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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프롤로그로서 혹은 프롤로그로써 영화 “국가부도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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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프롤로그로서 혹은 프롤로그로써 영화 “국가부도의 날”

기사승인 2018. 12. 04.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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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석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연일 화제다. 영화는 현재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네 삶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IMF 체제가 어떻게 시작됐는지를 정면에서 다루고 있다. 필자가 흥미롭게 본 것은 ‘국가부도의 날’이라는 영화의 제목을 맨 뒤에 달았다는 점이다. 간혹 독립 단편영화에서 제목이 뒤에 달리는 경우가 있다. 이는 ‘본 단편은 차후에 만들어질 장편영화의 프롤로그에 해당된다’는 선언으로서 작가의 자기암시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가끔 장편영화에서 프롤로그가 유난히 길다 싶은 작품이 있다. 그 경우엔 대부분 관객의 몰입을 극대화시키는 전략으로써 일종의 워밍업이라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영화 ‘화씨 911’의 경우 타이틀백이 뜰 때까지 13분 정도의 프롤로그가 이어진다. 이는 관객들이 안티 부시 대열에 동참하게 하기 위한 설득 커뮤니케이션의 사전준비 단계에 해당한다. 즉, 911사태를 초래한 책임이 당시 대통령이었던 부시에게 있었다는 주장을 펴기 위한 장치이다. 정부와 언론이 생산한 뉴스릴 중에서 사용하고 남은 자투리 영상들을 모아 재구성하는 브리콜라주(bricolage) 방식으로 재현한 프롤로그에서 부시와 그의 정부각료들은 희화화된다. 곧이어 제목이 뜬 후 911 사건 당시 빌딩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상황이 담겨 있는 실제 영상을 보여주게 되면 관객들은 ‘우리가 저런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자들에게 정부를 맡겼었나’하는 자괴감과 분노를 느끼게 된다. 부시를 미워할 준비가 된 것이다.

‘국가부도의 날’ 역시 도입부에 대한민국의 산업화 과정 중에 생산된 기사와 방송 뉴스릴을 몽타주 해 시대적 상황을 압축시켜 보여준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 특유의 빠른 산업화는 결과적으로 그 속도를 따라갈 만큼 위기관리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으며 부패와 무사안일의 태도를 만연케 해 OECD 가입과 동시에 국가부도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그러나 프롤로그처럼 보이는 도입부 이후에도 ‘타이틀’은 뜨지 않고 영화의 끝, 크레디트가 올라가기 직전에 가서야 영화 제목이 서울 강남 테헤란로를 배경으로 나타난다. 이와 같은 형식은 일종의 ‘암시’로서 영화는 한 편의 프롤로그가 된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작가의 자기암시로서 속편을 전제함이 아니다. 영화 전편은 ‘현실의 프롤로그’일 가능성이 크다.

‘국가부도의 날’은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해 르포 형식으로 90년대 중후반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화 세력이 IMF를 동원해 당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신흥국들의 경제 주권을 무력화시키려 했던 상황을 설명한다. 또한 IMF 체제였던 1997년 이후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정부 고급 관료들의 왜곡된 엘리트 의식과 재계의 야합 과정을 재현한다. 영화는 80년대 레이거노믹스 이후 미국이 세계화라는 그럴싸한 용어로 고용의 불안과 극심한 빈부격차 같은 폭력적인 결과를 초래할 신자유주의를 포장하고, 네트워크화된 세계에서 금융자본이라는 핵폭탄급 무기를 가공해 다른 주권국들을 자신들의 질서로 예속시키고 있었던 사실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그러나 영화는 영리하게도 ‘IMF 체제’를 만든 장본인으로서 당시 시장주의자들과 수구세력의 준동을 엄하게 질책함과 동시에 정부가 ‘현실의 프롤로그라는 영화적 형식’을 통해 가계부채라는 폭탄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다. 우려스러운 것은 ‘현실의 프롤로그로서’ 자격을 갖춘 이 영화가 개혁을 추진 중인 정부를 향해 어려운 경제에 집중하지 않고 적폐 청산과 같은 국론분열을 조장하는 일에 매달리고 있다는 수구세력의 도구로써 활용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문제는 경제임이 분명 하나 오랜 기간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았던 것은 관료들의 밀실행정과 정경유착이라는 적폐였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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