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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범 칼럼] “김정은 국무위원장님, 시험 잘 보시기 바랍니다”

[전인범 칼럼] “김정은 국무위원장님, 시험 잘 보시기 바랍니다”

기사승인 2018. 06. 16.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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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북한의 승리' 아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반드시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시험지 받아"...시험지 채결 결과 '한반도 명운 걸렸다'
전인범 장군 1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전 유엔사 군정위 수석대표
2018년 6월 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만남은 역사적 사건이다.

북한 정권이 생긴 이래 오랜 적대 관계이다. 더 나아가 북한의 거친 언사로는 ‘철천지 원수’ 인 미 대통령과 이른바 백두혈통의 ‘최고존엄’의 만남은 그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다.

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는 물론 세계 평화의 질서를 흔들게 할 수도 있는 북한의 핵 개발과 핵 폐기에 대한 논의 과정은 국제정치 차원에서도 관심거리이며 연구 대상이다.

한반도와 동북아, 그리고 인도, 태평양 지역에 대한 패권 다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국제 질서의 안정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북·미 정상회담에 세계 이목이 집중된 것도 여기에 이유가 있다. 그만큼 북·미 정상회담은 두고두고 연구와 관찰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북·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서는 찬반이 엇갈린다. 모두가 기대했던 핵 폐기와 관련한 내용이 공동성명에 명시되지 않은 점과 구체성의 부재는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안겨 줬다.

반면 당장이라도 전쟁 위기 상황이 닥쳐올 것 같은 아슬아슬한 국면을 극적으로 모면하고 마침내 두 ‘원수’(怨讐·원한이 맺힐 정도로 자기에게 해를 끼친 사람이나 집단)가 한자리에 마주 앉았다는 사실과 앞으로도 두어 차례 계속 만나기로 한 것은 희망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번 북·미 회담에서 가장 놀라운 대목은 당연히 한·미 연합연습(훈련) 중지와 이러한 연습에 대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인식이 ‘북한 입장에서 보면 도발적일 수 있겠다’고 표현한 것이다.

또 이것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과 연계해 언급하면서 주한미군의 역할을 거론한 것은 트럼프 미 대통령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들 것 같다.

굉장히 특유의 성격을 지닌 트럼프 대통령이라서 ‘충격’보다는 또 하나의 ‘놀라움’ 정도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하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한·미 연합 연습은 ‘도발적’ 이지 않은 훈련이다. 그동안 이러한 연습을 숱하게 하면서 우리가 먼저 공격하는 경우는 없었다.

한·미 연합 연습은 한 해에 두 번 정도 주한미군 부대에 새로 전입 온 구성원들이 자신의 역할과 임무를 확인하는 컴퓨터 모의 훈련이다.

트럼프 대통령 표현대로 일종의 ‘워게임’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사실을 믿지 못하거나 아니면 믿지 않는 북한 입장에서 ‘도발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이해해 주는 차원에서 이렇게 표현한 것 같다.

어쨌든 한·미가 대규모 군사 연습을 조정해 연습 목표를 달성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돈이 많이 드는 큰 훈련 한 두개를 중지하고 돈이 적게 드는 작은 훈련이 늘어 날수도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을 방어하는데 있어서 빈틈이 생겨서는 안 된다.

또 주한미군의 주둔 문제를 방위비 분담 등의 비용 협상과 연계해 거론하는 미 행정부의 발언은 한국을 서운하게 한다.

하루빨리 자주국방을 해야 하는 이유와 정당성도 여기에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북·미 회담 결과를 놓고 ‘북한의 승리이자’ 이를 사주한 ‘중국과 러시아가 이겼다’고 한다.

하지만 한·미 연합 연습의 중지 문제만 놓고 보더라도 미국은 ‘회담이 잘 진행되는 동안’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또 이번 북·미 공동성명에 ‘비핵화’라는 표현 자체에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가 내용적으로 들어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미국이 이렇게 해석하고 있는 것을 북한은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동서양의 각국을 다니면서 느낀 것 중에 하나가 상대방에 대한 믿음과 신뢰에 있어 동서양 간의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서구권은 대체로 처음부터 상대를 믿고 선의에서 거래나 관계를 시작한다. 하지만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믿음과 신뢰를 지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동양권에서는 믿음과 신뢰 관계 형성에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한 번 신뢰관계가 형성되면 웬만한 어려움도 이겨 내는 깊은 관계가 이뤄진다.

지금 북·미 간에는 서로에 대한 믿음을 형성해 가는 단계이고 매우 중요한 거래의 시작 단계다.

이처럼 중요한 시작 단계에서 한국이 해야 할 일은 바로 이러한 북·미의 새로운 관계가 잘 형성되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정착, 남북관계 개선으로 이어지도록 적극 돕고 주도해 나가는 것이다.

다만 명심해야 하는 것이 있다. 만약에 미국에 거짓말쟁이로 찍히거나 믿을 수 없는 관계로 낙인이 되면 이번에는 진짜로 돌아갈 수 없는 위기가 초래될 것이다.

따라서 이번 북·미 정상회담은 ‘북한의 승리’가 아니라 김정은 위원장으로서는 반드시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시험지를 받아 든 것이나 다름없다.

시험지 채점의 결과는 북한은 물론 한반도 전체의 명운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우려와 기대 때문에 신신당부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님, 시험 잘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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