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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주상절리·주먹도끼...태초의 흔적 찾아 시간여행

[여행] 주상절리·주먹도끼...태초의 흔적 찾아 시간여행

기사승인 2019. 04. 23.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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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연천
여행/ 연강나룻길 개안마루 전망대
연강나룻길 개안마루 전망대. 임진강(연강)과 강줄기 속에 뿌리 내린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운치가 있다. 이 고상한 풍경은 조선시대 겸재 정선을 비롯해 수많은 묵객의 애를 태웠다.


아이와 부모가 모두 좋아할 만한 축제가 열린다. 5월 3일부터 6일까지 경기도 연천 전곡읍 전곡리 유적지 등에서 진행되는 ‘연천구석기축제’다. 올해 27회째인데 그동안 다양한 체험이 아이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교육에 도움이 되고 서울에서 가까워 부모들의 관심도 컸다. 연천에는 축제 말고도 ‘구석기’만큼 오래된 것들이 많다. 임진강과 한탄강에는 옛날 이 땅을 뜨겁게 달궜던 용암의 흔적이 오롯하다. 강을 따라 흐르는 역사도 흥미롭다.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풍경이 아름다운, 걷기 좋은 산책로도 있으니 아이와 함께 떠나는 여행을 계획한다면 연천을 떠올린다.
 

여행/ 전곡리 선사유적지
전곡리 유적지. 국내 대표적인 구석기 유적지인 이곳에서 8000여점의 유물이 발굴됐다.
여행/전곡리 선사유적지
전곡리 유적지.


구석기축제가 경기도 연천에서 열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전곡읍 전곡리 유적지 일원은 국내 대표적인 구석기 유적지다. 1978년부터 20여 차례의 발굴조사가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8000여점의 유물이 나왔다. 잘 알려진 주먹도끼도 물론 있다. 이 가운데 아슐리안 주먹도끼는 학술적으로 의미가 크다. 돌멩이의 양쪽을 모두 가공해 만든 도끼가 아슐리안 주먹도끼. 찍고 다듬기가 다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주로 유럽, 아프리카 등에서만 발견됐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북아시아에서는 이보다 한 단계 낮은 찍개만 존재했다는 학설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모습을 드러내며 한반도에도 ‘고급 구석기 문화’가 있었다는 것이 입증됐다.

연천구석기축제의 주무대인 전곡리 유적지는 공원처럼 꾸며졌다. 구석기인이 생활하던 움집 모형이 있고 매머드를 사냥하는 구석기인의 조각상들도 아이들의 눈높이에 딱 맞다. 일대는 실제로 구석기인들의 생활터전이었다. 지금도 땅을 파면 주먹도끼를 비롯한 당시 유물들이 나온단다. 이곳 토층전시관에서는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축제기간 구석기인처럼 대형 화덕에서 바비큐를 해 먹고 석기를 만드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진짜’ 구석기시대의 주먹도끼를 보고 싶다면 전곡리 유적지와 인접한 전곡선사박물관에 가면 된다. 주먹도끼를 보면 작은 것이 참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주먹도끼는 만들기가 간단하다. 넓적한 돌맹이를 내리쳐서 5~10분이면 완성할 수 있다. 그러나 생활에 끼친 영향은 컸다. 구석기인은 사냥감의 가죽을 벗기고 고기를 자를 수 있게 됐다. 나아가 도끼의 쓰임을 예측하며 앞날을 생각하게 됐다. 예쁘게 만들려고 하다보니 창의적인 사고와 예술감각도 길러졌다. 인류의 진화가 이 작은 ‘돌멩이’에서 비롯됐다.
 

여행/ 임진강 주상절리
임진강 주상절리. 40m 높이의 주상절리가 약 1.5km에 걸쳐 뻗어있다.
여행/ 임진강 주상절리
임진강 주상절리. 40m 높이의 주상절리가 약 1.5km에 걸쳐 뻗어있다.
여행/고문리 백의리층
고문리의 백의리층. 거대한 주상절리 아래 아직 암석화 되지 않은 퇴적층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여행/ 백의리층
고문리 백의리층을 따라 조붓한 오솔길이 지난다. 강줄기와 신록이 어우러진 풍경이 운치가 있다.


옛 이야기 하나 더. 홍적세 중·후기(약 100만년 전~1만년 전)에 지금의 북한 땅인 강원도 평강군의 화산(火山) 오리산이 폭발했다. 용암이 연천을 지나며 거대한 협곡을 만들었다. 오랜 세월 침식작용이 일어나고 다시 여기에 물이 흘러 임진강, 한탄강이 생겼다. 한반도 구석기 문화는 이 강을 중심으로 시작된다. 이러니 임진강, 한탄강을 따라가면 용암의 흔적들, 고대의 시간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경기도 연천은 물론 두 강이 지나는 포천과 철원 일대가 한탄강 국가지질공원으로 관리되고 있다. 총 면적이 무려 1164.74㎢에 달한다.

꼭 봐야 할 몇 곳 소개하면, 미산면 동이리의 ‘임진강 주상절리’는 임진강 연천 구간의 하이라이트다. 절리는 외부의 힘에 의해 암석이나 지층에 간 금. 주상절리는 수직방향으로 난 절리다. 임진강 주상절리는 맞닥뜨리는 순간 그 웅장함에 입이 쩍 벌어진다. 높이 40m의 주상절리가 약 1.5km나 뻗어 있다. 찾아가기 수월한 데다 강변까지 걸어 내려갈 수 있어 구경하기도 편하다.

한탄강에서는 연천읍 고문리의 백의리층(고문리협곡 주상절리), 아우라지 베개용암, 재인폭포 등이 볼만하다. 백의리층은 주상절리 아래 아직 암석화되지 않은 퇴적층이 있는 것이 특징. 자갈이 섞인 모래 위에 거대한 현무암 주상절리가 자리를 잡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주변으로 산책로가 나 있는데 신록으로 물드는 강변과 주상절리가 어우러진 풍경이 이색적이다. 아우라지 베개용암은 이름처럼 베개를 쌓아 놓은 듯한 모양의 절리가 재미있고 재인폭포는 18m 높이에서 절리를 타고 떨어지는 물줄기가 장관이다. 다만 재인폭포 앞까지 내려가는 계단이 정비 중이라 현재는 폭포 위 전망대(스카이워크)에서 내려다 봐야 한다.
 

여행/ 아우라지 베개용암
아우라지 베개용암. 아랫부분에 베개를 쌓아 놓은 듯한 모양의 절리가 보인다.
여행/ 주상절리
절리의 기하학적 무늬는 그 자체로 훌륭한 예술작품이다.
여행/ 절리
절리의 기하학적 무늬는 그 자체로 훌륭한 예술작품이다.


여기서 팁. 절리가 만들어내는 기하학적 무늬 자체도 볼거리다. 솜씨 좋은 자연이 거대한 바위에 그려 놓은 예술작품이 따로없다. 혹자는 “암석이 만들어낸 꽃”이라고 절리의 아름다움을 칭송하기도 했다. 덩굴식물이 엉겨붙으며 꽃보다 더 꽃 같다. 여름에는 비 내린 후 절리를 타고 떨어지는 폭포가 볼만하고 가을에는 절리 중간중간 점점이 박혀 피는 단풍이 장관이란다.
 

여행/호로고루성
절리를 이용해 쌓은 호로고루성. 남한에서 가장 많은 고구려 기와가 출토 된 현장이다.
여행/호로고루성
호로고루성 동벽 남쪽 치. 아랫부분은 신라가, 윗부분은 고구려가 쌓았다.
여행/숭의전지
고즈넉한 분위기의 숭의전지.


또 다른 옛 이야기. 임진강과 한탄강이 흐르는 연천은 고대의 교통 중심지였다. 고구려, 백제, 신라 등 고대국가들이 이 땅을 두고 치열하게 각축전을 벌였다. 고대국가의 흔적들이 많은 이유다.

호로고루성을 비롯해 당포성, 은대리성 등 고구려 성곽이 세 개나 있다. 고구려 성곽은 남한 지역에서는 흔치 않다. 특히 장남면 원당리의 호로고루성은 남한에서 가장 많은 고구려 기와가 출토 된 곳이다. 장남면 고량포리에는 신라의 마지막 왕인 제56대 경순왕의 능(경순왕릉)이 있다. 신라의 왕릉 중 유일하게 경북 경주를 벗어나 있다. 사연은 이렇다. 경순왕은 당시 후백제의 침입으로 고통받는 백성을 위해 나라를 신흥국가인 고려에 평화적으로 넘긴 인물. 이후 그는 태자보다 높은 지위인 정승공에 봉해진다. 그가 죽은 후 고려조정은 “왕의 시신이 조정에서 백리 밖으로 나갈 수 없다”며 현재의 위치에 능을 조성했다. 미산면 아미리 숭의전지는 조선시대 고려 태조 왕건과 정몽주 등 16명의 충신을 모신 사당이다. 나라의 흥망에 관한 이야기와 고즈넉한 분위기가 잘 어우러지는 곳이다.
 

여행/ 연강나룻길 개안마루
연강나룻길 개안마루 전망대 일대의 풍경.
여행/ 그리팅맨
옥녀봉에 세워진 '그리팅맨'. 통일을 기원하며 북녘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요즘 연강나룻길이 걷기 좋다. 특히 개안마루에서 보는 서정적인 풍경이 압권이다. 연강은 임진강을 달리 부르던 옛말. 연강나룻길은 연강을 따라 걷는 길이다. 총 세 개의 코스가 조성됐는데 이 가운데 군남면 선곡리 군남홍수조절지(군남댐) 두루미테마파크에서 옥녀봉(205m)을 지나 중면사무소에 이르는 약 7.6km 구간이 걷기가 편해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개안마루는 이름처럼 ‘눈(眼)이 열리는(開) 풍경’을 마주할 수 있는 등성이. 두루미테마파크에서 약 3.1km 떨어진 지점에 있다. 예부터 많은 묵객이 이곳의 풍경을 절경으로 꼽았다. 조선시대 겸재 정선도 그 중 하나. 그는 배를 타고 연강을 유람한 후 ‘연강임술첩’을 그려 아름다움을 칭송했는데 특히 개안마루 일대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측한다. 야트막한 등성이에 올라서면 발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연강이 펼쳐진다. 물속에 나무들이 기둥을 박고 도열했는데 이파리에 신록이 잔뜩 올라 운치를 더한다. 강과 가까운 언덕에 전망데크도 만들어졌다.

개안마루에서 약 800m를 더 가면 옥녀봉이다. 사방이 탁 트인 덕분에 마음이 참 상쾌해진다. 옥녀봉에서는 '그리팅맨'(인사하는 남자 조각상)이 볼거리. 10m 높이의 조각상은 통일을 바라는 의미로 북녘을 향해 허리를 숙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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