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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원봉에 대한 서훈은 대한민국의 자기부정

[칼럼] 김원봉에 대한 서훈은 대한민국의 자기부정

기사승인 2019. 04. 1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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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교(사진3)
이재교 세종대 법학부 교수
정부가 김원봉에게 훈장을 수여하려는 모양이다. 일제강점기 김원봉이 의열단과 조선의용대를 조직하고 무장독립운동을 한 공로가 크다는 점에는 이론이 없다. 김구까지는 몰라도 북한이 내세우는 김일성의 무장투쟁보다 더 혁혁한 공로일지도 모르겠다. 북한으로서는 펄쩍 뛸 일이지만.

지난 1일 보훈처가 ‘김원봉 독립운동 업적’을 주제로 연 세미나에서 정부 측 의도를 대변하는 것으로 보이는 발표자는 “남한 정부가 먼저 월북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상훈과 보훈을 개방한다면 통일 대한민국의 기반을 다지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며 “북 정권에 기여한 자라도 숙청 등으로 북에서 배제된 자들은 공적을 평가해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1절 100주년 기념사에서 ‘빨갱이’를 거론하면서 “‘색깔론’은 우리가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대표적 친일 잔재”라고 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분위기 조성용이 아닌가 한다.

김원봉은 해방된 조국에서 일제의 고등경찰로 악명 높은 노덕술에게 체포돼 고문받은 후 3일간 통곡하다 월북했다는 설이 있다. 사실이라면, 월북한 그 심정도 이해는 된다. 해방공간에서 실제 이러한 일이 발생했고, 그래서 ‘독립운동가를 고문하던 일제 경찰이 해방된 조국에서도 독립운동가를 고문한다’는 말이 생겼음은 잘 알려져 있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우리 현대사에서 매우 아픈 부분이다.

그럼, 과연 김원봉에 대한 서훈이 합당할까? 김원봉은 월북해 북한의 장관급 이상의 고위직을 역임했다. 북한정권에 큰 기여를 한 것이다. 1952년 3월에는 ‘조국해방전쟁’(6·25)에 공이 많다고 김일성으로부터 훈장도 받았다. 민족 최대의 비극 6·25 남침에도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말이다. 이런 과오는 월북동기로 덮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1950년대 중반에 숙청됐지만, 북한 내부의 권력투쟁일 뿐이다. 북한정권에 대한 기여와 6·25에 대한 책임이 숙청으로 인해 사라질 수는 없다.

한 사람의 행적이 처음과 나중이 서로 다를 경우 나중의 행적이 결정적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독립운동을 하다가 돌아서서 일제의 앞잡이가 됐다면, 친일파라고 평가돼야 한다. 소위 친일인명사전에 이런 인물이 좀 많은가. 대한민국을 위해 독립운동을 하다가 나중에 돌아서서 대한민국 파괴활동을 한 경우는 어떠한가. 그 활동이 대한민국의 파멸을 시도한 반국가단체에 적극 가담한 경우라면? 김원봉의 경우에도 나중의 행적 위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다만, 필자는 한 인물에 대한 평가는 복합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김원봉이 무장독립운동을 한 것은 높이 평가하고, 월북해 북한에 기여한 행적에 대해서는 그것대로 평가해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니 국민들 개개인이 김원봉의 독립운동을 높이 평가하면서 그를 존경하고 기리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대한민국은 가치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니까.

그러나 국가는 그럴 수 없다. 대한민국의 건국훈장은 대한민국 건국에 대한 공헌을 기리는 것이 목적이다. 대한민국을 지구상에서 말살시켜버리려고 6·25를 일으킨 반국가단체에 적극 가담한 사람에게 그 훈장을 수여할 수는 없다. 6·25로 인해 대한민국은 지도상에서 사라질 뻔했다. 수백만명의 인명이 살상되었다. 한민족 최대의 비극이다.

이후 남북은 극한적으로 대치해 분단이 고착화됐고, 동·서독과 같은 교류나 남북합의에 의한 통일은 꿈도 꿀 수 없게 되었다. 이런 6·25에 책임이 있는 김원봉에게 서훈한다면, 대한민국을 지키고자 싸우다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은 뭐가 되는가.

이는 대한민국이 스스로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 일부가 개인적으로 김원봉을 기릴 수는 있어도 대한민국은 그럴 수 없는 이유다. 국가에게는 넘을 수 없는 선이 있다. 그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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