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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섭의 복싱비화] IBF 주니어밴텀급 챔피언 전주도의 나팔꽃 같은 복싱스토리

[조영섭의 복싱비화] IBF 주니어밴텀급 챔피언 전주도의 나팔꽃 같은 복싱스토리

기사승인 2019. 05. 07.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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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본 -전주도와 백인철 챔프
IBF 주니어밴텀급 챔피언 전주도와 WBA 슈퍼미들급 챔피언 백인철 /조영섭 관장
가끔씩 전파를 타고 임주리란 여가수가 애절한 목소리로 부르는 ‘립스틱 짙게 바르고’란 곡을 들을 때면 IBF 주니어밴텀급 챔피언 ‘전주도’가 떠오른다. 그는 만 20세에 세계 정상에 올라 에디 피칼에게 8회 KO패로 6차방어에 실패, 벨트를 풀때까지 17개월간 타이틀을 보유했다. 특히 돌주먹 문성길도 달성하지 못한 세계타이틀전 6연속 KO승과 5연속 KO 타이틀 방어 등 국내 신기록을 세웠지만 불의의 부상으로 만 22살에 사실상 복싱을 접었다. 그의 짧은 복싱 인생이 노래가사에 나오는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 마는 나팔꽃’과 같이 굵고 선명한 이미지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오늘 비화의 주인공 전주도가 며칠 전 내가 근무하는 강동구 둔촌동 체육관에 잠시 들렸다. 전주도는 1963년 강원도 정선출신이다. 20년 지기 전주도는 백년손님처럼 언제 봐도 반갑다. 유년기 때 서울로 상경한 주도는 중학교를 졸업한 후 1980년 12월 극동체육관에 입관하여 1981년 5월 프로에 데뷔했다. 14전을 싸울 때까지 KO승은 단 한차례 밖에 기록하지 못한 그는 체력은 좋았지만 파워가 부실한 평범한 복서였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유명우도 14전을 싸울 때까지 단 한번의 KO승만 기록했는데, 이 두 복서가 한국복싱 세계타이틀전 KO승에 관한 각종 기록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 참고로 유명우는 세계타이틀전에서 통산 10KO승을 기록 이부분 최다 KO승 부동의 1위이고 8K0승의 문성길이 2위 6KO승의 전주도가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사본 -IBF 주니어 밴텀급 초대 챔피언 전주도
IBF 주니어 밴텀급 초대 챔피언 전주도 /조영섭 관장
전주도는 1983년 6월 정희연(현대체)과 벌인 한국 J밴텀급 타이틀전에서 예상을 뒤엎고 4회 KO승을 거두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10승1무1패를 기록했던 정희연은 아마추어 시절 박찬희를 3차례나 꺽었던 유옥균(동아체)을 제압하고 챔피언에 등극했던 정상급 복서였기에 당시엔 큰 이변이었다. 프로 데뷔 2년 7개월만인 1983년 12월 새로 탄생한 IBF J 밴텀급 타이틀 결정전에 출전한 전주도는 일본의 가스가이 켄을 5회 KO로 잡고 한국챔피언에서 제13대 세계챔피언으로 신분이 수직상승했다. 1980년대 초만 하더라도 중남미에서 탄생한 WBA와 WBC 두기구만 존재했다. 하지만 이 기구를 견제하기위해 미국을 중심으로 IBF라는 3번째 기구가 1983년 설립되면서 전주도는 국내 IBF초대챔피언에 등극하는 영광을 차지했다. 미소년 이미지와 달리 전주도의 복싱은 다분히 전투적이었다. 한 치도 물러설줄 모르는 임팩트 넘치는 파이팅은 팬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전주도가 소속된 극동프로모션은 일본의 카나가와대학 전기공학과를 나온 영어와 일어에 능통한 전호연씨가 1959년 설립한 프로모션으로 이후 김성준, 김상현, 김철호, 김환진, 장정구, 권순천, 백인철, 신희섭 등 세계챔피언을 연달아 탄생시킨 명문 프로모션이었다
사본 -강원도 정선에 세워진 전주도의 챔피언 탑
강원도 정선에 세워진 전주도의 챔피언 탑 /조영섭 관장
챔피언에 오른 전주도는 영국의 계관시인 바이런의 어록처럼 자고나니 갑자기 유명해졌다. 고향 정선에 그의 업적을 기리는 챔피언 탑이 세워졌고 스폰서인 서교호텔에서 월 200만원씩 정기적으로 급료가 나오면서 그는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출퇴근용으로 승용차도 구입했다. 전주도는 1984년 1월 1차방어전에서 김철호의 재기에 브레이커를 걸었던 14승 8KO승1패를 기록한 태국의 파운삭 무앙수린에 강한 연타 공격으로 12회 KO승을 거두며 방어에 성공했다. 2차 방어전에선 27승10KO승 3무 5패의 필리핀의 데빌라에게 라이트훅 한방으로 95초만에 KO승을 거두고 방어전에 성공했는데 이는 1985년 3월 IBF J페더급 타이틀전에서 김지원이 서성인에 거둔 66초 KO승과 1983년 7월 WBA 플라이급 타이틀전에서 산토스 라시아르가 신희섭을 79초만에 KO로 잡은 경기에 이어 국내에서 벌어진 세계타이틀전 역대 최단시간 KO기록 3위에 해당하는 진기록이다. 3차 방어 상대도 푸에르토리코의 아마추어 국가대표(밴텀급) 출신 펠릭스 마르케스와 이어진 4차 방어에는 1980년 10월 한국의 김영식을 꺾고 동양 J.밴텀급 챔피언에 오른 윌리엄 데빌로스라는 만만치 않은 도전자들을 잇따라 제압했다. 그는 강철체력을 바탕으로 활화산처럼 터지는 좌우연타가 불을 뿜으면서 입지를 구축했다 특히 데빌로스는 배석철을 제압했고 권순천과 일전에서도 권순천 본인 스스로 패했다고 인정할 만큼 퀄리티가 있는 복서였다, 전주도의 주목할 만한 경기는 1985년 1월 벌어진 타이틀 5차 방어전이다, 상대는 내가 소속된 88프로모션의 동료복서인 11승 4KO승 1무를 기록한 테크니션 박광구였다, 이 대결은 한국 라이벌사에 있어 명승부 중에 한 경기로 손꼽히는 경기였다. 1984년 3월 창단한 88프로모션은 당시 극동체육관 후원회장인 심영자 회장과 챔피언 출신 김철호가 투톱을 형성, 극동체육관에 대립각을 세우기 위해 탄생한 신생 프로모션이었다. 전주도는 초반부터 박광구와 치열한 타격전을 펼치지만 반박자 빠른 박광구에게 많은 정타를 허용했다. 하지만 슬로우 스타터 답게 전주도는 후반부터 전세를 뒤집었다. 전주도의 저력은 대단했다. 15회 최종회에서 박광구는 전주도의 세찬공격에 방전된 배터리처럼 체력이 소진되어 결국 총 맞은 노루처럼 힘없이 주저앉았다. 이 경기는 승패를 떠나 IBF복싱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명승부였다. 박광구는 오래전 안타깝게 삶을 등졌다.
사본 -전주도 챔프. 김치수관원.문성길 챔프
전주도 챔프, 김치수 관원. 문성길 챔프 /조영섭 관장
한편 박찬희, 김철호에 이어 국내복서로 3번째로 5차 방어전에 성공한 전주도는 23전19승10KO승 3무1패를 기록했지만 은퇴를 생각할만큼 치명적인 눈부상을 당했다. 1985년 5월 인도네시아로 6차 원정방어에 나선 전주도는 도전자 에디 피칼에게 거리 감각이 무너진 상태에서 8회KO패 당하고 사실상 링을 떠났다. 피칼은 인도네시아 최초의 세계챔피언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탄생시켰다. 전주도는 총 1억 3000만원의 파이트머니를 챙겼다. 1985년 판사이던 추미애 의원의 월급이 수당까지 35만원인걸 감안하면 상당히 큰 액수였다. 22살의 어린 나이에 적지 않은 돈을 만지다보니 경험부족으로 세파에 휘청거렸다. 하지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달관된 태도로 받아들였다. 삶의 무게가 힘겨워도 인생이란 빈잔에 독주로 채우기 보다 웃음으로 채우는 낙천적인 성품이다. 또한 중학교 졸업한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으면서도 막내동생 전준일(45)이 서울대 출신에 KIST 대학원을 졸업한 공학박사출신 이란걸 자랑하지도 않는다. 더더욱 자신이 세계챔피언 출신이라는 타이틀을 전혀 내세우지 않는다. 친구 전주도를 보면 귀천이란 시로 유명한 천상병 시인이 연상될 정도로 맑은 영혼을 지닌 복서다. 그의 마지막 꿈인 체육관 창업이 속히 실현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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