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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날 기획] 어느 평교사의 행복한 은퇴식, 그리고 인생2막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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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날 기획] 어느 평교사의 행복한 은퇴식, 그리고 인생2막의 시작

김범주 기자 | 기사승인 2019. 05. 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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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창 교사의 8개 학교 제자들…"우린 유기창 학파"
영어 공부 위해 캐나다 유학...인생 2막 위한 설레는 출발점
"정교하게 가르치지 못한 부분 있어, 부끄러운 마음"
유기창
지난해 9월 28일 서울 충무아트홀에서 열렸던 은퇴식 겸 출판기념회에서의 유기창 교사/제공=은퇴식 주최 제자
세종 김범주 기자 = 지난해 9월 서울 충무아트홀에서는 평교사로 정년을 맞은 어느 노교사의 조촐한 은퇴식이 열렸다. 누가 보더라도 평범했을 은퇴식에서 특별했던 한 가지는 참석자 면면이었다. 한 스승에게서 배웠다는 유일한 공감대가 나이도, 출신학교도 다른 150여명의 제자를 한자리에 모이게 했다.

평교사로 지낸 36년. 평탄하지 않았지만 ‘늘 푸른 청년’ 유기창 교사의 교직 생활은 겸손을 강조했던 그의 신념대로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제자들과 함께 마무리됐다. 이날 스승만큼이나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제자들이 함께 부른 ‘스승의 은혜’ 앞에서 유 교사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제38회 스승의 날’을 맞은 15일, 서울 모처에서 다시 모인 제자들은 스승의 은퇴식을 이같이 회상했다. 수개월 전의 행사였지만 마치 어제 일처럼 기억하며, 늘 큰 가르침으로 자신들을 이끌어 준 스승에 대한 감사와 그 시절의 그리움을 내비쳤다.

◇조용했던 ‘은퇴식’…하지만 여운은 짙었다

SNS를 통해 모인 제자들의 직업은 다양했다. 독일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는 기업인, 중견기업의 임원, 사단법인의 임원, 스승과 같이 교직을 선택한 교사까지 걷는 길은 달랐지만 그들이 내세우는 주장은 하나였다. 그들은 스스로를 ‘유기창 학파’라고 명명했다.

스승의 어떤 점에 영향을 받아 서로 다른 배경의 제자들이 하나로 뭉쳤을까. 1981년 국어 교사로 교직에 발을 디딘 유 교사는 퇴임 때까지 8개 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했다. 제자들은 이구동성으로 ‘학생의 의견을 진심으로 들어주고 존중해주는 교사’였다고 말한다.

서울시교육청 ‘인사 찾기’ 시스템을 통해 30년 만에 유 교사를 찾았다는 제자 김희영씨는 과거 특별활동 수업을 소개했다. 김씨는 “당시 지도교사였던 선생님으로부터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어떻게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할지’ 등과 함께 발전적으로 미래를 설계하는 법을 배웠다”고 회상했다. 서두르지 않고 스스로 답을 찾도록 기다려주는 유 교사의 모습 속에서 삶의 자세도 배웠다고 한다.

특히 김씨는 30년 전과 같이 현재도 진지하게 제자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스승의 태도를 보면서 ‘또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사업체를 운영 중인 이승재씨는 유 교사와 6·10민주항쟁 등 시대적 변화를 함께 겪었다고 회상했다. 1987년 초여름 수업시간에 박목월의 시 ‘나그네’를 낭송한 유 교사는 “시대를 담아내지 못했던 시”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시를 발표한 시점은 일본 제국주의의 수탈이 절정에 이르던 시기로, 술을 만들어 먹을 만큼 민생의 삶이 풍족하지 못했을 것이며, 고달팠을 것이라는 것이 유 교사의 해석이었다고 기억했다.

매캐한 최루탄 냄새와 연기가 거리를 뒤덮었던 80년대 정치 상황에서 선생으로서 시대를 외면하고 침묵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 부끄럽다는 유 교사의 고백에 당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해직교사로 지낸 4년 6개월…“그래도 성적이 교육은 아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출범에 기여한 유 교사는 1989년 해직교사가 됐다. 해직교사로 지냈던 4년 6개월의 시간이 그의 저서 ‘우물쭈물하다 끝난 교사이야기’에 담겼다. 교사로서 좌절한 순간도 솔직하게 반영했다.

그는 전교조 활동을 한 이유로 “잘못된 교육 현실을 보고 눈을 감는 것이 교사의 도리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군사정권처럼 수직적으로 통제되는 학교, 대학 입시가 교육의 전부인 학교를 바꾸고 싶었다는 취지다.

김승환 전북도교육감도 유 교사 저서를 읽은 뒤 ‘어떤 교육정책이든 당대를 살아가는 학생이 실험 대상’이라고 지적했다. 교육개혁방안이 나와도 입시가 가장 중요한 현실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도 서평을 통해 “교육정책이 진전은커녕 후퇴하고 있다”며 “여론에 맡긴 단기 처방으로 정책을 마련한다거나 성과에 조급해하는 것은 교육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해 은퇴식에 이어 진행된 출판기념회에는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정진화 전 전교조위원장 등도 함께 자리를 했다. 출판기념회가 끝난 후 후원금 일부는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나눔의 집’ 등에 기부했다.

유 교사는 캐나다에서 ‘인생2막’을 시작했다. 평생 한국어를 강의한 그가 유학을 떠난 이유는 학생의 신분으로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다. 캐나다의 교육시스템과 교육사회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기 위한 배움이라고 설명한다.

기자와의 통화에서 유 교사는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돌아보면 정교하게 가르치지 못한 부분이 있어 늘 부끄러운 마음 뿐”이라고 말했다.

후배 교사들에게 전하고 싶은 얘기가 뭐냐는 질문에 “교사는 시대적 동반자로 아이들을 대해야 하며, 아이들을 지켜봐 주고 기다려주는 것도 교사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많은 제자들이 그를 ‘천상 교사’로 또는 ‘진정한 이 시대의 스승’으로 주저 없이 꼽는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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