 노동으로 허리가 좀 휘어지신 할머니 한 분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두부와 양념간장을 주십니다. 시원한 동동주 한사발 들이키고, 젓가락으로 두부를 떼어내 양념간장에 찍어 먹습니다. 아시지요? 한국인이라면 설명이 따로 필요없는 맛. 이 친근한 맛. 순하고 담백한 두부가, 역시 콩이 재료인 간장을 만나 달달하고 감칠맛나는, 부드럽고 따뜻한 맛을 만들어냅니다. 막걸리 한잔 들이키고 더 씹어보면 단맛이 조금씩 조금씩 밀려옵니다. 아, 참 맛있습니다.

2000년 전 중국 한나라 화남왕 유안(劉安)이 최초로 만들었다고 하는 두부는 식물성 재료로 만든 동양 최고의 식품이지요. 두부의 재료인 콩은 예로부터 ‘밭에서 나는 고기’로 비유될 만큼 많은 영양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콩은 만주가 원산지이므로 고구려 시대 전사들이 콩으로 만든 장을 먹고 전쟁에 출전했다는 야사가 있을 만큼 우리 민족에게 가장 친숙한 곡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깊은 산속에 맛있는 두부집이 더 많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물이 좋아서 그런걸까요? 뭐 그런 이유도 있겠습니다만 두부는 사실 역사적으로 불교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불교를 믿는 신자가 주로 왕족과 귀족인 귀족종교이었는데 두부가 이런 사찰에서 공양하는 귀한 음식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선시대 들면서 숭유억불정책에 따라 사찰이 산으로 쫓겨나면서 산에 있는 사찰에서 두부가 그 명맥을 유지하게 된 것이지요. 제사에 쓸 두부를 만드는 사찰을 조포사로 지정했는데 세조의 능인 광릉 봉선사는 두부제조로 유명한 조포사였다는겁니다. 수백년간 깊은 사찰에서 전승되어온 두부맛이 빼어날 수밖에 없는 거지요. 두부는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김치나 묵은지와 함께 먹어도 맛있고, 찌개를 끓여 먹어도 맛있습니다. 두부는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리는 아주 훌륭한 식재료입니다.

두부 / 김영미

여기 두부가 있다
무색무취에다 자의식이 없는 두부는 돼지비계와 붙고 김치에 붙고 쓸개와도 어울린다
어떤 맛도 주장하지 않는 두부는 모든 맛과 거리를 두고 있어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다
두부는 그냥 두부일 뿐, 아마 중용이란 낱말에 혀를 대어보면 십중팔구 두부맛이 나리라 네모로 잘리든 형이 으깨져 동그랑 땡이 되든 말 그대로 무아 무상이다
반야심경을 푹 우려낸 물에 간수를 넣어 굳히다면 아마 두부가 되리라

사실 두부는 대기업에서 유통하는 두부를 대형마트에서 사먹는 것보다 집에서 직접 해먹어야 가장 맛있습니다. 만드는 게 번거러워서 문제일뿐이지요. “두부와 물은 여행을 시키지 마라”라는 일본속담이 있을 정도로 두부는 조금만 먼거리를 운반해도 쉬이 상할 수 있습니다.

단백질·수분함량·지방산의 불포화도가 높아 쉽게 변질된다는 겁니다. 가까운 재래시장에 가서 직접 만드는 두부를 파는 가게에서 사먹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장 좋습니다. 옛날에는 밤새 두부를 만들어서 새벽에 “두부사려~”하며 동네를 돌며 두부를 파는 상인이 많았다고 하는데 사실 그렇게 사는 두부가 가장 맛있는 두부인겁니다.

중국에는 마파두부라는 유명한 두부요리가 있습니다. 쓰촨(四川)요리인데 그 맛이 맵고 강렬해서 한국사람도 좋아합니다, 마파두부라 하니 마늘과 파를 낳는 요리라고 하는 분도 계신데 재미있는 유래가 있습니다. 1800년대 쓰촨 청두(成都)에서 천 씨성을 가진 남자의 곰보였던 천 씨의 아내가 가게에서 쉽게 조달할 수 있는 두부에 다진 소고기와 화자오·고추·기름 등을 듬뿍 넣어 만든 요리가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손님들은 ‘천 씨네 곰보 부인(麻婆)이 만든 두부 요리’라며 ‘천마파두부’라고 불렀는데 다른 식당들이 ‘천’을 떼고 ‘마파두부’라 부르며 똑같이 만들어 팔았다는 거지요.

뜨겁고 연한 두부에 강력하고 맵고 얼얼한 양념이 조화가 되어 매우 풍부한 맛을 자랑합니다. 간소고기나 돼지고기 등도 넣기 때문에 쓰촨 노동자들이 아주 좋아하는 음식이었다가 지금은 어디를 가나 마파두부를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세계적인 음식이 되었습니다. 수천년 역사 동안 중국의 미식은 주로 왕들을 위해 개발되었는데 이 마파두부는 유래가 확실한, 노동자들의 음식에서 시작된 점이 특이합니다,

어쨋거나, 저는 중국에 여행할 때 꼭 한번은 마파두부를 먹곤 합니다. 잘 만든 마파두부는 여행에 지친 몸을 깨어나게 하고, 기력을 충전시켜줍니다. 매운 맛의 본고장 후난(湖南)성 출신인 마오쩌뚱(毛澤東) 주석이 이야기한 대로 혁명의 힘은 매운 맛에서 오는 걸까요. 푹푹 찌는 더운 요즈음, 오늘은 혀가 얼얼해지도록 매콤달콤한 마파두부로 ‘쓰촨식’ 몸보신을 하는 것은 어떠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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