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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불행을 통한 연대·희생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연극 ‘페스트’

[리뷰] 불행을 통한 연대·희생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연극 ‘페스트’

기사승인 2018. 05. 21.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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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연극 '페스트' 출연 배우들이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국립극단'페스트' 출연 배우들이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국립극단
불행에는 이유가 없다. 많은 경우 자신의 행동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그 속으로 내던져지기 때문이다.

연극 ‘페스트’ 또한 평온하던 도시 섬 오랑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불행을 마을사람들의 연대와 희생을 통해 극복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바람이 많이 부는 섬에서 근무하는 의사 리유(임준식 분)는 진찰실을 나서다 피를 토하고 죽어있는 쥐 한 마리를 목격한다. 죽은 쥐의 수는 급격히 늘어가고 며칠 만에 수만의 쥐 사체가 섬을 뒤덮는다. 이상 증세는 섬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나타난다. 사람들은 비슷한 증세의 열병을 앓으며 죽어가고,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도지사(강지은 분)는 섬을 고립시키라고 명령한다.

이 상황에서 주인공인 베르나르 리유, 그의 협력자이자 말단 공무원 조제프 그랑(김한 분), 기득권층 출신의 반항아 장 타루(이원희 분)를 중심으로, 오랑에서 빠져나갈 수 있었음에도 결국 떠나지 않고 사람들을 돕기로 결심하는 파리 출신 신문기자 레몽 랑베르(박형준 분), 페스트를 타락한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징벌이라고 주장하는 파늘루 신부(조영규 분), 페스트로 야기된 혼란 상황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챙기는 코타르(김은우 분) 등은 연대와 헌신을 통해 결국 페스트를 퇴치한다.

이후 공간·심리적 고립이 해소되고 헤어졌던 사람들은 서로 만나게 된다. 하지만 이미 소중한 사람을 잃은 이들은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상처를 가슴으로 묻은 채 계속 살아간다. 누군가는 살아남고 누군가는 죽는 부조리함 속에 사는 것 자체가 인간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불행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사람에 대한 애정과 연대의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은 값지다 할 수 있다.

극 중엔 소설엔 없는 장벽이 등장한다. 동과 서를 단절하는 장애물이다. 도지사는 페스트를 피해 장벽을 넘으려던 사람들을 사살한다. 또 페스트를 앓다 장벽 앞에서 죽은 정체불명의 여자를 보곤 페스트가 옆 도시에서 넘어왔다며 시민들을 선동한다. 또 장벽이 있으므로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장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는 작금의 남북 상황과 너무나도 많이 닮아 있다.

쥐와 사람들은 다시 건강을 찾았지만, 페스트는 완전히 소멸된 게 아니다. 도시를 한동안 공포로 물들였던 이 질병은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 숨어 있다가 우리가 방심하는 사이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십년 후에 다시 나타나 사람들을 잡아먹을 수도 있다. 2015년 한국을 공포로 내몰고, 30여명의 목숨을 앓아갔던 메르스처럼.

박근형 연출은 20일 관객과의 대화에서 “난관에 부딪혔을 때 헤쳐나가는 이야기, 즉 장벽에 막힌 고립된 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연극으로 보여봤으면 하는 생각에서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공연은 명동예술극장에서 6월 10일까지 열린다. 티켓 가격은 2~5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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