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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시인 “여성성 팔지 않아도 생존할 수 있는 사회 됐으면”

최영미 시인 “여성성 팔지 않아도 생존할 수 있는 사회 됐으면”

기사승인 2018. 07. 03.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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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서울시 성평등상 대상 수상 인터뷰서 솔직한 입담 과시…하반기 산문집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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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성평등상 대상을 수상한 최영미 시인. / 박은희 기자
“여성성을 팔지 않아도 생존할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어요. 미투운동이 더 진전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3일 서울시 성평등상 대상을 수상한 최영미(57) 시인이 시상식에 앞서 시청 3층 소회의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강조한 말이다. 최 시인은 지난해 시 ‘괴물’을 발표하며 문단 내 성폭력과 남성중심 권력 문제를 폭로해 미투운동이 사회적 의제로 확산되는 데 이바지했다.

그는 문학 창작활동을 통해 한국 사회의 일상에서 여성이 직면할 수밖에 없는 성적 불평등·사회적 모순과 치열하게 대면해 우리사회의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최 시인은 “‘괴물’을 썼을 때는 오늘 같은 날을 예상하지 못했다. 작년 9월에 ‘황해문화’의 청탁을 받고 쓴 시 3편 중 하나”라며 “시를 쓸땐 그렇게 고민을 많이 안 했는데 보내기 전에 이니셜을 ‘En’으로 할지 ‘N’으로 할지 조금 고민했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쓴 시를 다 외우지 못하는데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시는 저절로 외워진다. 그 시를 외우고 친구들한테 발표를 해도 좋을지 물어봤다”며 “대부분은 발표하라고 했고 걱정하는 친구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시 발표 후 대중들의 반응에 놀랐다는 최 시인은 “생각해보니까 타이밍이 맞은 것 같다”며 “당시 ‘내가 너무 뒷북을 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진작에 10년 전에 썼어야 하는데 너무 늦게 쓴 것 같아서 이 시대 여성들에게 미안한 감이 있었다”고 아쉬운 마음도 내비쳤다.

또 “누군가 해야 할 일을 내가 했다. 그게 칭찬받을 일이라고는 생각을 못했다”며 “나 개인한테 주는 상이 아니라 자신의 아픈 목소리를 세상에 알리는 모든 여성들에게 주는 상이라고 생각한다. 미투를 지지하는 이들에게 감사하다”고 수상 소감을 보탰다.

그는 고은 시인의 시가 초·중·고 교과서에서 빠진 것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 “복잡한 심정이다. 나는 굳이 그의 시를 교과서에서 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빼는 걸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다. 그의 시가 생명력이 있다면 교과서에 빼든 안빼든 살아남을 것”이라고 답했다.

1992년 ‘창작과 비평’을 통해 등단한 최 시인은 당시와 현재의 문단 분위기가 크게 바뀌진 않았다고 했다. 그는 “내가 등단했을 무렵에는 여성시인을 거의 기생취급하는 문화가 있었다. 여자 소설가보다 시인들이 집중적으로 성희롱과 성추행의 대상이었다”며 “그걸 모르다가 등단한 후 어느 시점에 딱히 뭐라고 표현하기 곤란한 불쾌함이 일상화돼 있었다. 나는 적응이 안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실 최근 10여년 간 문단사교계를 멀리했기 때문에 요즘 문단이 어떤지 잘 모르겠다”며 “후배 문인 한명에게 들은 바로는 문단 분위기가 최근까지 크게 바뀌진 않았다고 했다”고 말했다.

또 “한번 있던 게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그 당시 분위기와 조금은 달라졌겠지만 아주 많이 나아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괴물 주니어들이 넘쳐난다. 그(고은 시인)를 흠모하는 후배 남성들이 아주 많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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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성평등상 대상을 수상한 최영미 시인. / 박은희 기자
최 시인은 한 인터뷰에서 ‘아직 판도라의 상자를 다 연 것이 아니다. En선생 문제가 아니라 더한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당시 말한 ‘더한 사람들’에 대해 추가적으로 폭로할 계획이 있는지 묻자 최 시인은 “괴물과 싸운 것으로도 힘에 부쳤다. 그 말을 한 취지는 약간의 경고였다”며 “판도라의 상자를 내가 다 열 수가 없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분위기가 더 이상 여성들에 대한 공공연한 성추행이나 성폭력을 묵인하지 않는 사회가 됐다고 생각한다”며 “반성해야 할 그들도 알고 있다”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아울러 “그 발언 때문에 나한테 과거에 성추행을 한 사람이 SNS 상에서 먼저 공격한 적이 있다. 시인 A는 내 엉덩이를 만진 사람”이라며 “내 시가 화제가 된 이후에 인터넷에서 나를 공격한 남성 문인과 여성 문인도 있다. 그중 일부는 나한테 직접 성추행을 하거나 성희롱을 한 사람”이라고 폭로했다.

이어 “내가 그 판도라의 상자를 얘기하고 그들이 먼저 찔려서 공격한다는 걸 안다”며 “실명을 말하고 싶진 않다. 실명을 말하면 진흙탕 싸움이 될 것이다. ‘내가 알고 기억하고 있다’ 경고만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 시인은 문학계에서 성평등 문제를 해결했다고 체감하려면 우선 문화예술계 권력을 여성들에게 나눠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문학상 심사위원들이 거의 남성들이고 문화계 고위공무원들, 문화예술계 큰 수장들도 대부분 남자”이라며 “일단 문학상 심사위원 절반을 여성으로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시인은 “오랫동안 존재했던 악습이 갑자기 사라지진 않는다. 올해 일어난 미투가 사회에 충격을 줬다고 생각한다”며 “당분가는 조심하는 분위기가 되고 이게 지속돼야 보수적인 한국사회를 바꾸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난 희망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 “내 시 한편으로 시끄러워졌다는 자체가 긍정적인 징조라고 본다. 사회가 이미 변할 준비가 돼 있었다”며 “이 사회에서 여성들의 ‘더 이상 못참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고 남성들도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이어 “직장에서 일상화된, 상사의 부하 여직원에 대한 추행에 대해서 같은 남직원들도 분노하고 있지 않았나. 그렇지 않았다면 이 문제가 크게 확대될 수 없었을 것”이라며 “한국 사회가 변화를 감당하는 수준으로 올라왔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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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성평등상 대상을 수상한 최영미 시인. / 박은희 기자
미투운동에 이어 최근 확산되고 있는 탈코르셋 운동에 대해 최 시인은 “어느 정도 찬성은 한다”며 “어쩔 수 없이 화장을 해야 하는 상황은 있지만 극단적인 경우는 좀 지양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그는 “면접시험을 앞두고 성형수술을 한다든가 과도한 치장을 한다든가 그런 문화는 없어지면 좋겠다”며 “탈코르셋 운동을 하는 분들이 대부분 젊은 분들이지 않나. 치마 입지 말자고 하는 말도 있더라. 나이들수록 치마가 편하다”고 해 웃음을 자아냈다.

최 시인은 “세세한 것까지 투쟁의 대상으로 삼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냥 자유롭게 살면 되지 않을까”라며 “여성에게 진한 화장을 강요하는 사회일수록 그 사회에서 여성의 삶의 질이 낮다고 생각한다. 강제로 막을 순 없겠지만 외모보다는 인격과 실력으로 승부하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향후 활동계획을 묻는 질문에 그는 “내가 2016년 봄부터 시작한 SNS의 글들을 모아서 올해 하반기에 산문집을 하나 내려고 한다”며 “몇십년 간 사회적 이슈에 대해 발언한 적이 거의 없었다. 이번에는 내가 목소리를 내려고 낸게 아니라 시 한편 썼는데 파장이 컸기 때문에 생각이 좀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 힘들어서 여러번 시를 놓으려고 했다. 40대 이후에는 시인으로 사는 삶이 나한테 맞지 않는 게 아닌가 싶어 ‘다른 직업을 택할까’ ‘시가 아닌 소설을 쓸까’ 고민하기도 했다”며 “끝끝내 시를 놓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약간의 책임감을 느끼고 요새 조심을 하고 있다”고 솔직한 심경을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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