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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주족보다 무서운 일본의 고령 운전자들

폭주족보다 무서운 일본의 고령 운전자들

기사승인 2019. 05. 19.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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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세 운전자에 도심서 엄마와 세 살 딸 사망
75세 이상 운전자에 의한 사망사고 지난해 사상최고
고령자 자진 면허 반납제도에도 ‘자립생활’ 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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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도쿄 이케부쿠로 도심 한가운데에서 건널목을 자전거로 건너다 숨진 마츠나가 마나씨(31)와 딸 리코짱(3)의 생전 모습. 유족이 고령 운전자에 대한 경각심을 호소하며 이들의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마이니치신문
일본의 도로 위를 달리는 멋진 오픈카나 슈퍼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운전자가 백발의 노인인 경우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실제 지난해 12월 말 기준으로 일본의 75세 이상 면허 소지자는 564만명에 달한다. 하지만 지난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운전자에 의한 전체 사망사고는 줄어들고 있는데 비해 고령 운전자에 의한 사망사고는 사상 최대를 기록, 일본의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고령 운전자가 폭주족보다 무서운 현실이 된 셈이다.

일본 언론의 18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19일 도쿄 도심 이케부쿠로에서 고령 운전자가 시속 90km로 달리다 자전거를 탄 엄마와 세 살배기 딸을 치어 숨지게 한 사고가 발생했다. 졸지에 가족을 잃은 남편이 기자회견을 자청해 부인과 딸의 사진을 공개하며 고령 운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들을 숨지게 한 운전자는 87세의 노인이자 일본 경제산업성 공업기술원장을 지낸 이즈카 고조씨. 그는 이케부쿠로 도심의 도로에서 갑자기 왼쪽 난간에 충돌한 뒤 횡단보도를 가로질러 150m를 전속력으로 달렸다. 이로 인해 자전거로 횡단보도를 건너던 마츠나가 마나씨(31세)와 딸 리코짱(3세)이 차에 치었으며, 주변 운전자 등 10명이 다쳤다. 이즈카 전 원장 역시 부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했다.

이즈카 전 원장은 이날 경찰 입회조사를 마친 뒤 경찰들과 이동하며 작은 목소리로 연신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마스크와 모자, 선글라스로 얼굴을 완전히 가린 그는 경찰 조사에서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차가 멈추지 않았고, 가속 페달을 밟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과연 가속 페달을 밟지 않은 것일까. 자동차 녹화 영상과 현장 주변의 방범 카메라 영상에선 그가 갑자기 속도를 올리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자동차를 검사한 업체 역시 엑셀과 브레이크에 이상이 없었고 밝혔다. 그는 2017년 면허 갱신 때 75세 이상은 의무적으로 받아야하는 인지기능 검사에서 ‘기능 저하의 우려 없음’으로 판정받은 골드 면허였다. 하지만 사고 당시에는 다리를 다쳐 병원을 통원중이었고, 운전 자제를 권유받은 상태였다.

일본은 이 사건 이후 고령 운전자에 대한 문제를 다시 논의하고 있다. 2018년 12월 말 기준으로 75세 이상 면허 소지자는 564만명으로 이들이 일으킨 사망사고가 지난해 460건이었다. 전(全) 연령대 운전자에 의한 사망사고가 감소한 것과 달리 75세 이상은 지난해 14.8%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75세 이상 운전자는 면허 갱신 때 신호 무시 등을 알아보는 인지기능 검사가 있지만 제1분류인 ‘치매 위험’의 판정을 받을 경우에만 면허가 취소 또는 정지된다. 지난해 총 216만5349명이 이 검사를 받아 2.5%인 5만4786명이 제1분류 판정을 받았을 뿐 면허 취소 또는 정지된 운전자는 2000명에 불과했다.

인지기능 검사에서 문제가 없다고 판정됐어도 고령 운전자에 의한 사망사고는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사망사고를 낸 75세 이상의 운전자 가운데 인지기능 검사를 받은 414명 중 절반인 210명이 제3분류 ‘인지기능 저하의 우려없음’ 판정을 받았다. 고령자 독거생활이나 노인부부가 많은 일본에서 자동차 면허를 강제로 정지 및 취소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남에게 폐를 끼치고 싶어하지 않는일본인의 정서상 자녀에게 부탁하지 않는데다 노인들에게 ‘운전’은 자립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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