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최고위 권력층에 새해 벽두부터 조용하고도 미묘한 숙청 바람이 불어대는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조금 깊이 들어가 분석할 경우 권력투쟁일 가능성도 농후한 상태다.
이런 관측은 자오정융(趙定永·68) 전 산시(陝西)성 서기가 돌연 낙마하면서 당정 최고위층 관련자들의 이름이 줄줄이 거론되는 현실을 보면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당 기관지 런민르바오(人民日報)를 비롯한 중국 언론의 최근 보도를 종합하면 그의 낙마 이유로는 두 가지가 꼽힌다. 무려 1000억 위안(元·16조5000억 원)이 넘는 산시성의 한 광산개발 계약권 증발 사건 및 역내 친링(秦嶺)산맥 지역에 불법 건설한 호화별장촌과 관련한 비리 등이다. 특히 결정적인 것은 2003년 모 기업인이 산시성 지질광산탐사개발국과 체결한 초대형 계약이 갑자기 ‘공중 증발’해 버린 전자의 사건. 자오 전 서기는 이와 관련한 이권에 깊숙하게 개입돼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자오정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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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 사건으로 낙마한 자오정융 전 산시성 서기와 위기에 직면한 후임 러우친젠 현 장쑤성 서기./제공=런민르바오
결국 이 사건은 개인 사업자가 장장 15년 동안에 걸친 소송을 통해 승소를 하게 돼 산시성 정부가 권위에 큰 상처를 입었다. 재정적으로도 상당한 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연히 비난의 화살은 2000년대 초반부터 무려 15년 동안 성장·서기를 역임하면서 산시성의 제왕으로 군림한 그에게 쏟아질 수 밖에 없었다. 동시에 그의 후임이던 현 장쑤(江蘇)성의 러우친젠(婁勤儉·63) 서기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급기야 자오 전 서기는 비리 혐의로 사정 당국에 신병이 확보되기에 이르렀다. 러우 서기도 상당히 위태로운 지경에 내몰리게 됐다는 것이 소식통의 전언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두 사람과는 별로 연결고리가 없을 것 같은 최고인민법원(대법원)의 저우창(周强·59) 원장 역시 이 사건으로 유탄을 맞았다. 개인 사업자가 제기한소송이 산시성과 자오 전 서기에 유리하도록 재판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연초 폭로되면서 처지가 난처하게 된 것. 현재 분위기로 보면 의혹이 거의 사실인 만큼 어떤 형태로든 처벌을 받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묘한 것은 이들 세 사람이 하나 같이 시진핑(習近平) 총서기 겸 국가주석에게는 부담스러운 존재인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 두 전임자 시절 승승장구했던 실세였다는 사실. 자오 전 서기와 저우 원장은 후 전 주석의 권력 중추였던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출신이며, 러우 서기는 장 전 주석이 총애한 테크노크랫이었던 것. 색안경을 끼지 않더라도 뭔가 엮여졌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 수 있다. 실제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들도 그동안 중국 사정 당국이 두 전 주석과 세 실세들을 엮기 위해 줄기차게 뒤를 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시 주석 쪽으로 확 기울어진 운동장이기는 해도 권력투쟁의 냄새는 충분히 난다고 볼 수 있는 것.
시 주석은 절대 권력을 지향하고 있다. 영구 집권을 노린다는 소문도 없지 않다. 하지만 전직 두 주석을 필두로 하는 전·현 당정 최고위층으로부터 이런 저런 견제를 받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본인 역시 뭔가 반응을 보이면서 힘을 과시할 필요성이 있다. 이런 사실을 상기할 경우 자오 전 서기의 낙마로 시작된 당정 최고위층에 대한 숙청 행보에 권력투쟁의 분위기가 물씬거린다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