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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년 간 무대 선 ‘관록의 배우’ 주호성 “연극은 인간 내면 성찰해야”

49년 간 무대 선 ‘관록의 배우’ 주호성 “연극은 인간 내면 성찰해야”

기사승인 2018. 01. 19.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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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에 매진 돌풍 일으킨 연극 '아내의 서랍'에서 열연
연극배우 주호성 인터뷰3
연극배우 주호성은 “무대에 서 있을 때는 힘들다고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사진=정재훈 기자 hoon79@
“평생 동안 연극과 제 일만을 하며 미처 돌보지 못한 아내와 가정에 대한 생각이 연극 ‘아내의 서랍’을 통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고 반성되더라고요.”

최근 연일 매진 행렬을 이어가며 연극계에 이례적인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연극 ‘아내의 서랍’에 출연 중인 배우 주호성은 아시아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서울 대학로 명작극장에서 공연 중인 ‘아내의 서랍’은 60대 중후반의 은퇴한 중산층 부부가 겪게 되는 사랑과 믿음에 관한 이야기다. 연극 ‘옥수동에 서면 압구정동이 보인다’ ‘꽃마차는 달려간다’ ‘기린의 뿔’, 뮤지컬 ‘울지마 톤즈’ 등으로 잘 알려진 스타 극작가 김태수가 쓴 2인극이다. 당초 지난 14일까지 공연하기로 했으나 관객들의 요청으로 2월 4일까지 연장 공연을 결정했다.

주호성은 이 작품에서 5급 사무관으로 정년퇴직한 가부장적인 남편 채만식 역을 맡았다. 그는 “거의 대부분이 부부 관객”이라며 “아내의 손에 이끌려 연극을 보러 온 남자 관객이 많아 보인다”고 했다.

이어 그는 이 연극을 살아온 삶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한다”고 밝혔다.

“1시간 50분 동안 남자배우의 대사 양이 많은 작품이에요. 처음에 대사를 보며 ‘반성의 마음으로 열심히 외워야겠다’ 했지요. 첫날 첫회 공연에 아내가 와서 제 공연을 봤어요. 아내가 공연이 끝나고 난 후 저에게 ‘대사 잊어버리지 말어’ 하더군요. 연극 중에 대사를 잊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평소 가정에서 생활하는 동안 그 대사를 잊지 말라는 말이었어요.”


연극배우 주호성 인터뷰4
사진=정재훈 기자 hoon79@
주호성은 대중에게 ‘장나라의 아버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1969년 연극 ‘분신’으로 데뷔해 장장 49년 간 무대에서 관객과 만나 온 ‘관록의 배우’다.

한국 연극계의 산 증인과도 같은 주호성은 무대에 서 있을 때는 힘들다고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천상’ 배우다.

“연극을 하는 동안은 두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고 끝납니다. 첫 대사 시작하고 두 시간 지나면 끝나더라고요. 힘들기는커녕 오히려 행복하고 재밌고 제겐 힘이 나는 시간입니다. 관객이 호응을 잘 해주는 날이나, 그렇지 않은 날이나 무대에 있을 때는 힘든 줄을 모르겠어요.”

그는 특히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극단 산울림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꼽았다.

“현존하는 희곡 중에 이 작품만한 희곡을 찾아보기 힘들어요. 노벨문학상을 받을 만 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공연에서 에스트라공 역을 맡았는데 아비뇽페스티벌에 초청받기도 했죠. 아직까지도 상당히 마음에 남는 작품입니다.”

그는 20년마다 출연하게 된 1인극 작품들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20대 때 모노드라마 ‘판타지 卍’을 했어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40대에 ‘술’이라는 1인극을, 60대에 ‘원숭이 피터’라는 작품을 중국어로 하게 됐지요. 이렇게 되면 80대에도 1인극을 해야 될까요. 하하~”

또한 그는 1970년대 말 공연한 연극 ‘영국인 애인’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작품인데 굉장히 지루하고 어려워요. 연극을 마치면 절반은 졸고 있고, 절반은 울고 있더라고요. 박수칠 생각도 못하고 우는 관객이 있나 하면, 자다 깨서 열심히 박수 치는 관객도 있었죠. 그 이유에 관해 관객과 많은 대화를 나눠봤는데 결국 ‘자기 경험’이더라고요. 지식 수준과는 상관없는….”

그는 연극은 인간 내면에 대한 성찰과 삶의 철학을 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극의 주된 목적은 사람의 마음을 달래주는 거라 봐요. 삶을 관조하고 인간의 내면에 대한 성찰이 담긴 연극이 많아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공연에 관객이 많이 찾아올수록 이 사회가 더욱 따뜻해지고 부드러워질 거예요.”

그는 앞으로도 좋은 작품이 있으면 언제든 하고 싶다고 밝혔다.

특히 10여 년 전에 자신이 연출했던 김태수 극작가의 ‘꽃마차는 달려간다’를 다시 해보고 싶다고 전했다. “사람이 죽으면 관을 짜는 노인의 얘기를 연극으로 만든 작품이에요. 인생의 깊이, 인간의 사랑이 잘 표현된 작품이라 연기든 연출이든 꼭 좀 다시 한 번 만져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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