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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청소년들의 비극을 담은 연극 ‘사물함’

[리뷰] 청소년들의 비극을 담은 연극 ‘사물함’

기사승인 2018. 04. 26.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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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함2
연극 ‘사물함’ 공연 장면 /사진=국립극단 제공
사물함은 청소년들에 있어 가장 일상적인 개인 보관함이다. 그곳엔 책뿐만 아니라 땀에 젖은 체육복, 담배 등 청소년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물품들이 담겨 있다. 하지만 사물함의 주인이 그곳에 담긴 물건들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할 때 그것들 또한 생명처럼 점점 썩어간다.

연극 ‘사물함’ 또한 어른들이 만든 틀 안에 갇힌 채 스스로를 간수하지 못하며 살아가는 청소년들을 그린다. 편의점에서 최저시급도 받지 못한 채 생계를 이어가는 고등학생 ‘다은’은 페이스북 라이브로 폐기처분을 앞둔 음식 리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중 편의점 창고가 무너지며 그곳에 깔려 죽게 된다. 이후 다은의 유일한 친구 ‘연주’, 다은에게 담배를 샀던 ‘재우’, 다은이 아르바이트하던 편의점 사장의 딸 ‘혜민’, 편의점이 들어선 건물주의 손녀 ‘한결’이 같은 공간에서 과외를 받으며 일어나는 지극히 부조리하면서도 세속적인, 그래서 너무나도 현실적인 이야기가 전개된다.

한결과 혜민은 처음엔 성적에 대한 걱정을 얘기하지만, 점점 자신들과 간접적으로 얽힌 다은의 죽음을 언급하며 죄책감에 시달린다. 자신들의 부모 또는 조부모가 그들의 무관심으로 다은이 죽음에 이르렀음에도 여전히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 또한 자신들의 안전한 보금자리를 위해 애써 이러한 사실을 회피하려 한다. 하지만 다은의 가장 친한 친구인 연주가 자신들의 그룹 과외에 합류하고, 함께 과외를 하던 재우가 친구의 죽음을 방관하는 자신들의 모습에 실망하는 모습을 보이자 갈등은 고조된다.

아이들은 죽음 이후 잠긴 채 남겨진 다은의 사물함 냄새에 대해 궁금해한다. 편의점 폐기 음식, 젖은 체육복, 사용한 생리대 냄새 등 여러가지 추측을 하지만 열어볼 생각은 하지 않는다. 가난의 냄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네들에게서 냄새가 나”라고 비꼬던 재우의 말 처럼, 사실 이 냄새는 부조리함으로부터 발현되는 악취다.

학교에서도 가정환경으로 인한 빈부와 성적 차 등 일찍이 계급과 등급이 매겨진다. 가진 아이와 더 가질 수 있는 아이는 가지지 못한 아이를 밀어낸다. 이 중간에 선 아이는 가진 쪽으로 이동하려고 한다. 계층 이동을 꿈꾸던 연주는 마지막에서야 자신이 왜 그들의 과외에 합류했는지 힘겹게 고백한다. “다은이가 죽었는데 너무 조용해서 왔어. 다른 누군가가 죽었으면 이렇게 조용할 수 있었을까”라고.

알베르 카뮈는 소설 ‘전락(La Chute)’을 통해 비극은 문명의 진동추가 종교적 사회에서 세속적 사회로 움직일 때 탄생한다고 역설했다. 십대는 가치관의 급격한 변화를 겪는 시기다. 순수한 마음이 점점 현실적이고 세속적으로 변하는 이행기를 겪는다. 비극이 탄생할 때다. ‘사물함’은 이러한 비극을 관객에게 그대로 비춘다. 깨달음에 대한 성장은 보여주지 않는 채.

‘사물함’은 구자혜 연출가와 여러 작품에서 호흡을 맞춰온 이리·조경란, 대학로에서 활동해온 정연주·김윤희, 올해 국립극단 시즌 단원으로 합류한 정원조가 출연한다. 공연은 5월 6일까지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열리며 티켓은 전석 3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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