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레 득 아인 베트남 前 국가주석, 노환으로 별세…향년 99세

레 득 아인 베트남 前 국가주석, 노환으로 별세…향년 99세

기사승인 2019. 04. 23. 00:29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10대때부터 베트남 독립투쟁에 뛰어들어 국방부장관에 국가주석까지...
보 응우옌 잡 장군과 함께 전쟁영웅으로 꼽히는 군출신 대표적 보수파
8_36095
레 득 아인 베트남 전 국가주석이 23일 향년 99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그는 베트남 인민군 참모총장, 국방장관 등을 거쳐 1992~1997년 베트남 국가주석을 역임한 대표적 보수파다./사진=베트남 정부
레 득 아인(黎德英) 베트남 전(前) 국가주석이 22일 저녁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9세. 아인 전 주석은 한국과 베트남이 수교한 해인 1992년부터 1997년까지 베트남의 제4대 주석으로 재임했다. 그는 베트남 독립투쟁과 베트남 전쟁의 선봉에 선 ‘전쟁영웅’ 출신으로 베트남 정계의 대표적 보수파로 꼽힌다. <관련기사 16면>

1920년 12월 1일 생인 아인 전 주석은 중부 후에 출신으로 베트남이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1938년 5월 베트남 공산당에 가입, 독립투쟁에 참여했다. 1945년 8월 군(軍)에 입대한 그는 1948년부터 1954년까지 남부를 위주로 활동했다. 그는 제네바 협약 이후 북부로 활동 거점을 옮겨 1963년 베트남 인민군 부참모총장을 맡았다. 1964년 2월 남부로 파견된 그는 베트남 전쟁이 끝날 때까지 남부 해방군을 지휘한 핵심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이다.

베트남 통일 이후인 1981년 7구역 사령관과 국방차관을 겸직하고 있던 그는 당시 캄보디아에 주둔하고 있던 베트남군의 최고사령관도 맡았다. 군의 요직을 거친 그는 1984년 장군으로 진급, 1986년 베트남 인민군 참모총장에 올랐다. 이어 1987년 2월부터 1991년 8월까지 국방장관을 역임했다. 베트남 공산당 정치국의 일원이었던 그는 보 찌 꽁의 뒤를 이어 1992년 베트남 4대 주석으로 취임했다.

아인 전 주석은 베트남 정계의 대표적 보수파로 유명하다. 그는 주석으로 선출되기 이전부터 동유럽의 공산권 붕괴 이후 베트남 공산당을 약화시키고 있는 서구의 위협에 대해 경고하면서 군이 정치에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76년부터 1997년까지 베트남 국회의원도 겸했던 그는 캄보디아와 중국에 대한 베트남 정책 전반을 다뤘다. 1978년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으로 악화된 베트남·중국 관계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중국을 극비 방문했으며, 주석에 오른 후인 1993년 11월에는 38년 만에 베트남 주석으로선 최초로 베이징을 방문하기도 했다.

한국과 베트남이 수교한 1992년 12월 주석을 역임하고 있던 그는 당시 양국 관계 정상화를 위해 베트남을 공식 방문한 이상옥 한국 외무장관의 예방을 받기도 했다. 베트남이 ‘도이머이(쇄신)’로 대표되는 개혁·개방을 통해 세계 여러 나라와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던 당시 유엔(UN) 사무총장·존 케리 미국 상원의원·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 등의 최초 방문을 맞이하기도 했다.

보 응우옌 잡 장군과 함께 전쟁영웅으로 꼽히는 그는 개혁파 보 반 끼엣 전 총리와 대립구도를 보이기도 했지만 1996년 11월 중순 뇌졸중으로 입원해 한 때 보수진영이 큰 타격을 받기도 했다. 1997년 건강을 회복했지만 주석에서 물러나 1997년 12월부터 2001년까지 당 중앙위원회 고문을 지낸 후 은퇴했다. 그의 병력과 90세가 넘은 고령 탓에 2017~2018년에는 임종을 앞두고 있다는 루머가 퍼지기도 했다. 그는 베트남 고위 간부들이 치료받는 하노이 제108 군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