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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세계화에 평생 바친 이영희...“전통 살리면서도 과감”

한복 세계화에 평생 바친 이영희...“전통 살리면서도 과감”

기사승인 2018. 05. 17.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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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별세한 이영희 한복 디자이너./사진=연합
17일 82세를 일기로 별세한 디자이너 이영희는 전통을 살리면서도 과감한 한복으로 세계인을 사로잡아왔다.

1936년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전업주부로 살다가 사촌언니 부탁으로 명주솜 이불 파는 일을 하면서 한복 짓는 일과 인연을 맺게 됐다.

고인은 나이 마흔인 1976년 서울 마포구 서교동 레이디스타운에 ‘이영희 한복의상’을 열면서 본격적인 한복 디자이너로 나섰다. 특히 인근 연희동의 부유층 마나님들이 특히 이영희 한복을 찾으면서 유명해졌다.

고인은 1980년 10월 한국의상협회 창립을 기념하는 한복 패션쇼에 참가하면서 패션쇼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었다. 이듬해 1월 신라호텔에서 첫 개인 패션쇼를 성황리에 개최했다.

고인은 이후 한복을 소개하는 일이라면 장소와 무대를 가리지 않았다. 그는 다양한 해외 패션쇼 참가 경험을 바탕으로 1993년 한국 디자이너 최초로 파리 프레타포르테 쇼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듬해 파리 컬렉션 무대에 이영희의 저고리 없는 한복을 입고 맨발로 등장한 모델을 보고 ‘르 몽드’ 패션 수석기자는 ‘바람의 옷’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바람의 옷’은 이영희가 평생 지어온 한복 중에서 최고의 옷으로 꼽은 작품이기도 하다.

당시 파리에서 이영희 성공을 지켜본 패션 칼럼니스트 심우찬은 파리 프레타포르테 쇼 당시 현지 패션잡지가 이영희 옷을 ‘키모노 코레’(코리안 키모노)로 소개하자, 고인이 “내가 뭐 때문에 파리에서 패션쇼를 하는데…”라며 통곡한 일화를 공개했다.

심우찬은 “선생님은 결국 해당 잡지 편집장으로부터 정중한 사과편지를 받았고, 프랑스 복식 사전에도 ‘한복’(Hanbok)이라는 고유명사가 등록됐다”고 전했다.

올림픽과 같은 국가 행사에서도 이영희 한복은 빠지지 않았다. 이번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도 개막식 한복 의상을 디자인할 만큼 최근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벌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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