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1 (15) | 0 | 폐암수술을 받은 고(故) 최종현 회장(왼쪽 두번째)이 IMF 구제금융 직전인 1997년 9월, 산소 호흡기를 꽂은 채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 경제위기 극복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제공 = SK그룹 |
|
고(故) 최종현 SK 선대회장이 오는 26일 타계 20주기를 맞는다. 최 선대회장은 오늘날 대한민국을 무자원 산유국으로 만들고, 정보통신기술(ICT)·반도체 강국의 기반을 닦은 한국경제의 선각자로 평가받고 있다.
12일 SK그룹에 따르면 최 선대회장 20주기를 맞아 구성원의 기부금을 모아 숲 조성 사회적기업인 트리플래닛에 전달, 5만평 규모의 숲을 조성하기로 했다. 14일부터는 고인의 업적과 그룹의 성장사를 살펴 볼 수 있는 20주기 사진전을 주요 사업장에서 개최하고, 24일에는 워커힐호텔 비스타홀에서 경영철학을 재조명하는 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 최태원2 | 0 |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올해 1월 서울 광장동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2018년 신년회에서 새해 경영계획을 발표하고 NEW SK를 만들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제공 = SK그룹 |
|
◇최 선대회장 경영철학, 최태원 회장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져
최 선대회장이 SK를 직물회사에서 석유화학과 정보통신을 아우르는 그룹으로 성장시켰다면 최태원 회장은 2011년 하이닉스 인수 등을 통해 반도체와 바이오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최 회장은 하이닉스 인수 직후 “하이닉스가 SK 식구가 된 것은 SK의 반도체 사업에 대한 오랜 꿈을 실현하는 의미가 있다”며 30년전 최 선대회장의 못다 이룬 꿈을 언급한바 있다.
1998년 최 회장이 취임할 당시 매출 37조4000억원, 순이익 1000억원, 재계 순위 5위였던 SK그룹은 현재 매출 158조원, 순이익 17조3500억원, 재계 순위 3위로 성장했다. 아울러 최 선대회장의 사업보국과 사회공헌 경영철학은 최 회장의 사회적가치와 공유인프라 전략 등으로 진화 발전해 여러 이해관계자의 더 큰 행복을 키워나가고 있다.
이항수 SK그룹 홍보팀장(전무)은 “최종현 회장의 혜안과 통찰 그리고 실천력은 후대 기업인이 본받아야 할 가치로 인정받고 있다”면서 “SK그룹은 앞으로도 최종현 회장의 경영철학을 올곧게 추구해 사회와 행복을 나누는, 존경받는 일등기업으로 지속 성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사진4 | 0 | 고(故) 최종현 회장이 1981년 초 내한한 야마니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오른쪽에서 두번째)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제공 = SK그룹 |
|
◇‘운(運)만으로 큰 사업 할 수 없다’ 치밀한 준비로 꿈 실현
최 선대회장은 1973년 당시 선경(現 SK)을 원유정제는 물론 석유화학, 필름, 원사, 섬유 등에 이르는 수직계열화로 세계 일류 에너지·화학 회사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천명했다. 자본·기술·인재가 없었던만큼 불가능할 것이란 우려가 팽배했다. 그럼에도 최 선대회장은 장기적 안목과 중동지역 왕실과의 석유 네트워크 구축 등으로 1980년 대한석유공사(유공)를 인수했다.
이후 최 선대회장은 1983년부터 해외유전 개발에 나섰다. 그 이듬해인 1984년 북예멘 유전개발에 성공했으며, 1991년 울산에 합성섬유 원료인 파라자일렌(PX) 제조시설을 준공,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미래설계를 위해서도 고군분투했다. 최 선대회장은 산업동향을 살피기 위해 1984년 미국에 미주경영실을 세웠다. 더불어 정보통신 분야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은 최 선대회장은 미국 ICT 기업들에 투자하고 현지법인을 설립해 이동통신사업을 준비했다.1992년 제2이동통신사업자에 선정됐지만 특혜시비가 일자 사업권을 자진 반납했다. 이후 최 선대회장은 2년 뒤 문민정부 시절인 1994년 한국이동통신 민영화에 참여,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했다.
| 사진2 (5) | 0 | 고(故)0 최종현 회장이 1986년 해외 유학을 앞둔 한국고등교육재단 장학생들에게 장학증서를 전달하고 있다. /제공 = SK그룹 |
|
◇‘인재를 키워야 경제대국으로’ 일등국가를 꿈꾼 재계리더최 선대회장은 1972년 조림사업으로 장학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서해개발(現 SK임업)을 설립했다. 1974년에는 사재로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했다. ‘일등국가가 되기 위해선 세계적 수준의 학자들을 많이 배출해야 한다’는 최 선대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재단이다. 당시 재단은 해외 유학비용은 물론 생활비까지 지원했다.
재단은 44년간 약 3700명의 장학생을 지원했고, 740명에 달하는 해외 명문대 박사를 배출했으며 80% 이상이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동양계 최초 예일대 학장인 천명우(심리학과), 한국인 최초 하버드대 종신교수 박홍근(화학과) 등은 학술교류와 민간외교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시대를 앞선 유언으로 화장(火葬)과 통 큰 기부문화 이끌어
최 선대회장은 폐암으로 타계하기 직전 “내가 죽으면 반드시 화장하고, 훌륭한 화장시설을 지어 사회에 기부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사회지도층 인사 중 처음으로 화장을 택하면서 장례문화를 선도한 것이다. 1998년 당시 20%에 불과했던 화장률은 이듬해 30%를 넘는 등 매년 급증했으며, 현재는 82%에 달한다.
SK그룹은 최 선대회장의 유언에 따라 2010년 1월 500억원을 들여 충남 연기군 세종시 은하수공원에 장례시설을 준공해 세종시에 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