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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예쁜 정원이 있는 그림 같은 섬

[여행] 예쁜 정원이 있는 그림 같은 섬

기사승인 2017. 10. 24.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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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고흥 애도(쑥섬)
여행 톱
쑥섬 정상에는 부부가 가꾼 예쁜 정원이 있다. 사위 고즈넉하고 야생화들은 아직도 곱다.


전남 고흥 봉래면 나로도항(축정항)에서 뱃길로 5분을 가면 애도(艾島)라는 섬에 닿는다. 해안선 길이가 3.2km에 불과한 조그마한 섬이다. 봄이 되면 섬에 쑥이 지천이었다고 쑥 ‘애(艾)’자를 써 애도다. 그래도 그냥 ‘쑥섬’으로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이 작은 섬에 발 들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오래된 숲 사이로 난 조붓한 산책로를 따라가면 우주 같이 망망한 바다가 불쑥 나타난다. 길 끝에는 예쁜 정원이 꼭꼭 숨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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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섬 선착장에 있는 ‘양심 돈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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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까지만해도 400여명이 살았던 쑥섬에는 이제 10여가구 20여명만 남았다.


◇ 인심 좋은 부부가 만든 다도해의 ‘보물섬’

동일면에서 중학교 선생님으로 있는 김상현씨(49)씨와 봉래면에서 약국을 하는 고채훈씨(46)는 21년차 부부다. 두 사람은 부부로 산 시간의 절반 이상을 쑥섬 가꾸는 일에 쏟아부었다. 2001년부터 돈이 모이면 섬을 조금씩 샀다. 8년 전부터는 섬에 꽃씨를 뿌리고 나무를 심고 숲을 정비하고 산책로를 다듬었다.
당숲도 들락거렸다. 마을의 안녕을 지내는 당숲은 신성한 곳이었다. 아무나 출입할 수 없었다. 섬사람들의 규약은 엄격했다. 당제를 지낸 후 짐승 울음소리가 나면 부정을 탄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그래서 섬 안에서 개와 닭을 기르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김상현씨는 8년만에 숲을 허락없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됐다. 사람 손이 덜 탄 덕에 숲은 제대로 우거졌다. ‘당할머니나무’라 불리는 후박나무는 숨 멎을 듯 경건해 보인다. 더디게 자라는 동백나무의 기둥은 굵기가 한 아름이다. 육박나무, 구실잦밤나무는 하늘을 향에 쭉쭉 뻗었다. 당숲에 가면 묵직하게 다가오는 시간의 무게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부부는 꽃과 나무의 이름과 설명을 적은 이름표를 만들었다. 귀감이 되는 글귀도 나무판에 적어 산책로 주변에 설치했다.
섬 정상에는 예쁜 야생화 정원도 만들었다. 섬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비밀의 정원. 이곳에 봄, 여름에는 형형색색의 야생화가 지천으로 핀다. 고운 꽃동산 너머로 푸른 다도해가 펼쳐진다. 정상이라고 해봐야 고작 해발 86m. 그러나 시야 가릴 것 없는 바닷가라 풍경은 더없이 장쾌하다. 지금도 지지 않은 여름야생화가 눈을 즐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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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섬 탐방로 당숲 가는길. 이 길을 따라 가면 한 낮에도 볕이 잘 들지 않는 울창한 당숲이 나타난다.


섬을 가꾸는 과정은 녹록하지 않았다. 심어 놓았던 꽃씨가 태풍에 날아가고 나무가 바람에 부러졌다. 섬사람들에게는 개발업자나 투기꾼으로 오해도 받았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조금씩, 조금씩 이어지던 탐방로는 마침내 완전히 연결됐다. 섬을 가꾸기 시작한 지 10여년 만의 일이다.
길은 바다와 나란히 달리고 일몰이 예쁜 성화모양의 하얀 등대도 지난다. 옛날 섬사람들의 흔적이 오롯한 우물터를 지나 돌담이 예쁜 골목으로 이어진다. 길을 따라 걸으면 아름다운 풍경에 눈이 놀라고 애틋한 추억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걸음은 저절로 느려지고 2시간도 채 안되는 짧은 여정은 시나브로 긴 여행이 된다.
부부는 방문객들이 쉬어갈 갈매기카페(마을회관)를 만들고 묵어갈 펜션도 마련했다. 탐방채비를 할 수 있는 카페에는 ‘양심 돈통’이 있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돈통에 돈을 넣고 냉장고에서 물과 음료수를 가져가 마신다. 2층으로 된 카페는 넓고 창밖으로 바다도 보인다. 양심 돈통은 선착장 앞에도 있다. 섬 탐방비를 넣어야 한다. 지켜 보는 사람은 없고 그냥 통만 덩그러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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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섬 성화등대에서 본 일몰.


◇ 사랑으로 가꾼 섬, 사람에게 돌려주다

“고등학교 졸업도 못할 줄 알았는데, 운이 좋아 대학까지 마칠 수 있었어요.”
김상현씨의 어머니는 지적장애가 있었다. 아버지의 도움 없이 외갓집 근처에서 6명의 자식을 힘겹게 키웠다. 쑥섬에 외갓집이 있었다. 형편은 어려웠다. 주변의 도움이 컸다. 누군가 쌀을 나눠줬다. 누군가 분유를 사다줬다. 선생님은 학교 공납금을 대신 내주셨다. 그는 언젠가 모두에게 받은 것을 다시 돌려주겠다고 마음 먹었다.
제대를 하고 결혼을 했다. 부부는 돈이 모이면 지역의 학교에 장학금으로 내 놓았다. 홀로 지내는 어르신들을 위해서도 썼다. 아내와 궁합이 잘맞았다. 아내에게 고마웠다. 그러다 체계적으로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던 2000년, 부부는 평생 남을 도울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 때 쑥섬이 생각났다. 1970년대만 해도 400여명이 섬에 살았다. 지금 쑥섬에는 20여명이 살고 있다. 절반 이상이 80대, 49세가 가장 어리다. ‘섬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는 삶을 살자’. 섬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면 주민들의 생활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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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섬에서는 눈돌리는 곳마다 푸른 다도해를 볼 수 있다.


부부는 애써 가꾼 쑥섬과 정원을 지난해 6월 일반에 개방했다. 원래 계획보다 2년이 앞당겨졌다. 이유가 있다. 지금은 나로도항에서 사양도로 가는 배(사양호)가 쑥섬에 들른다. 쑥섬 옆에 있는 사양도는 내년 4월 나로도와 다리로 연결된다. 사양호 운항이 중단될 공산이 크다. 쑥섬으로 들어오는 배편도 사라질지 모른다. 섬사사람들에게는 나로도항까지 오갈 수 있는 배가 필요하다. 고작 20여명이 자치적으로 배를 운항하기에는 부담이 크다. 김상현씨는 “쑥섬의 가치를 알려 찾는 이들이 많아지면 배가 다닐 수 있다”고 생각했다.
쑥섬이 일반에 개방된 후 입소문을 탔다. 운이 좋았다. 행정자치부와 한국관광공사는 지난해 여름 쑥섬을 ‘휴가철 찾아가고 싶은 전국 33개 섬’ 가운데 하나로 선정했다. 전라남도는 지난 3월 쑥섬을 ‘전남 민간정원1호’로 인증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기로 했다. 지원도 늘릴 것이란다. 나로도항과 쑥섬을 오가는 배도 계속 다닐 수 있게 됐다. 김상현씨는 “지난해 약 2000명이었던 쑥섬 방문객이 올해 연말까지 2만명을 넘을 것 같아요. 수익금이 늘어나는 만큼 배 운영을 위한 주민부담이 줄어들겠죠”라고 했다. 수익이 더 많이 날수록 주민들과 섬 관리에 돌아가는 몫은 커질 거다.
가을 한복판, 쑥섬은 화려하기보다 고즈넉하다. 눈에 보이는 풍경이 평온하니 마음도 덩달아 평온해진다. 부부가 단 둘이 가꾼 섬이라 이름난 해상공원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래서 더 자연스럽고 정이 간다. 사는 것 참 퍽퍽하다 싶을 때 쑥섬 찾아가 본다. 애틋한 사연이 있어 더 아름다운 섬이다.
 

삼치회

[여행메모]

▷쑥섬으로 가는 배는 나로도항(축정항·나로도 연안여객선 터미널 옆)에서 매일 오전 7시 40분, 10시 50분, 12시 50분, 오후 1시, 4시, 5시 30분에 출발한다. 쑥섬에서 나로도 축정항으로는 오전 7시 35분, 8시 55분, 11시 15분, 12시 55분 오후 3시 5분, 5시 5분 출발한다. 요금은 1인 왕복 3000원. 쑥섬 탐방비는 1인 5000원이다. 관련정보는 ‘힐링파크 쑥섬쑥섬’ 홈페이지에서 얻을 수 있다.
▷삼치가 제철이다. 고소한 맛이 일품인 삼치회는 10월에서 11월까지만 먹을 수 있는 별미다. 남도에서는 양념장에 찍어 묵은지 또는 잘 익은 갓김치, 쌀밥과 함께 김에 싸서 먹는다. 나로도항 인근에는 식당이 많다. 다도해회관은 삼치회 중(2~3인) 3만원, 대(4인) 6만원, 특대(5인) 7만원에 판매한다. 고흥 특산물 가운데 유자가 유명하다. 전국 생산량의 약 40%가 고흥에서 난다. 풍양면에 유자공원이 있다. 유자향기 맡으며 산책까지 즐길 수 있다.
▷고흥에 볼거리 하나 더 생긴다. 고흥분청문화박물관이 31일 두원면 운대리에 개관한다. 박물관 일대는 청자와 백자의 중간단계인 분청사기 가마터가 발견된 곳이다. 분청사기와 함께 고흥의 역사와 설화문학 등에 관한 자료와 유물도 전시한다. 개관기념으로 국내에 처음으로 떨어진 운석 등을 전시하는 특별전을 연다. 국내 첫 운석은 1943년 11월 23일 고흥 두원면 성두리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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