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칼럼] 예루살렘의 바그너

[칼럼] 예루살렘의 바그너

기사승인 2019. 03. 01. 07:00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이우근 변호사 사진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고문 / 숙명여대 석좌교수
히틀러는 바그너 음악의 광팬이었다. 그는 바그너의 ‘발퀴레의 기행(騎行)’을 나치군대의 행진곡으로 사용했고,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도 바그너의 ‘순례자의 합창’을 확성기로 틀어댔다. 유대인들은 바그너의 음악을 들으며 가스실로 끌려갔다. 히틀러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은 바그너의 음악은 유대인들의 가슴에 고통의 기억으로 각인되었고, 이스라엘에서는 연주할 수 없는 금기(禁忌)가 되었다. 1981년 인도 출신 지휘자 주빈 메타가 예루살렘에서 바그너의 곡을 연주했지만, 관객들의 거센 항의로 연주회장은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2001년 7월 유대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이 예루살렘 콘서트에서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서곡을 연주했다. 수많은 관객들이 격렬히 항의하며 퇴장 소동을 벌일 때, 객석에 앉은 한 노인이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듣기 싫은 사람은 집으로 가라. 나는 수용소에서 가까스로 살아나온 사람이다.” 연주회장은 갑자기 조용해졌고, 바그너의 곡은 끝까지 연주될 수 있었다. 한 유대인 음악가와 피해자가 민족감정을 딛고 이뤄낸 지성과 문화의 승리였다.

1952년 이스라엘과 서독 사이에 홀로코스트 배상금 약정이 체결될 때 이스라엘에서 대규모 반대 시위가 일어났다. 그렇지만 독일은 사죄를 거듭하며 10년에 걸쳐 배상 약속을 실천했고, 양국은 마침내 화해에 도달했다. 역사의 죄업을 씻으려는 독일 국민의 양심과 과거의 원한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열어가려는 이스라엘 국민의 이성이 함께 빚어낸 성과였다. 매년 1월 27일에는 세계 곳곳에서 양국 대사관이 홀로코스트 추모행사를 공동으로 개최하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곤 한다.

올해가 3·1절 100주년인데, 한일관계는 여전히 순탄치 못하다. 그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일본의 왜곡된 과거사 인식 때문이다. 예전에는 일왕이나 일본 총리들이 ‘유감, 통석(痛惜)의 염(念), 통절(痛切)한 반성, 진심으로 사죄’ 등의 사과 발언을 했지만, 극우파 포퓰리스트인 아베 총리가 집권한 이후 독도와 위안부 관련 망언들이 쏟아져 나오고 우리 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과 일본 초계기 사건을 둘러싼 갈등이 깊어지면서 한일관계가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다. 우리 안에 맺힌 민족감정의 응어리가 쉬이 풀릴 턱이 없다.

그렇지만 일본에도 혐한(嫌韓) 시위대 앞을 막아서는 반(反)혐한 시위대가 있는가 하면, 극우파의 왜곡된 역사 인식을 꾸짖는 양심적 지식인이 적지 않다. 최근 일본 지식인 226명이 사죄성명을 발표했다. “올해는 3·1 독립선언 100년이 되는 기념비적인 해다. 일본에 병합되어 10년간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 날 조선민족은 ‘일본을 위해서라도 조선이 독립해야 한다’고 설득하고자 했다. 이제는 우리가 조선민족의 이 위대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바탕으로 상호 이해와 부조(扶助)의 길로 나아가야 할 때다.”

이웃나라끼리 영원히 원수로 살 수 없는 이상 하루속히 한일관계를 바로잡아야 한다. 유권자의 감성에 아부하는 정치인들에게 그 과업의 성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다. 양국의 지식인·문화인·종교인들이 민족감정을 넘어선 세계시민의 보편적 이성으로 미래를 제시해야 한다. 거듭 요구하고 다시 독촉해서 억지로 받아내는 사과는 ‘엎드려 절 받기’나 다름없다. 그런 사과가 나오면 또 ‘진정성이 없다’고 꾸짖을 것이다.

깊은 죄의식에서 스스로 우러나온 사죄만이 값진 참회다. 은접시를 훔친 장발장을 회개의 자리로 이끈 것은 누구인가? 정의의 칼로 그를 단죄하려던 자베르 경감인가, 은촛대까지 챙겨주며 그를 불쌍히 여긴 미리엘 신부인가? 억지로 무릎 꿇리려하기보다 스스로 무릎 꿇도록 이끌어야 한다. 그것이 민족감정을 초월하는 지성과 문화의 힘이다. 아우슈비츠를 슬픔으로 몰아넣은 바그너의 음악이 예루살렘에 울려 퍼지듯이…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