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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태평양 ‘전략’→‘구상’으로 수정한 일본의 ‘꾀’

인도·태평양 ‘전략’→‘구상’으로 수정한 일본의 ‘꾀’

기사승인 2018. 11. 13.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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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간 협력은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중요한 작업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지난 6일 방일한 마하티르 모하마드 말레이시아 총리와의 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말레이시아에 대한 투자와 관련, 이 같이 ‘일본어’로 말했다. 당시 통역은 아베 총리의 인도·태평양 구상을 ‘Indo-Pacific strategy(인도·태평양 전략)’라고 영어로 전달했다. 그러자 일본 총리 관저의 직원이 나서 “정정해야 한다”며 ‘strategy(전략)’가 아닌 ‘vision(구상)’이라고 수정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13일 일본이 중국 견제 전략을 바꿨다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가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전략’을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구상’으로 수정했다는 것. 이처럼 ‘전략’이 ‘구상’으로 빠뀐 것은 배경이 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아시아 국가들의 협력이 필수적이지만 아시아 국가들은 중국의 눈치를 보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는 전략이라는 ‘거북한’ 말을 버리고 중국 견제의 색깔을 옅어지게 하기 위한 대체 용어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구상인 셈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 2016년 처음으로 인도·태평양 전략을 내세웠다. 인도양에서 태평양까지 걸쳐 있는 지역에서 법의 지배나 시장경제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들의 협력을 위한 것이다. 미국·호주·인도·일본 4개국이 주도한다. 특히 아시아에서 적극적인 인프라 투자나 해양 진출을 추진하는 중국에 제동을 걸기 위한 목적도 있다.

이 전략은 지금도 계속 추진되고 있다. 아베 총리는 14~18일 싱가포르·호주·파푸아 뉴기니 등 3개국을 방문한다. 그는 14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세안 정상회의는 물론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의 회담에서도 중국의 남중국해 진출 억제, 인도·태평양 구상에 대한 협력을 호소할 방침이다. 아베 총리는 출국하기 전 12일 관저에서 열린 정부·여당 연락회의에서 “자유롭게 개방된 인도·태평양 구상의 실현을 위해 참가국과 연계해 국제 사회에 강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언급했다.

전략이 구상으로 수정된 계기는 지난 8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당시 의장 성명엔 일본이 추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이라는 말이 담겼다. 일본 외무성에 따르면 성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아세안 국가들에게서 “전략이라는 표현이라면 참가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이에 일본 정부가 다른 표현으로 변경하는 검토에 돌입했던 것.

일본 정부의 한 관계자는 “전략이라는 말은 ‘상대국을 패배하게 하다’라는 의미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즉, 아세안 국가들에게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읽힌다는 것이다. 전략이라는 단어는 원래 군사 용어다. 중국을 경계하는 틀이 잡히면 아시아 국가들은 중국의 압력을 의식해 참가하기 힘들어진다는 게 신문의 분석. 이 때문에 일본 정부는 전략보다는 한층 온건한 표현인 구상으로 용어를 바꾼 것이다.

용어 변경은 최근들어 중·일 관계가 개선됐다는 배경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아베 총리와 시진핑(習近平) 중국 총서기 겸 국가주석은 양국의 관계가 정상궤도에 이르렀다고 선언했다. 중국의 일대일로에 대한 일본의 협력도 확인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에 대한 견제를 숨기지 않고 있다. 때문에 인도·태평양 전략이라는 표현을 계속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 일본 정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일본이 미국과는 ‘전략’, 아세안 등과는 ‘구상’으로 나눠서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용어의 이중적(二重的) 활용을 통해 아시아 국가들의 협조를 끌어내겠다는 ‘꼼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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