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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담화]무늬만 ‘민영화’…포스코,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취재뒷담화]무늬만 ‘민영화’…포스코,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기사승인 2018. 04. 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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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는 제게 지난 32년간 삶의 이유이자 비전이었습니다.” 19일 포스코 임직원들이 받은 최고경영자(CEO) 레터 내용 중 일부입니다. 편지를 보낸 주인공은 바로 권오준 포스코 회장입니다.

권 회장은 지난 18일 긴급 이사회를 소집하고 돌연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표면상으로는 최근 피로가 누적돼 건강검진을 받으면서 휴식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조언과 앞으로의 포스코를 위해서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사퇴를 결정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권 회장의 갑작스러운 사퇴 결정은 쉽게 납득이 되질 않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최근 포스코 50주년을 맞아 마련된 기자간담회에서 권 회장은 임기를 마무리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기 때문입니다. 당시 권 회장은 CEO 교체설이 나오고 있는 것에 대해 “정도에 입각해 경영을 하는 것이 최선책이 아닌가 싶다”며 “여러분들이 포스코가 계속 대한민국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사의를 표명한 시점 역시 절묘합니다. 권 회장이 긴급 이사회를 소집한 날은 공교롭게도 황창규 KT 회장이 경찰 소환 조사를 받은 다음날입니다.

여러 정황을 놓고 봐도 사의 표명의 배경이 권 회장이 밝힌 이유만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공교롭게도 사퇴 시기조차 정권이 교체된 이후입니다. 업계에서 전임 회장들의 전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포스코의 CEO들은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중도사퇴하는 ‘흑역사’를 반복해왔습니다. 권 회장의 전임인 정준양 전 회장도 예외가 아닙니다. 정 전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방문 때 국빈 만찬과 10대 그룹 총수 청와대 오찬 등 대통령이 참석한 주요 행사에서 배제됐습니다. 정 전 회장이 사의를 표명할 당시는 임기를 1년 4개월가량 남겨둔 상태였습니다. 권 회장 역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해외 순방길에 단 한차례도 포함되지 않았으며, 임기 또한 2년여나 남겨둔 상태입니다.

포스코는 일찍이 2000년 10월 민영화의 길을 걸었습니다. 국영기업으로 출발했지만 20여년간 정부 지분이 전혀 없는 순수 민간기업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눈치를 봐야 한다면 껍데기만 민영기업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부디 이번만큼은 정권 코드 맞추기용 CEO 사퇴라는 적폐를 반복한 것이 아니길, “외압 같은 건 없었다”고 강조하는 권 회장의 말이 사실이길,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지닌 철강기업이 이 땅에 있다는 자부심에 상처가 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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