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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에서 가장 빛나던 ‘금성’ 영원히 잠들다”

“재계에서 가장 빛나던 ‘금성’ 영원히 잠들다”

기사승인 2018. 05. 20.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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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화경영의 대명사, 구본무 LG 회장 지병으로 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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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꿈꾸는 LG는 모름지기 세계 초우량을 추구하는 회사입니다.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남이 하지 않는 것에 과감히 도전해서 최고를 성취해왔던 것이 우리의 전통이었고 저력입니다.”-1995년 회장 취임사 中

전자와 화학, 디스플레이 등 LG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운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20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3세.

이날 LG그룹은 “구 회장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 몇 차례 수술 등에 따른 후유증으로 최근 서울대병원에 입원했었다”며 “구 회장은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영면에 들었다”고 밝혔다. 유족 측은 조용하고 간소하게 장례를 치르기를 원했던 고인의 뜻에 따라 비공개로 가족장을 치르기로 했다. 비소는 고인이 마지막 입원 치료를 받았던 서울대병원에 빈소가 차려졌다.

구 회장은 올해 초부터 와병 상태였으며, 통원 치료를 받던 중 상태가 악화하면서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LG그룹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손자이자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LG가 3세’인 구 회장은 1995년부터 그룹 회장을 맡아왔다.

최근에는 건강이 좋지 않아 동생인 구본준 부회장에게 사실상 그룹 경영을 맡기고 치료를 받아 왔다. 17일에는 아들인 구광모 LG전자 정보디스플레이(ID) 사업부장(상무)이 그룹 지주사인 ㈜LG의 등기이사로 선임되기도 했다.

구 회장의 가장 큰 업적은 LG를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시킨 점, 투명 경영체제를 구축했다는 점이 꼽힌다. 특히 정도 경영, 가치창조형 일등주의 등을 경영 이념으로 삼았던 고인은 LG그룹의 ‘기술개발력 제고’와 ‘세계화 추진’ 등 제2의 경영혁신을 주도한 바 있다.

LG의 부활도 성공적으로 완수해냈다.

2010년대 들어 스마트폰 시대를 예견하지 못했던 LG는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구 회장은 LG의 부활을 위해 2011년, 수 십년 만에 친정 체제를 선포한 후 자신의 둘째 동생 구본준을 LG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임명하고 1조원의 유상증자를 추진했었다.

아울러 연구개발(R&D) 확대를 통한 그룹의 혁신을 주도해왔으며, LG사이언스파크 구축을 통해 그룹 차원에서 키우고 있는 자동차 전장사업, 에너지 솔루션, 올레드 등 다양한 신사업의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미리부터 그룹을 지주사체제로 바꿔 ‘재계 저승사자’로 통했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으로부터 ‘재계의 모범’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지난 정권에서 재계 전체를 흔들었던 정치 게이트에서도 LG그룹은 비교적 별 탈 없이 대처할 수 있었다.

한편 구 회장은 사회공헌활동에도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 LG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영식씨와 두 딸인 구연경, 구연수씨가 있다. 2004년에는 동생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인 구광모씨를 양자로 입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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