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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년 전 학살 상징 종’ 필리핀에 반환 계기, 두테르테 다시 미국 쪽으로 기우나

‘117년 전 학살 상징 종’ 필리핀에 반환 계기, 두테르테 다시 미국 쪽으로 기우나

기사승인 2018. 12. 14.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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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AP, 연합


117년 전 필리핀-미국 전쟁 당시 미군이 전리품으로 필리핀에서 가져간 ‘발랑기가의 종’이 최근 필리핀으로 반환됐다. 미국의 필리핀 민간인 학살을 상징하는 이 종의 반환은 취임 이후 줄곧 친중탈미(親中脫美) 노선을 택해 왔던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중국의 지나친 역내 영향력 확대를 우려, 외교 중심축이 다시 미국 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적 사건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닛케이아시안리뷰의 14일 보도에 따르면 성 김 필리핀 주재 미국 대사는 지난 11일 메트로마닐라 파사이의 빌라모르 공군기지에서 필리핀-미국 전쟁 당시 미군이 가져간 발랑기가의 종 3개를 필리핀에 반환했다.


이 종 가운데 2개는 지난달 14일 미국 와이오밍 주 샤이엔의 워런 공군기지에서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과 호세 마누엘 로무알데즈 주미 필리핀 대사가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을 갖고 반환을 위해 출발했다. 


한국 경기 의정부 주한미군 2사단 영내 박물관에 전시돼 있던 나머지 1개의 종도 지상 수송을 통해 오산 공군기지로 이동, 일본 가네다 공군기지로 옮겨진 뒤 다른 2개의 종과 합류해 필리핀으로 향했다.

발랑기가의 종은 원래 필리핀 사마르섬 발랑기가의 성답 종탑에 있던 것으로 1899년부터 1902년까지 진행된 필리핀-미국 전쟁 당시 미국이 전리품으로서 노획한 것이다. 1901년 9월 28일 필리핀 반군 300명은 여성으로 변장해 무기가 든 목관을 들고 성당에 잠입, 이튿날 아침 미사를 알리는 종소리에 맞춰 현지에 주둔 중이던 미군 9연대를 기습 공격했다. 이로 인해 미군 48명 가량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 미군 9연대는 보복을 위해 현지 주민 수천 명을 학살한 뒤 시신과 성당 등에 불을 질러 마을을 초토화하고 종 3개를 전리품으로 가져간 것으로 전해진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해 의회 연설을 통해 이 종들이 ‘필리핀의 유산’이라며 미국에 반환을 요구했다. 당시 두테르테가 발랑기가의 종 반환을 언급한 것은 자신이 추진하는 초인권적 ‘마약과의 전쟁’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에 대항하기 위한 시도라는 해석도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당시 미국 행정부가 이 마약과의 전쟁의 인권 침해를 문제 삼으면서 양국의 관계는 크게 흔들린 바 있다. 오바마로부터 인권 문제로 압박을 받던 두테르테 대통령은 2016년 10월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베이징을 방문한 자리에서 ‘미국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중국 뿐만 아니라 러시아와도 관계를 강화하며 미국과의 군사적 관계를 줄이고자 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발랑기가의 종 반환을 계기로 두테르테의 외교 노선이 다시 미국 쪽으로 한발짝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오바마의 뒤를 이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두테르테 대통령을 괴롭혀오던 인권 침해 문제에 대해 크게 문제 삼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서 두테르테 대통령의 ‘반미(反美) 레토릭’도 차츰 줄어들었다. 


또한 중국이 이 지역에서 전략적·경제적 헤게모니 확대를 추진하는 것에 대한 경계라는 공동의 이해관계가 생기면서 과거의 갈등은 조용히 한 쪽으로 미뤄두는 모습이다. 델핀 로렌자나 필리핀 국방장관은 지난주 한 포럼에서 남중국해 영유권을 둘러싼 중국과의 갈등을 언급하며 “중국을 상대하는 데 있어 필리핀의 가장 큰 힘은 바로 미국”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 동남아시아 담당 그레고리 폴링 연구원은 지난해 필리핀 민다나오섬 마라위 시에서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추종 반군과 필리핀 정부군이 교전을 벌였을 때, 미군이 정부군을 지원한 것이 양국 관계 개선에 결정적으로 도움을 준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두테르테 대통령은 앞으로도 미국과 중국 양대 강국 사이에서 균형 외교 정책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필리핀 국빈방문 당시, 두 정상은 수십억 달러 상당의 계약 및 투자를 약속하고, 석유·가스 공동 개발과 관련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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