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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천만 관객, 다큐멘터리 ‘그날, 바다’

[칼럼] 천만 관객, 다큐멘터리 ‘그날, 바다’

기사승인 2018. 04. 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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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필자는 직업상 다큐멘터리를 많이 본다. 수업자료나 혹은 텍스트 분석을 위해 수시로 다큐멘터리를 찾는다. 다큐멘터리 전문채널인 내셔널지오그래픽도 필자에겐 매우 중요한 정보 창구다. 가끔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걸리는 프로그램 중 시쳇말로 ‘득템’도 있다. 이야기 구성면에서나 혹은 재현된 이미지, 그리고 주제 이상의 숨겨진 메시지 등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작품들도 있다. 소개하고 싶은 다큐멘터리는 많으나, 이 글의 취지와 맞는 작품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어떤 대도시에서 일어난 대형쇼핑 건물의 붕괴 원인을 규명한 과학다큐멘터리다.

이 다큐멘터리는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NGC)의 인기시리즈물인 ‘항공사고수사대’와 이야기 구조나 진행방식이 비슷하다. 시리즈물 ‘항공사고수사대’는 왜 비행기가 떨어졌는지 그 원인을 규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실패의 과정을 그대로 플롯으로 삼고 있는 ‘항공사고수사대’를 보고 있자면 사고수사를 집행하는 과학수사관들은 물론 제작진의 집요함에 경외감이 들게 한다. 원인 규명에 실패하면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고, 또 실패하면 다시 다른 방법으로 실체에 다가가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한마디로 완벽한 협업이다. 양파껍질처럼 속살 깊숙이 숨겨져 있는 진실의 실체에 도달하면 책임질 사람이 명확히 규정되고, 사고 원인의 완전한 규명과 반복되면 안 될 정확한 이유에 대한 보고서가 작성된다. 이러한 전 과정은 오롯이 기록되고 완성된 다큐멘터리에 그대로 재현된다. 우리가 비행기를 안심하고 탈 수 있는 것은 고귀한 인명의 희생 위에 그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고자 애쓴 전문가 집단, 그리고 그 과정을 정확히 기록하고 보고한 많은 사람들이 기울인 노력의 결과다.

필자가 소개하려는 다큐멘터리는 대형건축물의 붕괴에 대한 원인을 규명하는 과정을 다룬 시리즈물 중 한 편으로, 1995년 6월 29일에 일어났던 대한민국의 삼풍백화점 붕괴 원인을 다룬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으면 어처구니없는 사고 원인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같이 부조리한 낱개의 원인들은 급기야 대형쇼핑몰건물을 일시에 무너뜨린다. 그 원인을 규명하는 과정은 느리지만, 조사팀들은 자료를 뒤지고 시뮬레이션을 돌려 매우 논리적이면서도 치밀한 방식으로 마침내 근본적인 원인을 규명한다.

길게 설명돼야 할 이 다큐멘터리의 내용을 몇 마디로 압축하면 기업과 정부의 부패 그리고 전문가집단의 직무유기를 넘어선 범죄행위에서 기인했다는 것이다. 적폐의 총합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가만히 주위를 살펴보면 뉴스의 지면 곳곳에 이러한 소식은 지금도 여전히 실린다. 고치지 못한 우리 사회의 단면이다.

필자가 소개한 위의 다큐멘터리는 유튜브에도 올라와 있다. ‘삼풍백화점’이라고 검색해 보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꼭 보았으면 한다. 그것도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까지 끝까지 보길 권한다. 그러면 삼품백화점 이후로도 적폐를 청산하지 못한 이유에 대한 힌트를 바로 얻게 된다.

위에서 소개한 다큐멘터리에서 삼풍백화점 붕괴 원인을 규명한 주체는 우리 정부도, 전문연구소도, 공영방송도 아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이 기획하고 제작했다. 물론 많은 자료와 인터뷰는 해당 분야의 우리나라 기관과 전문가들로부터 얻은 것이지만, 우리가 주체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는 삼풍백화점 붕괴 이후에도 많은 적폐가 청산되지 못한 이유로서 매우 중요한 지표가 된다.

이제 우리에게도 중요한 이정표가 되는 다큐멘터리가 나왔다. 세월호 침몰 원인을 과학적이면서도 매우 논리적인 방식으로 규명하고, 그 힘들었던 노력의 과정을 메이킹 필름 형식으로 담은 김지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그날, 바다’가 바로 그것이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동안 숨이 턱턱 막혀왔다. 과학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의 특성상 감정적 호소도, 주장을 관철하려는 선동도 배제된 채 객관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음에도 뭔가 북받쳐 올랐다. 보는 동안 이것이 실체에 가깝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침몰 이후 구조의 문제는 그 다음이고 침몰의 원인이 더 먼저 규명돼야 했다. 3년여 시간이 넘는 기간 동안 생활인으로서 일상을 유보하고 다큐멘터리 제작에 몰입하는 치열한 노력과 열정을 보임과 동시에 충분히 예상되는 방해공작을 이겨낸 제작진에게 경외의 마음을 전한다.

전문가그룹과 다큐멘터리 제작진들의 협업 결과물인 ‘항공사고수사대’와는 다르게 ‘그날, 바다’는 제작진이 전문가 역할까지 병행한 듯싶다. 그저 미안하다. 그 많던 전문가들은 그동안 무엇을 한 것인가? 그 흔한 전문연구기관들은 왜 존재하는가? 정부공무원조직과 사법기관은 국민의 혈세를 어떻게 쓴 것인가? 이제 뒤돌아보고 시민사회를 두려워해야 할 때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대한민국이 안전한 사회로 나아갈 길을 모색했으면 좋겠다. 국가에 기꺼이 올바르게 세금을 내고, 그 세금을 정부가 올바르게 집행하고, 그 과정에 전문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그렇게 해서 새롭게 태어나는 정의로운 사회를 꿈꿔보는 것이 올바른 생각이 아닌가? 그런 ‘올바른 대한민국’을 꿈꾸면 안 되는가?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노래가 된 ‘천개의 바람’은 죽은 이가 산자를 위로하는, 사실 ‘이별하지 못한 이별을 노래’하는 슬픈 선율의 이별가다. 떠나지 않았다는, 아니 떠나지 못했다는 역설이다. 왜 그 사실을 외면하는가? 자신들이 주검이 된 이유가 무엇인지 유가족과 동시대를 산 자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겠는가? 그 갈망은 천개의 바람으로 불어 연인원 천만 개의 촛불로 피어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국정농단으로 규정되는 부정 세력의 중심을 내려오게 했다.

그러나 아직 그 배후는 드러나지 않았다. 우리는 ‘천만 개의 촛불’을 아직 꺼트려선 안 된다. 그 촛불은 우리 국민이 자발적으로 들었지만, 그 촛불을 훨훨 태우는 바람은 ‘천개의 바람’이다. 천개의 바람이 부는 동안 천만의 촛불은 타올라야 한다. 다시 말해 진실이 규명되기 전엔 촛불은 꺼질 수 없다. 천개의 바람이 불어 그 촛불을 다시 일으킬 것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지겹다!” “그만 좀 해!”라는 댓글을 다는 자가 있다면 신동엽 시인의 시를 빌어 이렇게 주문해 주련다. “껍데기는 가라!”

다큐멘터리 “그날, 바다”를 제작한 유명 팟케스트 진행자는 다큐멘터리에서 이렇게 인터뷰했다. “이 영화를 끝까지 만드는 것이 아이들을 위한 나만의 애도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생각에 바람 하나를 더해 연쇄적 방식의 ‘선행적 연대’의 체인 한 조각이 되고자 한다. 천개의 바람이 천만 개의 촛불이 됐고, 천만 개의 촛불은 아직 꺼지지 않아야 하는 당위이기에 그 천만 개의 촛불은 다큐멘터리 ‘그날, 바다’를 상영하는 극장에서 다시 타올라야 한다. 이것이 바로 안전한 선진사회로 나아가는 길이다. 선진국이 별건가? ‘신뢰할 만한 사회’가 바로 선진국 아닌가? 그런 사회가 되면 천개의 바람은 비로소 편히 잠들 것이다.

평소 자본이 구축한 왜곡된 배급망으로 인해 그야말로 동원된 ‘천만 관객’을 시니컬하게 바라봐 온 필자이지만, 평소 프로파간다(선전선동)을 지독히도 혐오한 필자지만, 다큐멘터리 ‘그날, 바다’를 보고 잠시 그 입장을 유보하고자 한다! 그리고 촛불혁명에 이어 또 한 번의 ‘기적’을 기도해 본다.

“천만의 촛불이여! 천개의 바람이 전하는 진실이 무엇인지 전하려는 그 마음을, 그 갈망을 온전히 담은 다큐멘터리 ‘그날, 바다’의 천만 관객이 돼 똑바로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자!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미래를 바꾸자!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바꾸자! 그렇게 바뀐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의 환한 미소에 천개의 바람이 깃들었다는 것을 똑똑히 증언하자! 그리고 역사 앞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한 ‘미안함’을 진실 규명으로 이어가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큐멘터리 ‘그날, 바다’의 천만관객이 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듯싶다. 사실을 알고 직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말이다. 모두가 진실을 바라보게 되면 진실은 그렇게 승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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