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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무 회장은…고요한 카리스마로 한국 경제 이끈 정도경영의 표본

구본무 회장은…고요한 카리스마로 한국 경제 이끈 정도경영의 표본

기사승인 2018. 05. 20.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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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무
“LG의 미래는 연구개발 성과에 달려 있고 그 성과는 세계시장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2002년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그룹 연구개발 현황 보고회에서 연구개발(R&D)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그리고 16년 후 서울 강서구 마곡에는 여의도 3분의 1면적의 사이언스파크가 개관했다. 재계는 LG의 사이언스 파크를 한국 R&D 산업이 새 국면을 맞는 시점이라고 평가했다. 정작 이 시대를 도래하게 한 장본인은 함께하지 못했다.

구 회장은 정도를 걷는 경영으로, 한국 사회의 풍파를 견뎌온 경제인으로 평가받는다. 재계에서는 일찍이 지주사 체제로 바꿔 다른 기업들의 표본이 됐다. 경제계를 휩쓸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 사건에서도 LG만은 무풍지대였다.

구 회장은 LG 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의 맏손자, 구자경 LG 명예회장(93세)의 4남2녀 중 첫째로 1945년 경남 진주시 지수면에서 태어났다.

구 회장은 1975년 럭키(현 LG화학) 심사과 과장으로 입사하여 첫 근무를 시작했고, 이후 영업, 심사, 수출, 기획 업무 등을 거치면서 20여 년간 차곡차곡 실무경험을 쌓았다.

구 회장은 1995년 2월 22일, 그의 나이 50세에 부친인 구자경 명예회장이 경영일선에서 은퇴하며 LG의 제 3대 회장으로 취임한 이래 특유의 ‘끈기와 결단’의 리더십으로 명실상부한 ‘글로벌 LG’로 우뚝 세우고, ‘영속기업 LG’의 기반을 탄탄히 마련했다.

구 회장은 매출액을 회장 취임 당시 30조원 규모(1994년 말)에서 GS, LS 등을 계열분리하고도 160조원 규모(2017년 말)로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하며 다섯 배 이상 성장시켰다. 이 가운데 해외매출은 10조원에서 110조원대로 10배 이상 비약적으로 신장시켰다.

국내외에서 근무하고 있는 임직원 수도 같은 기간 약 10만 명에서 약 21만 명으로 2배 가량 늘어났다. 이 중 약 8만여 명이 200여 개의 해외 현지 법인과 70여 개의 해외 지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구 회장은 LG 사업군을 ‘전자-화학-통신서비스’ 3개 핵심 사업군으로 구축해 경쟁력을 높이며 LG를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이끌었고, 국가 산업 경쟁력의 견인과 경제 발전에도 기여했다.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으로 전기차용 배터리 등 자동차부품, OLED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 에너지, 바이오 등의 분야에서 한발 앞선 미래준비와 신사업 육성에 착수하면서 늘 더 나은 고객의 삶을 꿈꾸고 실천한 경영자로 평가받는다.

‘럭키금성’에서 ‘LG’로 CI 변경을 주도하며 글로벌 선도 기업으로 도약하는 기반을 다졌으며, 선진적 지배구조 구축에 대한 강한 의지로 국내 대기업 최초로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고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결단하는 등 영속할 수 있는 기업의 토대를 쌓았다.

남다른 사회공헌 철학도 주목받는다. 구 회장은 국가와 사회를 위해 희생한 평범한 사람들에게 보답하고 함께 기억하자는 뜻으로 ‘LG 의인상’을 만들었다.

재계에서는 그를 ‘존중과 배려의 리더십을 발휘했으며, 인간적으로는 작은 것이라도 자신이 약속한 것은 꼭 지키려 했고, 대기업 총수이지만 이웃집 아저씨 같은 소탈한 인물’로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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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2월 22일 LG 회장 이취임식에서 구본무 신임 회장이 LG 깃발을 흔들고 있다./제공=L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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