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톈안먼 사태 망명객 옌자치 망향가로 눈물 범벅

톈안먼 사태 망명객 옌자치 망향가로 눈물 범벅

기사승인 2019. 05. 16.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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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실력자 왕후닝의 후원자 자격으로 민주화 요구
올해로 발발 30주년을 맞이하는 중국의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유혈 사태와 연루된 최고위 망명객 옌자치(嚴家其·72)가 최근 눈물의 망향가를 불러 화제가 되고 있다. 본인은 중국 정부가 신변보장만 해주면 귀국하겠다는 의사가 강하지만 현재 분위기로 볼 때 오매불망의 고향 행(行)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의 중국 민주화 선배였던 천이쯔(陳一咨. 2014년 75세를 일기로 사망) 전 국무원 경제체제개혁연구소 소장처럼 망명지인 미국에서 생을 마감할 수도 있을 전망이다.

톈안먼
오는 6월 4일 발발 30주년을 맞이하는 톈안먼 사태의 당시 현장./제공=홍콩 롄허바오(聯合報)
중국 권부(權府) 정보에 밝은 베이징 소식통의 16일 전언에 따르면 현재 30년 동안이나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는 그는 천 전 소장과 함께 자오쯔양(趙紫陽) 전 총서기의 최측근으로 유명했다. 공식 신분은 정치 비서. 30년 전 시민·학생들의 톈안먼 민주화 시위에 동정적이었던 자오 전 총서기가 낙마하지 않았다면 승승장구, 최소한 부총리 정도의 자리는 차지했을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최대 1만명의 희생자를 초래한 정부의 강경 시위진압 직후 배후 인물로 지목되면서 180도 달라지고 말았다. 미래가 창창했던 40대 초반의 부총리 재목이 정부의 1급 수배령을 피해 도피하지 않으면 안됐던 것. 그는 실제 유혈 사태가 벌어진 1989년 6월 4일 급거 상하이(上海)로 피신했다. 당시만 해도 연금된 자오 전 총서기와 함께 운명을 같이 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때 그의 앞에 나타난 조폭 보스 출신인 홍콩의 영화 제작자 샹화성(向華勝·2014년 64세로 사망)이 다시 그의 인생을 바꿔버렸다. 홍콩으로 피신한 후 미국으로 망명하라는 그의 설득에 그만 넘어가버린 것이다. 이후 그는 3일간 홍콩에 머물면서 지인들의 도움으로 미국에 망명을 신청할 수 있었다. 당연히 미국 정부는 최고급 정보를 보유한 그의 신청을 받아들였으며, 많은 정보도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었다.

그는 미국의 비밀 거처에서 톈안먼 사태와 관련한 회고록 출판을 위해 각종 비사를 취합하면서 집필 활동에 열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 시기가 시기인 만큼 평소 친하게 지내온 미국의 반체제 언론인들에게 자신의 소회를 피력하는 자리를 마련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그는 비록 3일 밖에 머무르지 않았지만 홍콩을 조국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과 각별한 인연의 왕후닝(64) 정치국 상무위원에게 톈안먼 사태 재평가를 요구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당시 학자로 있던 그를 최고 지도부에 추천, 승승장구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줬으니 그럴 자격이 있다는 농담도 잊지 않았다.

그는 언제든지 귀국할 준비를 한 탓에 미국 생활을 아주 단출하게 하고 있다는 속내 역시 밝혔다. 하지만 눈물을 뿌리면서 밝힌 그의 비원이 이뤄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아직 30년 전의 1급 수배령이 해제되지 않았다. 이를테면 그는 중국 정부가 내린 스탠딩 오더(명령권자가 취소하지 않는 한 계속 유지되는 명령)의 대상인 것이다. 또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의 반체제 인사들이 반중(反中) 운동의 구심점으로 그를 계속 원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도 그의 귀국을 반대하고 있는 것이 현실. 그가 귀국 즉시 체포된 후 미국 관련 정보를 술술 불게 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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