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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화 칼럼] 삼겹살과 동파육

[고대화 칼럼] 삼겹살과 동파육

기사승인 2017. 08. 23.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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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술안주 삼겹살, 역사 겨우 30년, 소리 박력
중식 동파육, 송 대문호 蘇軾이 만들어, 부드럽고 연해
고대화 대표
고대화 아우라미디어 대표프로듀서
그렇게 덥던 여름도 이제 가을로 접어드나봅니다. 요 며칠은 아침저녁으로 선선합니다. 역시 자연의 섭리는 절대적이어서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는거지요. 며칠 전에 작은 드라마 촬영이 끝나서 전체 회식을 했습니다. 쫑파티라는 거지요. 메뉴요? 물론 삼겹살이었습니다. 요즘 한국인에게 회식하면 첫손가락에 꼽히는 것이 누가 뭐래도 소주와 삼겹살이고, 어디 야외라도 가면 ‘삼겹살 구워서 소주 한잔해야’ 뭐라도 한 기분이 드는 건 당연하거든요.

힘든 하루가 끝나고 동료와 삼겹살에 소주 한잔 마시는 것, 그것이 우리네 직장인들의 당연한 하루의 마감이 된 것인데, 이렇게 삼겹살 구이는 우리나라 음식 중 가장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음식이고 술안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국민 술안주이면서 비라도 오면 더 정신없이 땡기는 삼겹살이 사실은 역사가 30년이 안 된다는 건 알고 계신가요. 삼겹살 구이는 1970년대 후반 생겨나서 80년대 후반에 비로소 지금의 인기를 얻게 되었는데요. 유력설은 70년대 강원도 태백과 영월의 광부노동자들이 매월 지급받았던 고기교환권으로 가장 저렴하게 구할 수 있었던 부위가 삼겹살이었고, 이것을 돌판에 구워먹기 시작한 것이 기원이라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돼지고기 중 삼겹살 특정부위만 이렇게 좋아하는 민족은 한국사람들밖에 없는데 그 역사가 30년밖에 안 되는 것이지요. 음식도 문화입니다.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지요.

가까운 이들이나 가족·동료들과 정겹게 마주앉아서 잘 달구어진 불판에 삼겹살을 올립니다. 불판에 삼겹살이 올라가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며 내는 치익~ ,지글지글하는 맛있는 소리는 어김없이 소주를 부릅니다. 상추에 마늘과 청양고추를 척척 올리고, 그 위에 쌈장을 올려 한 입 가득 우걱우걱 씹어먹는 삼겹살의 맛은 강하고 힘이 있으며 박진감이 있지요. 이 고소하고 화려한 맛의 삼겹살이 없었다면 도대체 이 땅의 수많은 술꾼들은 이 힘들고 모진 세상을 어떻게 버티고, 도대체 무슨 낙으로 살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돼지고기를 많이 먹기로 세계에서 첫째가는 나라가 중국입니다. 돼지고기를 유난히 좋아해서 돼지고기를 주재료로 한 음식의 가짓수가 무려 1500여 종류에 이른다고 할 정도거든요. 이 중에 삼겹살로 만드는 유명한 요리가 있는데요. 아시나요? 그렇습니다. 한국에 있는 중국음식점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유명한 삼겹살 요리가 동파육(東坡肉)입니다. 송나라 동파(東坡) 소식(蘇軾 : 1036∼1101)이 만든 비법요리라고 합니다. 시뿐만 아니라 술을 즐기고 서화에도 뛰어난 문인으로 역사에 두고두고 이름을 날렸고, 또 요리의 달인이자 대단한 미식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지요. 천년 전 당대의 대 문장가는 다음과 같이 돼지고기(猪肉)를 예찬하여 노래(頌)합니다.

저육송(猪肉頌)/동파 소식

黃州好猪肉(황주호저육) 황주(黃州)의 맛좋은 돼지고기
價賤如糞土(가천여분토) 값은 진흙처럼 싸지만
富者不肯吃(부자불긍흘) 부자는 거들떠보지 않고,
貧者不解煮(빈자불해자) 가난한 이는 어찌 요리할 줄 모르네.
慢著火少著水(만저화소저수) 적은 물에 돼지고기를 넣고 약한 불로 삶으니
火候是時也自美(화후시시야자미) 그 맛 비길 데 없어
每日起來打一碗(매일기래타일완) 아침마다 배불리 먹네.
飽得自家君莫管(포득자가군막관) 그 누가 어찌 이 맛 알리오?

동파육은 삽겹살을 굽는 게 아니라 일종의 삼겹살 찜요리입니다. 중국 항저우(杭州)의 전통 요리로 껍데기가 붙어있는 큼직한 삼겹살 덩어리를 통째로 넣어 삶은 후 오랜시간 졸여서 만드는 음식이지요. 두툼한 삼겹살에 간장과 술을 넣고 삶은 후에 소흥주(紹興酒)로 향기를 내고, 약한 불에서 육질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오랫동안 정성들여 익혀주면 그 유명한 동파육이 완성됩니다.

제대로 된 동파육은 고기가 은근히 익도록 약한 불로 오랜 시간 조리기 때문에 고기 속까지 젓가락이 쑥 들어갈 정도로 아주 부드럽습니다. 젤라틴이 많은 껍질은 쫄깃하고 고기는 연하며,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음식이지요. 부드러운 살코기가 목구멍 속으로 미끄러지듯 넘어가면 그 부드럽고 풍부하고 세련된 맛이 오래도록 입안에 감돕니다. 박력 있는 한국의 삼겹살 구이와는 또 다른 고기의 세계, 부드럽고 담백한 고기맛 자체에 집중하는 훌륭한 요리입니다.

오늘은 모처럼 오랫동안 마음에만 두고 바쁘다는 핑계로 못 본 친구에게 전화해서 ‘퇴근하고 만나서 삼겹살에 소주 한잔하자’고 했습니다. 친구도 매우 반가이 ‘좋다’ 하네요. 이런저런 요사이 번다했던 세상사 이야기도 하고, 어렸을 적 추억도 나누면서 맛난 삼겹살에 소주잔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충전도 되고 힘도 나겠지요. 안도현 시인의 딱 두 줄 짧은 시가 생각납니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 없다면
아, 이것마져 없다면 - 안도현 ‘퇴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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