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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깨끗한 세상 너머 따뜻한 세상을

[칼럼] 깨끗한 세상 너머 따뜻한 세상을

기사승인 2019. 01. 11.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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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아침의 기원
이우근 변호사 사진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고문 / 숙명여대 석좌교수
지난해 정의를 외치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았습니다. 적폐로 지목된 옛 실세(實勢)들이 단죄되고, 권력의 성역에 심판의 칼이 내리꽂혔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심판받는 쪽도 고백과 참회에 불성실했고 심판하는 쪽도 관용과 이해에 인색했던 우울한 현실입니다. 그 암담한 비인간성에 숨이 막혀옵니다. 불현듯 종교사학자 자크 엘륄의 경고가 가슴을 때립니다. “인간은 자기의 선 때문에 더 악해질 수 있다!” 인간사에 절대정의나 절대선이 있을 리 없건만, 심판석의 위도 아래도 모두 절대정의의 오만에 빠지지 않았는지, 악으로 낙인찍힌 목을 내리치는 칼날이 절대선의 오류로 더럽혀지지 않았는지… 깊은 고뇌 안고 스스로 돌아보게 하소서.

깨끗한 세상 꿈꾸다 살벌한 세상 만날까 두렵습니다. 지역·이념·세대·계층에 따라 갈가리 찢기고 나뉘어 서로 으르렁거리는 이 땅에서, 분노와 증오로 무장한 날선 정의보다 용서와 관용으로 어우러진 넉넉한 화합이 더 절실한 덕목임을 깨닫게 하소서. 선과 악, 옳고 그름을 갈라치는 차가운 머리보다 포용과 인내를 품어 안은 따뜻한 가슴이 더 아쉬운 시절입니다. 정의와 도덕은 남을 심판하는 잣대이기 전에 내가 먼저 실천해야 하는 가치임을 알게 하소서. 자기의 도덕적 우월성을 자랑하는 것처럼 부도덕한 일이 없고, 자기의 정의로움을 떠벌리는 것만큼 정의롭지 못한 일도 없는 법… 도덕적일수록 더 겸손해지고 정의로울수록 더 너그러워지는 삶을 배워가게 하소서.

양극화의 그늘이 깊어가면서 민초들의 삶이 나날이 고달파집니다. 바라건대, 불황의 짙은 어둠 속에서도 비탈에 선 소나무처럼 푸르름 잃지 않고, 각박한 세태의 폭풍우에도 산마루의 바위처럼 흔들림 없게 하소서. 숲속의 들꽃처럼 꽃망울 활짝 터뜨려도 큰소리치지 않고, 비바람에 시달려도 눈물 흘리지 않게 하소서. 골짜기를 흐르는 시냇물처럼 메마른 삶의 계곡을 촉촉이 적시며, 오염된 이념의 강둑을 지나고 극렬한 구호들의 사나운 파도를 넘어 마침내 불기청탁(不忌淸濁)의 너른 바다에 다다르게 하소서.

올해는 돼지해입니다. 돼지의 내장은 해부학적으로 사람의 장기와 매우 비슷해서, 돼지의 장기를 사람 몸에 이식하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답니다. 그렇지만 돼지와 인간이 닮은 것은 꼭 내장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게걸스레 먹어대는 탐욕도 아주 흡사합니다. 어찌 음식뿐이겠습니까. 돈·권력·명예·지위 따위에 목매듯 집착하는 모습은 먹거리 앞의 돼지처럼 볼썽사납고 추레할 따름이니, 우리가 바라는 것들이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가 되지 않게 하소서. 집 가(家)자는 집 안에 돼지가 들어앉은 형상이지만, 우리 마음 안에는 돼지가 들어앉지 않게 하소서. 돈 없는 경제적 가난만이 아니라 돈밖에 아무 것도 없는 정신적 가난도 비참한 불행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새해 새날들로 지난해 우리의 옛 삶이 치유되기를 소망합니다. 역사의 엄정한 공의로 시류(時流)에 휘둘리는 한때의 정의를 꾸짖으며, 가장 낮은 자리에 내려앉은 바다의 겸손으로 더 높은 자리에 오르려는 교만을 꺾으소서. 한겨울 여윈 나무들의 가난한 마음으로 우리의 터질 듯 부풀어 오른 탐욕을 녹여내고, 대자연의 가없는 사랑으로 곳곳의 패거리들이 쌓아올린 미움의 벽을 허무소서. 수억 개의 별들이 충돌 없이 공전하는 하늘의 평화로 이 땅의 부질없는 다툼을 그치게 하소서.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 하루가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내일인가.” 그리스 비극작가 소포클레스의 탄식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새롭게 살아갈 이 한 해가 지난해 죽은 이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새해일진대, 올 한 해를 헛되이 살지 않게 하소서. 새해를 그리워하다 지난해 세상 떠난 이웃들의 애틋한 한(恨)을 우리의 허튼 삶으로 모독하지 않게 하소서. 그리하여, 새해 아침의 밝은 빛이 깨끗한 세상 너머 따뜻한 세상을 환히 비춰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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