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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굿바이 레닌! 굿바이 김정일! 굿바이 보수!

[칼럼] 굿바이 레닌! 굿바이 김정일! 굿바이 보수!

기사승인 2018. 06. 17.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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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영화 ‘굿바이 레닌’은 우리나라에선 흥행에 실패했지만, 유럽에선 평단의 호평은 물론 대중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영화다. 자기네 이야기이기에 유럽 현지 관객들로 하여금 공감대를 이끌어낸 것이다. 1990년 10월 3일 독일통일 후 12~3년이 지난 2003년 통일 과정에 대한 소재가 영화로 기획·개봉됐다. 개봉 전후 독일 사회의 맥락을 살펴보면 이 영화의 기획 의도는 분명하다.

먼저 ‘굿바이 레닌’의 제목이 낯선 독자들을 위해 간략히 영화의 줄거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구동독(DDR)의 열혈 공산당원인 어머니는 텔레비전 뉴스에서 베를린장벽 철거를 주장하는 시위대에 참여한 아들(주인공 알렉스, 다인엘 브륄 역)이 체포되는 모습을 보고 쇼크로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가 된다. 이에 알렉스는 사랑하는 어머니가 쓰러진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자책하게 된다. 그러던 중 어머니는 8개월 만에 극적으로 코마 상태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어머니가 돌아오셨다는 행복도 잠시, 어머니의 심장은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태라 조그만 쇼크에도 다시 멈출 수 있는 상황에 처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어머니가 쓰러져 있던 8개월 동안에 천지개벽할 일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독정부는 붕괴되고 구동독지역은 독일연방공화국(BRD·구서독)의 연방으로 편입되기 직전이다. 이제 곧 통일독일이 탄생할 상황이다. 알렉스는 어머니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어머니의 심장은 견뎌내지 못하고 다시 쓰러지실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한 어떤 계획을 실천한다. 어머니가 견고한 공산체제의 구동독에 계속 머무르게 하는 것이다. 그를 위해 주변 사람들을 설득해 연기하게 하고, 통일 분위기의 주변 환경 또한 이전으로 바꾼다. 매체 역시 차단한다. 더 나아가 친구들과 가짜 뉴스를 만들어 어머니가 확고한 공산체제로서 동독의 소식을 듣게 한다. 이러한 등장인물들의 고군분투를 보고 있자면 연신 웃음이 터지지만 어딘지 애잔하고 슬프다. 메시지는 분명해 보인다. 영화는 동서독의 국경은 원래 존재하지 않았음을 상기시킨다.

‘굿바이 레닌’을 검색을 하면 선의의 거짓말, 혹은 이타적 거짓말이라는 키워드가 나온다. 매우 설득력 있다. 그러나 제작 시기와 개봉 당시 독일사회의 맥락에서 살펴보면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이 영화는 독일 국민들의 ‘불안’과 ‘후회의 정서’가 담겨 있기도 하다. 먼저 후회의 정서는 서민의 세금으로 충당되는 막대한 금전적 비용과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정서적 갈등을 대가로 지출한 통일 독일의 상황을 돌이켜 봤을 때, 급격한 방식이 아닌 점진적이고 느린 방식으로 통일이 됐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사회 저간에 깔린 여론을 통해 드러난다. 궁극적으론 그런 사실을 봉합하고자 한다. 그리고 21세기의 시작과 궤를 같이하는 유로화로 대변되는 화폐경제공동체로서 유럽연합의 출현에 대한 불안의 정서 역시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역시 새로운 형태의 국가연합을 위해 지출해야 할 비용과 갈등에 대한 우려가 영화 전체에 서브 텍스트로 녹아 있다는 독해도 가능하다. 한 편의 상업 영화의 기획의도에는 그 시대의 불안한 정서와 염원이 녹아 들어가기 마련이다. 즉 ‘굿바이 레닌’은 급진적인 통일보다는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오랜 협상과 협의에 의한 통일독일을 지향점으로 삼고 허구적 상황의 재현을 통해 구동독 체제의 급진적 붕괴가 아닌 연착륙을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과 동시에 새로운 체제실험인 화폐경제공동체로서 통일유럽에 대한 막연한 불안의 정서가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6월 12일 우리는 세기의 회담을 목도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기꺼이 역사의 주인공이 되고자 했다. 기대했던 종전 선언도 뜸을 들이는 모양이다. 조급함이 앞서나 느긋함이 미덕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그보다 필자가 주목한 것은 따로 있다. 김 위원장의 행보와 말이다. 우선 김 위원장은 김정일 시대의 종식을 선언했다. ‘굿바이 김정일!’ 아버지의 부정일까? 아니다. 고도의 전략으로 읽힌다.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핵무장으로 대변되는 ‘선군정치’에서 벗어나 새로운 패러다임을 도모하고자 하는 출구전략이다.

하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김일성시대의 종식을 선언한 것은 아니다. 회담 기간 동안 싱가포르에서의 김 위원장의 행보에서 그 행간을 분명히 읽을 수 있다. 김 위원장이 기획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북한 사회는 정치적으로는 김일성 주석가의 소위 백두혈통을 중심으로 하는 일당체제를 유지하며 경제적으로는 개혁개방을 통한 성장을 도모하고자 함이다. 그 모델이 바로 싱가포르인 것이다. 싱가포르는 적어도 김 위원장에게는 정치적으로 강력한 일당통치가 용이한 매우 모범적인 모델이며 경제적으로는 급진적인 성장이 가능한 개방적 모델인 것이다. 그런 싱가포르에서 회담을 갖고 야간시간을 활용해 국제적인 규모의 식물원을 관광하고 친동생인 김여정 노동당중앙위 부부장의 수행을 받으며 트럼프와 평화를 담보로 통 큰 거래를 성사시켰다. 사실상 노태우 대통령의 국방정책 결과로 남한이 중국과 러시아와 국교를 재개한 것을 목도한 김일성 주석의 유언은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고 국교를 체결하라는 것이라고 알려졌다. 이에 김 위원장은 ‘아버지 체제’의 종식을 선언함으로써 ‘아버지의 아버지가 남긴 유훈’을 완성하고자 한 것이다.

시선을 잠시 우리 대한민국으로 돌려 보자.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회담을 가진 다음 날 우리 시민사회는 6·13지방선거를 통해 ‘굿바이 보수’를 선언했다. 그러나 이 역시 숨겨진 행간을 읽어야 한다. 우리 국민은 ‘굿바이 보수’가 아니라 ‘헬로우 보수’를 선언한 것이다. 새로운 보수에게 인사를 건넸다는 말이다. 우리 시민사회는 지난 수구정권인 현 야당세력을 투표로 응징했다. 쉽게 말해 ‘굿바이 수구’를 선언하고 새로운 보수를 호출한 것이다. 새로운 보수는 건강한 체제에 기반해야 한다. 체제가 안정되고 공평무사와 분배의 정의를 이룰 때 그 체제를 유지하려는 보수는 건전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었을 때 진짜 좌파는 비로써 소수의견이 된다. 소수의 의견에도 경청하는 보수가 현재 집권여당이 되길 기원한다. 현재집권여당의 정체성은 중도우파로 규정될 수 있다. 현 진보당이나 녹색당이 진보정당으로 좌익을 담당해야 한다. 물론 극우 소수정당도 용인될 수 있다. 전쟁불사를 외치는 극우정당은 국민이 투표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니 권력을 가진 현 정권이 따로 헌재에 청구해 정당을 해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저마다의 사회에 필요한 시대정신으로 숨겨진 행간을 실천함으로써 완결된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와 화합을 이루기를 희망한다. 나아가 점진적인 방식의 통일도 논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새삼 돌아가신 김대중 대통령의 혜안에 존경심과 경외감이 든다. 독일의 역사는 1990년 통일독일이 1969년 빌리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에서 출발했다고 기록한다. 어느 특이시점의 미래에 평화로운 방식으로 통일된 한반도의 역사엔 햇볕정책을 제안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한 진정한 지도자와 그를 계승하고 마침내 결실을 본 훌륭한 지도자들이 있었음이 분명하고도 똑똑하게 기록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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