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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 이끈 ‘객관적 물증’…모르쇠 전략 패착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 이끈 ‘객관적 물증’…모르쇠 전략 패착

기사승인 2019. 01. 24.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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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 물증 확보한 검찰 총력전
반면 양 전 대법원장 모르쇠 일관
[포토] 양승태 전 대법원장 '착잡한 표정'
아시아투데이 송의주 기자 =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3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법원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 발부를 결정하게 된 데에는 검찰 측이 객관적인 물증과 진술을 확보해 제시했던 것이 큰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양 전 대법원장이 혐의를 발뺌하면서 후배 판사들에게 책임을 돌린 것은 ‘증거인멸’로 보였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을 발부 사유에 대해 “범죄사실 중 상당부분 혐의가 소명되고, 사안 중대하며, 현재까지의 수사진행 경과와 피의자의 지위 및 중요 관련자들과의 관계 등에 비춰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검찰이 적용한 양 전 대법원장의 개별 범죄혐의는 40여개에 이른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민사소송 ‘재판거래’ △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확인 소송 개입 △ 헌법재판소 내부정보 유출 △사법부 블랙리스트 작성 △공보관실 운영비로 비자금 3억5천만원 조성 등 반헌법적 중대범죄에 직접 개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명 부장판사는 이런 범죄사실들에 대해 “상당부분 혐의가 소명된다”는 판단한 것이다.

검찰은 전날 5시간 30분간 이어진 영장실질심사에서 양 전 대법원장의 범죄혐의가 매우 중대하고, 직접 개입한 정황이 구체적이라는 점에 초점을 두고 영장 판사를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법원은 지난달 7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해 “공모관계 성립에 의문의 여지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한 바 있다.

검찰로선 이런 ‘공모관계 소명 부족’을 깨고자 양 전 대법원장의 직접관여 증거들을 부각하며 ‘정면 승부’를 펼친 것으로 분석된다.

검찰은 지난 18일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징용소송 재판개입 등 이 사건에서 가장 심각한 범죄혐의들에서 단순히 보고받는 수준을 넘어 직접 주도한 사실이 진술과 자료를 통해 확인되기 때문에 구속영장 청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 여부를 가를 주요 물증으로는 ‘김앤장 독대 문건’ ‘판사 블랙리스트 문건’ ‘이규진 수첩’ 등 크게 세 가지가 꼽혔다.

특히 일제 강제징용 재판개입 관련 사건에서 양 전 대법원장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박 전 대법관으로부터 단순히 보고받은 수준을 넘어 ‘재판거래’를 직접 지휘한 정황이 드러난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반면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자택 압수수색과 세 차례 소환 조사에 성실히 협조한 점, 전직 사법부 수장으로서 도주의 우려도 없다는 점을 내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법리 다툼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전·현직 판사 다수의 진술과 객관적 물증 앞에서 법원도 양 전 대법원장의 이런 주장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면서 검찰 조사 후 조서 검토에만 36시간이 넘게 할애하며 신중을 기했지만, 결국 구체적인 증거의 힘은 막아내지 못한 셈이 됐다.

일각에서는 양 전 대법원장이 증거에 대한 충분한 해명 없이 “기억나지 않는다” “실무진이 알아서 한 일”이라고 ‘모르쇠’로 나간 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킨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내놓은 후배 법관이 거짓 진술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게 오히려 증거인멸 우려를 키웠을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전날 영장실질심사에서 “대법원장의 지시를 받았다”는 후배 법관들의 진술이 제시되자 ‘거짓 진술’이라는 취지로 반박했다.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의 수첩에서 자신의 지시사항을 뜻하는 ‘大’자 표시에 대해서는 “사후에 조작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이 쉽게 납득할 만한 기각 사유 없이 구속영장을 기각하면 법조계는 물론 국민적 차원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비판이 일게 될 것이 분명한 상황이기에 사법부의 신뢰 회복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을 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편 구속영장이 재청구돼 이날 양 전 대법원장과 함께 영장심사를 받은 박 전 대법관은 영장이 재차 기각됐다.

이런 결과를 두고 법조계 일각에서는 양 전 대법원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정점’이자 ‘주범’이라는 점을 법원이 인정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는다.

심리를 맡은 허경호 부장판사는 박 전 대법관 영장 기각에 대해 “종전 영장청구 기각 후의 수사내용까지 고려하더라도 주요 범죄혐의에 대한 소명이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사유를 밝혔다.

이는 “공모관계 성립에 의문의 여지가 있다”고 한 종전 기각 사유의 취지를 그대로 유지한 셈이다.

검찰은 박 전 대법관이 형사사법정보시스템에 무단 접속해 지인의 재판상황을 알아본 혐의(형사사법절차전자화촉진법 위반)를 두 번째 구속영장에 추가했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라지지 않았다.

허 부장판사는 “추가된 피의사실 일부는 범죄 성립 여부에 의문이 있으며 현재까지의 수사경과 등에 비춰 구속의 사유 및 필요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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