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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두테르테, 마약과의 전쟁에서 이젠 ‘언론과의 전쟁’

필리핀 두테르테, 마약과의 전쟁에서 이젠 ‘언론과의 전쟁’

기사승인 2018. 01. 21.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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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PINES PROTEST <YONHAP NO-6393> (EPA)
한 시위자가 17일(현지시간)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열린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의 ‘래플러’ 등록취소 결정에 항의하는 시위에서 “언론에 재갈을 물리지 말라”는 내용이 적힌 테이프를 입에 붙이고 있다. 사진=EPA,연합뉴스
필리핀 언론이 정부의 권위주의 탄압으로 인해 일촉즉발 위기로 치닫고 있다. 일각에서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을 넘어 ‘언론과의 전쟁’에 돌입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의 20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 15일 있었던 필리핀 증권거래위원회의 반(反)정부 성향 매체 ‘래플러’ 법인 등록 취소 조치 이후, 친(親)두테르테 진영 정치인들이 1987년 제정된 헌법 조항을 변경해 정부의 언론 통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 하고 있다.

필리핀 헌법 제3조 4항은 ‘언론·표현의 자유 또는 평화적인 집회와 부당한 처우와 관련해 정부에 청원할 수 있는 법률을 통과시켜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두테르테 대통령 측근인 프레데닐 카스트로 하원 의장은 래플러 등록 취소 조치에 힘입어 언론의 자유에 대해 ‘책임있는 행사’만을 인정하는 법안을 발의했다고 SCMP는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움직임이 반정부 진영을 침묵시키는 데 남용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필리핀 대학의 다닐루 아라오 언론학 교수는 “‘책임 있는’이라는 용어의 기만적 사용은 정부가 ‘무책임하다’는 명목 하에 저널리즘과 활동을 규제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면서 “이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며 국민 저항권과 함께 마땅히 강화돼야 할 언론의 자율성에 위배된다. 이번 법안 발의는 명백하게 국민의 기본 자유에 대한 공격”이라고 지적했다.

현지 언론인과 언론단체들 역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필리핀언론인노동조합(NUJ)은 개정안에 대해 “명백히 몰상식한 것”이라며 “본질적으로 언론의 자유를 종식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래플러와 다른 매체들은 언론사들의 단결을 촉구했다.

필리핀의 ‘언론 탄압’은 처음이 아니다. 글로리아 아로요 전 필리핀 대통령이 정권을 잡았던 2006년에도 헌법 제3조 4항의 ‘언론의 자유’라는 용어를 ‘언론의 자유에 대한 책임 있는 행사’로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는 당시 언론인·언론단체들의 비난과 대중의 항의로 보류됐다. 아라오 교수는 “2006년 사태 당시에도 언론사들의 단합이 법안 통과를 무산시키는 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매체는 “언론의 자유에 있어서 암울한 상황이긴 하나 두테르테 대통령의 ‘괴롭힘’이 뉴스 아젠다를 설정하는 데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 분명하지 않다”면서 “래플러는 이미 두 번째 폭로 기사를 발표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15일 래플러는 보유 지분 규제를 어겼다며 필리핀 증권거래위원회로부터 법인 등록을 취소당했다. 필리핀 헌법상 외국인의 언론사 지분 소유와 운영이 금지돼 있는데 래플러 지분 일부를 미국계 펀드 등 외국인이 갖고 있다는 것이다.

래플러는 이에 대해 “경영에 간여하지 않는 외국인의 재무적 투자에 불과하다”며 “보도 활동을 계속하는 동시에 법원에 제소하겠다”고 밝혔다. 2012년 설립된 래플러는 두테르테 대통령이 최우선 정책으로 추진하는 ‘마약과의 유혈전쟁’에 대해 인권 유린 문제를 거론하며 비판적인 보도를 해왔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주도한 대대적인 마약사범 단속으로 필리핀에서 마약 용의자 4000여 명이 사망했다.

PHILIPPINES-MEDIA-CRIME-RIGHTS <YONHAP NO-6909> (AFP)
필리핀 유력 온라인 매체 래플러의 한 직원이 15일(현지시간) 민간 경비원이 지키고 서 있는 래플러 편집국을 나서고 있다. 필리핀 정부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의 ‘마약 전쟁’을 비판해온 ‘래플러’의 운영 허가를 취소했다고 이날 래플러가 보도했다. 필리핀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최근 래플러 지분 일부를 미국계 투자자가 가지고 있다며 운영 허가를 취소했다. 사진=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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