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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시장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는데…

[칼럼] 시장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는데…

기사승인 2018. 09. 17.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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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석
논설심의실장
시장경제가 작동하는 원리와 이를 ‘규제’의 채찍으로 길들이려고 할 때 만들어내는 문제들에 대해 ‘이해’하게 된 경제학자들이 후학들에게 물려준 화두(話頭) 가운데 하나가 ‘시장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는 경구(警句)다. 그래서 이 경구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살펴보는 것은 특별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의미가 있다. 특히 최근 ‘정부가 시장을 이길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논란을 일으켰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우선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개념을 경제학자 러셀 로버츠가 이해하기 쉽게 쓴 소설, ‘보이지 않는 마음’에 나오는 흥미로운 사례부터 보자. 호주가 영국 식민지일 때 영국 정부는 죄수들을 호주로 보내는 사업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죄수들을 시민들로부터 격리시키려고 런던탑과 같은 감옥소를 운영하느라 세금을 쓸 필요가 없고 죄수들에게 호주를 개발시켜 세금까지 거둘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이 사업은 곧 난관에 직면했다. 당시 호주까지의 죄수 호송이 너무 오래 걸려 죄수들이 호주에 도착하기 전 대부분 병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해결책으로 영국 정부는 죄수를 이송하는 선주들에게 약이나 식량 비치 의무 등을 부과하고 지키지 않으면 강력하게 처벌하는 ‘규제’들을 만들었다. 그런 규제들을 만들어 선주들에게 ‘한 대 맞고 이를 지킬지 그냥 지킬지’ 압박했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런 시행착오 끝에 영국 정부가 선주들에게 죄수들의 생존율에 따라 선주들에게 더 많은 보상을 해주자 죄수들의 생존율이 급격히 높아졌다는 점이다. 선주들의 자비심이 변한 것도 아닌데 죄수들의 건강상태가 선장들의 최고 관심사가 됐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시장에서도 공급자들이 소비자들의 필요를 더 잘 충족시킬수록 더 성공하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공급자들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없더라도, 혹은 그런 규제가 없을수록,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필요가 충족될 수 있다.

규제자들은 규제를 만들면 저절로 준수된다고 여기기 쉽지만 실은 감시비용과 준수비용이 든다. 또 감시자가 뇌물 등에 넘어가지 않는지 감시해야 하는 문제도 발생한다. 물론 규제가 매우 강하고 집행도 잘되면, 선주들은 호주로의 죄수 호송을 아예 피할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의 규제가 강력할수록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자영업자들은 최저임금 규제를 지키며 사업을 계속하기보다는 문을 닫는다.

이처럼 ‘매를 들고 채찍질하는 게 능사가 아니고’ ‘누이 좋고 매부 좋게’ 자발적으로 경제활동에 나서게 하라는 게 이 사례의 교훈이다. ‘시장을 이길 정부가 없다’는 경구는 이런 교훈을 달리 표현한 것이다. 정부가 강력한 강제력으로 누르면 원하는 것을 다 달성할 수 있다고 ‘치명적 자만’에 빠지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가 강하다.

물론 정부의 의도를 달리 해석하면 정부는 언제든지 시장을 이길 수 있다. 예를 들어 정부의 의도가 최소한 법정 최저임금을 줄 여유가 없는 소상공인들이 문을 닫게 하려는 것이라면 정부는 언제든지 강력한 규제로 원하는 바를 달성할 수 있다. 만약 정부의 의도가 그게 아니라 언론에 보도되었듯이 경제성장이나 약자 보호와 같은 것이라면 ‘시장을 이길 정부는 없다’는 위의 사례가 주는 교훈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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