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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연의 오페라산책]‘유쾌한 미망인’, 오페레타의 새로운 지점 바라본 참신한 무대

[손수연의 오페라산책]‘유쾌한 미망인’, 오페레타의 새로운 지점 바라본 참신한 무대

기사승인 2018. 07. 02.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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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미망인1
국립오페라단의 오페레타 ‘유쾌한 미망인’ 중 한 장면./제공=국립오페라단
프란츠 레하르 작곡의 오페레타 ‘루스티게 비트베’(Die lustige Witwe)는 우리나라에서 주로 ‘유쾌한 미망인’ 혹은 영어제목 ‘메리 위도우’(The Marry Widow)로 불린다. 모두 비슷한 뜻으로, 유쾌한 혹은 명랑한 미망인 즉 ‘남편을 여읜 여자’를 얘기하고 있다. 남편을 잃어서 슬픔에 빠져있어야 할 여인의 이름 앞에 유쾌하다는 반어적 제목을 붙인 것은 오페레타가 갖는 장르적 특성 때문일 것이다.

1800년대 중반 프랑스 파리에서 생겨난 오페레타는 파리에서 많은 인기를 끌면서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도 크게 유행했다. 비엔나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작곡가들은 파리에서 건너온 오페레타에 지역적 특성을 보태, 당시 비엔나 상류층의 화려한 파티문화와 우아한 왈츠를 가미한 비엔나 스타일 오페레타를 선보이게 된다.

원래 서민이나 소시민 계급을 주요 관객층으로 했던 오페레타는 오페라보다 쉽고 가벼운 내용과 친숙한 음악을 특징으로 한다. 또한 복잡한 내용이나 심오한 철학을 담기보다는 흥겹게 즐기면서 한바탕 웃으며 마무리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풍자성이 강했던 파리 오페레타에 비해 비엔나 오페레타는 유희적 성격이 강했다.

이런 연유로 이 작품에 등장하는 미망인도 슬픔은 이미 떨쳐내고 유쾌하게 펼쳐지는 인생과 마주한 인물로 등장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비엔나 오페레타에서는 왈츠장면이 반드시 등장하고, 또 다른 사교춤을 추기 위한 무도회나 파티장면이 빈번히 나오는 까닭에 ‘유쾌한 미망인’ 역시 파리 주재 폰테베드로(극중 등장하는 가상의 국가) 대사관의 세련된 파티장면으로 시작해서 파리의 카바레 맥심에서 화려하게 막을 내린다.

6월 28일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첫 번째 막이 오른 국립오페라단(예술감독 윤호근)의 무대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아온 ‘유쾌한 미망인’과 사뭇 달랐다. 단순한 모노톤의 무대 중심에 자리 잡은 거대한 돔은 이야기 흐름에 따라 지구본으로, 카바레의 바(Bar)로, 파빌리온(정원 안에 건축된 정자개념의 휴게소)으로 다양하게 사용됐다. 또한 반구형 모양을 2단 케이크처럼 설치해 1단은 등장인물의 의자로, 계단으로, 단상으로 다채롭게 쓰였다. 연출자와 무대디자이너의 의도를 표현하면서 상대적으로 작은 공연장인 LG아트센터 무대를 효율적으로 활용한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유쾌한 미망인2
국립오페라단의 오페레타 ‘유쾌한 미망인’ 중 한 장면./제공=국립오페라단
오페레타는 오페라에 비해 내용적 변환이 자유로우며, 공연되는 나라의 언어로 번안한 작품으로도 부담 없이 공연된다. 따라서 그 나라의 문화적, 언어적 특성을 반영한 연출도 종종 볼 수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자유분방한 형식의 오페레타가 의외로 관객들에게는 상당히 고정된 이미지로 남아있다는 점이다. 오페레타에 관심을 가진 관객들이라면, 특히 ‘유쾌한 미망인’과 같은 유명한 오페레타라면 ‘무대는 이렇게, 파티장면은 이렇게, 인물의 춤과 동선은 이렇게…’라는 식으로 이미 정해진 형식에 대한 굳은 선입견이 형성돼 있다. 다시 말해 현대 오페라의 트렌드인 연출자 고유의 해석이 끼어들 여지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벨기에 연출자 기 요스텐은 이번 ‘유쾌한 미망인’을 기존의 방식으로 풀어갈 의사가 별로 없는 것처럼 보였다. 막이 오르며 파리 주재 폰테베드로 대사관 축제에 참석한 인물들은 모두 짙은 감색과 검정색 의상을 입고 있다. 선 굵고 단순한 무대와 어울려 세련된 인상을 주었지만 이전 ‘유쾌한 미망인’ 무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흥겨움이 넘치는 화려한 파티라기보다는 다소 암울하고 권태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작품에 등장하는 폰테베드로는 비록 가상의 국가지만 동유럽에 위치한 작은 나라쯤으로 설정돼 폰테베드로 출신 사람들은 서유럽과는 차별화되는 독특한 민속의상을 입고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파리나 폰테베드로라는 극중 배경의 특성을 알 수 있는 장치를 모두 배제해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어딘가로 바꿔놓았다. 익숙했던 민족적 특성이 사라진 이 작품은 시작부터 상당히 낯설게 보였다. 이런 부분은 2막에서 더 강조됐다. 한나가 폰테베드로 사람들을 초대해 고향의 노래와 춤을 연주하는 시간을 갖는데 흔히 민속의상을 입고서 한나의 노래를 감동적으로 감상했던 폰테베드로 사람들은 모두 인사불성으로 술에 취해 아무도 그녀의 노래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이 작품은 보통 주인공 한나와 다닐로를 중심으로 폰테베드로 사람들이 왁자지껄 유쾌한 소동을 벌이는 것으로 전개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날 무대에서는 배경적 특성은 지워지고, 등장인물들은 희극적이기보다 냉소적이었으며, 오로지 한나와 다닐로 단 두 사람의 관계에만 집중하고 있다.

초반 낯설게 느껴지던 무대는 극이 진행됨에 따라 점차 몰입도가 상승했다. 무대와 의상, 그리고 음악까지 연출 방향과 모두 일치했기 때문에, 다른 요소를 모두 희미하게 날리고 두 연인의 어긋나는 관계와 감정 표현에만 몰두하는 연출가의 의도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무대 위를 꽉 채워 자리한 돔은 겉포장을 벗겨낸 알맹이처럼 알차게 활용됐고, 그 위에서 주인공들의 캐릭터는 또렷하게 부각됐다. 한나는 사랑에 망설임 없이 적극적인 여인으로, 다닐로는 보다 시니컬하며 강한 질투심을 가졌으되 갈등하는 남자로 묘사됐다.

이날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 일등공신은 출연진들의 호흡이었다. 한나와 다닐로는 물론, 발렝시엔과 카미유, 제타 대사 등등 우리나라 출연진 대부분이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독일어 대사를 소화했고 합이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는 연기와 춤으로 오랜 시간 공들인 작품임을 짐작하게 했다.

특히 다닐로를 맡은 바리톤 안갑성은 클래식음악과 크로스오버를 넘나들며 활동 중으로, 원래 그 중간지점인 오페레타에서 발군의 기량을 주는 성악가다. 이날도 빼어난 연기와 유연한 몸놀림, 중후하면서도 감미로운 음색으로 다닐로를 잘 표현했다. 한나 글뤼바리 역할의 스페인계 미국 소프라노 바네사 고이코에체아 또한 풍부한 가창력과 인상적인 연기로 두 사람에게 강하게 초점이 맞춰진 이번 작품을 훌륭히 소화해냈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오페레타는 형식이 자유로운 것에 비해 고정관념도 상당히 강하게 존재한다. 그러나 이날 ‘유쾌한 미망인’은 기존의 작품과는 다른 새로운 오페레타를 선보였다. 끝으로 갈수록 연출의 궤도는 다시금 오페레타 본연의 매력을 찾아 발랄하고 유쾌한 피날레를 보여줬다. 그러나 작품 전반에서 드러난 권태와 냉소적 유머, 보편적 대상으로 일반화시킨 배경 등은 이전의 ‘유쾌한 미망인’들과는 분명 다른 지점을 바라보고 있다. 이 지점을 참신함으로 평가하고 싶다.

/손수연 오페라 평론가, 상명대 교수(yonu44@naver.com)


손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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