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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거래소 상장, 동남아 진출 교두보?…악용 꼼수에 거래소 성장 ‘먹구름’

싱가포르거래소 상장, 동남아 진출 교두보?…악용 꼼수에 거래소 성장 ‘먹구름’

기사승인 2019. 02. 20.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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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의 주식시장은 성숙기업을 위한 메인보드(Main board)와 중소기업 및 벤처기업을 위한 카탈리스트(Catalist)로 양분돼 있다. 카탈리스트는 특별한 상장 요건 없이 싱가포르거래소(SGX)가 승인한 스폰서, 즉 현지 투자은행 14곳이 자체적으로 상장을 타진한다. 세계의 중소·벤처기업을 끌어오기 위한 장치인데, 최근들어 이것이 ‘역효과’를 낳고 있다. 느슨한 상장 요건을 악용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이는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져 결국 싱가포르거래소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의 20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싱가포르 국립대학교(NUS)의 막 옌틴 부교수와 학생 마크 레이가 함께 발표한 보고서 ‘카탈리스트 어디로 가는가?’가 싱가포르거래소 관계자들 사이에서 파문을 일으켰다. 이 보고서는 느슨한 카탈리스트 상장 규정으로 인해 메인보드에서 상장 유지가 어려운 기업들의 ‘도피처’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싱가포르거래소는 지난 2007년 중소·벤처기업들의 상장을 위해 카탈리스트를 설립했다. 성장 가능성이 큰 이들 기업이 상장하도록 유도, 결과적으로 싱가포르거래소의 성장을 꾀한다는 전략에 따른 것이다. 실제 많은 중소·벤처기업들은 카탈리스트를 발판으로 동남아시아 시장에 진출하는 등 동남아 ‘교두보’로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 기업을 끌어들이기 위해 확 낮춘 카탈리스트의 문턱이 문제가 됐다. 느슨한 규정 탓에 이를 악용하는 기업들이 늘며, 싱가포르거래소가 성장하기는 커녕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

한국 주식시장에서 코넥스(Konex)는 중소·벤처기업들의 자본시장 안착을 지원하는 인큐베이터로서의 역할을 한다. 카탈리스트도 마찬가지. 일단 코넥스에 진입한 기업들은 투자를 받고 성장해 코스닥, 더 나아가서는 코스피 진출까지 노리게 된다. 하지만 싱가포르에서는 이를 역행하는 ‘꼼수’가 벌어지고 있다. 이미 메인보드에 상장했지만 상장 폐지가 두려운 기업들이 카탈리스트로 도망가 이전 상장하는 것.

보고서는 이처럼 카탈리스트로 이전 상장한 기업들의 순이익이 악화되고, 주가도 하락하고 있어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처럼 카탈리스트로 이전 상장한 기업 23개사 가운데 12개사는 순이익이 악화됐으며, 15개사는 주가 하락을 겪었다. 이전 상장해 온 기업들이 카탈리스트에 신규 상장하려는 중소·벤처기업들에게 좋지 않은 환경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싱가포르거래소가 이들의 꼼수를 두고 보는 이유는 최근들어 싱가포르거래소 상장 자체를 폐지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기 때문. 지난 11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싱가로프거래소에 상장한 기업보다 상장 폐지한 기업이 많았다. 지난해 싱가포르거래소에 새로 상장한 기업은 15개사로 이들이 기업공개(IPO)를 통해 조달한 자금 규모는 7억1600만 싱가포르달러였다. 반면 19개사가 지난해 상장 폐지를 결정해 시총 192억 싱가포르달러가 증발했다.

이 때문에 카탈리스트의 문제를 지적하는 보고서가 나왔음에도 싱가포르거래소의 입장은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추 수탓 싱가포르거래소 총괄 부사장은 “카탈리스트는 중요한 목적이 있으며, 지금까지 많은 성장기업의 자금조달을 지원해왔다”고 설명한 후 “보고서를 포함한 여러 의견이 있지만 카탈리스트의 문제는 신중히 검토하겠다”며 제도 보안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싱가포르거래소는 규정을 엄격하게 변경하면 카탈리스트 상장 기업과 상장 검토 기업을 다른 거래소로 빼앗길까 두려워하고 있다. 지금도 라이벌인 홍콩거래소에서의 상장은 증가하는 반면 싱가포르거래소에서는 상장 폐지 기업만 늘고 있다. 그러나 악순환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는 기업에게 매력적인 구조를 만들기보다 우선 투자자의 신뢰를 회복시킬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상장 기업의 질이 저하되면 투자자가 멀어지고, 이는 결국 싱가포르거래소의 매력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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