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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달청, 공공조달 위법행위 개입 못한다더니…내부 감사선 지적

조달청, 공공조달 위법행위 개입 못한다더니…내부 감사선 지적

기사승인 2018. 02. 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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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 소홀 등 책임소재에 곤란 "평가항목 검토 강화하라"
계약자료 요구 권한 있는데도 불공정 입찰 7개월째 방치
출처=정책브리핑

조달청이 공공기관의 입찰 제안서에서 수행실적 등 평가 항목을 검토해 조달청 평가 기준에 맞춰야 한다고 내부 감사에서 지적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기관이 제안서 자체 평가 시 입찰 참가업체에 과도한 실적을 제시할 경우 협의를 통해 보완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다. 일정액 이상 실적 조건(단일 거래 기준)을 걸어 입찰 참가를 제한하는 공공기관의 위법 사례가 속출하는 데도 책임이 없다는 조달청의 입장과 상반된 행보다. ▶관련 기사: 공공조달 진입장벽에 막힌 스타트업…손놓은 박춘섭 조달청장

조달청 감사담당관이 작성한 ‘2017년 신기술서비스국 특정감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조달청 정보기술계약과는 수요기관의 제안서 평가 항목을 검토해 수행실적·경영상태·참여인력 기준이 과도할 경우 해당 기관과 협의해 내부 기준에 맞추도록 개선해야 한다. 수요기관이 제안서 평가를 전담하지 않도록 정량적 평가 항목에 대한 검토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미다. 수요기관의 불공정한 평가로 탈락한 업체가 민원 제기 시 규격 검토 소홀 등 책임 소재에 대응이 곤란하다는 판단에서다. 감사 지적 사항은 수요기관이 조달청에 입찰‧계약을 일임한 중앙조달일 때 해당한다. 

중앙조달 시 제안서 평가는 수요기관이 자체 평가나 조달청 평가를 선택할 수 있다. 자체 평가를 선택하면 특정 업체가 유리하도록 평가 항목을 설정할 수 있다. 기획재정부의 ‘협상에 의한 계약체결기준’이나 행정안전부의 ‘지방자치단체 입찰 및 계약집행기준’에 정량적 평가 항목이 없기 때문이다. 지자체 외에는 기재부의 계약 예규를 따른다. 제안서 평가에서 과도한 기준을 제시하는 사례는 빈번하다. 실적 평가 만점 기준으로 사업 예산의 10배를 요구하거나 유사 사업에 대한 합산 실적이 아닌 단일 계약 실적으로 평가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기업 신용등급 등 높은 경영 상태 기준을 적용해 신설기업의 입찰 참가를 차단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기재부 장관 고시 금액(2억1000만원) 미만 사업에서 특급 기술자나 투입 인력의 수가 일정 이상이어야 만점을 받도록 설정하기도 한다.
 

조달청 평가는 ‘조달청 협상에 의한 계약 제안서평가 세부기준’에 따라 정량적 평가 항목 기준을 제시한다. 수행 실적 평가에서는 실적 요건과 같거나 높은 실적을 보유하면 만점을 부여한다. 거래 실적이 요건보다 낮으면 평가 등급별로 10% 포인트씩 감점해 40% 미만 업체에는 최하점(배점의 70%)을 준다. 경영 평가 기준은 기업 신용등급으로 따진다. BBB-·BB+·BB0·BB- 등급은 5%, B+·B0·B-는 10%, CCC+ 이하는 30%를 깎는다.


문제는 중앙조달로 진행되는 협상에 의한 계약의 절반 이상이 수요기관 평가인 점이다. 최근 3년간 정보기술계약과의 협상에 의한 계약 5469건 중 수요기관 평가는 3085건(56.4%)에 달한다. 수요기관 평가 계약 비중은 상승 추세다. 수요기관 평가 계약 비율은 2015년 56.0%(3060건)에서 2016년 56.6%(3441건)로 0.6% 포인트 상승했다. 반면 조달청 평가는 같은 기간 44.0%(2402건)에서 43.4%(2636건)로 0.6% 포인트 하락했다.


조달청은 2017년 7월 내부 감사 이후 지적 사항을 7개월째 개선하지 않았다. 2억1000만원 미만 물품 및 용역 입찰에서 실적 제한을 거는 공공기관의 위법 행위도 방치하고 있다. 개입 권한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조달청 입장과 달리 개입 권한은 조달청장에게 있다. 조달청장은 수요기관에 계약 자료나 정보를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보유한다. 전자조달법 제12조에 따르면 조달청장은 수요기관장에게 전자 조달 시스템을 구축·운용하는 데 필요한 자료 또는 정보의 제공을 요청할 수 있다. 자료나 정보 제공을 요청받은 기관장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이에 따라야 한다.


조달청과 수요기관들은 나라장터에 올라오는 위법 공고에 대한 책임을 서로 미루고 있다. 조달청 관계자는 “수요기관이 나라장터에 자체 입찰할 때는 조달청이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나라장터 시스템을 빌려준 것뿐”이라며 “수요기관이 직접 올린 공고는 해당 기관에서 책임져야 할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입찰 참가업체가) 위법 공고를 올린 수요기관 구매 부서에 시정 요구를 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해당 기관의 감사 부서나 감독하는 부처 및 기관에 건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나라장터 입찰에 참가한 일부 수요기관들은 조달청이 무책임한 태도로 이용 수수료만 받고 있다고 비판한다. 한 수요기관 관계자는 “중앙조달이 아닌 경우엔 조달청이 계약 서류의 위법 여부조차 가려주지 않는다. 수요기관에서 관련 법 조항을 전부 다 알기는 어렵다”며 “조달청은 나라장터 시스템을 돈 받고 빌려주는 웹사이트 정도로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법조계에서는 공공조달 위법 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관련 법령에 제재 규정을 명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률사무소 한성의 윤광훈 변호사는 “법을 어기면 어떤 식으로든 제재할 수 있도록 관련 법령을 강화해야 한다. 위반 시 규정이 없어 권한이 있어도 행사를 안 한다. 피해 보는 게 없기 때문”이라며 “현행 관련법을 행정기관의 예규나 내부 지침 정도로 보더라도 제3자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의미지 공무원들에게는 지켜야 할 지침”이라고 강조했다.

5대 로펌 중 A법무법인의 한 변호사는 “중앙조달뿐 아니라 나라장터 자체 조달 때에도 법 위반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달청이 관리·감독해야 한다는 법률 근거를 만들어 놓을 필요가 있다”며 “이렇게 되면 법령 위반 문제로 감사나 징계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챙기게 돼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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