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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용산시민공원, 역사적 생태도 중요하다

[칼럼]용산시민공원, 역사적 생태도 중요하다

기사승인 2019. 01. 23.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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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상
정도상 6·15민족문학인 남측협회 집행위원장
초등학교 시절 서울 사당동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찌그러진 양동이를 하나씩 들고 방배동을 지나 서초동까지 걸어오면 롯데칠성사이다 창고 근처에서는 꿀꿀이죽을 팔았다. 꿀꿀이죽은 용산에 있는 미군부대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먹다 남은 햄 덩어리와 빵과 음식 잔반들을 모아 잡탕으로 끓인 죽이었다. 그 죽을 온가족이 나눠 먹었다.

얼마 전 꿀꿀이죽의 근원지인 용산 미군기지를 처음 답사했다. 지세를 보니 미군기지는 한반도의 심장을 움켜쥐기 딱 알맞은 곳이었다. 용산에서 광화문까지 야트막한 동산 하나 없었다. 독립된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결코 존재해서는 안 될 외국군 주둔지였다.

일제는 1904년 2월 용산역 동쪽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육군임시철도감부 청사를 지었다. 철도를 이용해 조선은 물론이고 만주를 비롯한 동아시아 전체를 침략하기 위한 청사였다. 일본은 1904년 러일전쟁 때 한국주차군사령부를 설치하면서 용산 일대의 300만평을 군사기지로 수용했다. 미군은 일본군의 기지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외국군이 용산에 주둔한지 어언 114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이 땅은 온갖 비극으로 점철됐다.

용산공원은 생태적이면서 역사문화를 갖춘 시민공원이 되었으면 좋겠다. 서울 한복판에 수목이 울창하고 잔디가 드넓게 깔린 공원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하다. 용산 미군기지가 우리민족의 자랑일 수는 없다. 오히려 치욕이 아닌가 싶다. 그곳에 공원을 만들면서 침략과 침탈의 치욕만 남겨두고 ‘생태 환경’ 운운하는 것은 어쩐지 개운하지 않다.

우리 민족은 외세에 맞서 혼신의 힘으로 투쟁해왔다. 그것의 역사를 용산공원 어딘가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용산공원에는 우리 민족의 정신이나 영혼을 드러낼 수 있는 그 무엇이 필요하다. 외세에 저항한 우리 민족의 삶과 영혼과 정신이 가장 잘 드러나는 ‘어떤 것들’이 반드시 존재해야만 한다. 환경적 생태도 중요하지만 역사적 생태도 중요하다.

새로운 건물을 짓지 않겠다는 원칙에는 동의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다. 자연생태 중심의 건강과 휴식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공원이 설계되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다. 그러나 문화와 정신, 역사의 생태도 추구해야 한다. 미8군 사령부나 한미연합사령부 건물을 남겨두는 것으로 문제를 가볍게 해결하려고 들면 안 된다.

용산시민공원에는 ‘우리 민족의 영혼이 있는 어떤 집’이 필요하다. 상처로 가득한 풍경에 새로운 정신과 영혼이 함께 하는 문화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물론 용산공원은 온갖 수준의 도시설계자들과 공원설계자들 그리고 건축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생태 시민공원으로 잘 만들어 갈 것이다. 기술과 설치작업으로 풍경을 살짝살짝 왜곡하면서 생태적으로 훌륭한 공원을 만들어 낼 것이다. 과연 그것으로 충분한가? 그것이 전부인가? 외국 주둔군이 떠나간 자리에 들어설 공원이다. 그 자리에서 이 땅의 삶을 지켜낸 사람들의 영혼과 그 기록들을 함께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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