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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섭의 복싱비화] 남원 춘향제 대회서 만난 전 WBA 플라이급 챔피언 김태식

[조영섭의 복싱비화] 남원 춘향제 대회서 만난 전 WBA 플라이급 챔피언 김태식

기사승인 2019. 06. 04.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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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본 -WBC라이트 플라이급 챔
WBC라이트 플라이급 챔피언 장정구, 유형곤 관장, 김태식(왼쪽부터) /조영섭 관장
계절의 여왕 5월의 끄트머리인 지난 주말 전북 남원에서 벌어진 제2회 춘향배 전국생활복싱대회에 참관했다. 이 대회는 이례적으로 생활복싱 25체급에 챔피언 결정전이 치러진데다 프로복싱경기도 병행해 열린 행사였다. 이번 행사에는 이정린 도의원과 한건희 남원복싱회장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1박2일에 걸쳐 치러졌다. 이번 행사를 주도적으로 진행한 유형곤 남원정용 복싱체육관 관장은 이 고장 출신의 한건희 회장과 이정린 도의원이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덕분에 성대하게 치러졌다고 말하며 두분의 성원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인사말을 올렸다. 유 관장은 10년 전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에 정착하여 공판장에서 야채장사 등을 하면서 착실하게 돈을 모아 남원에 체육관을 차린지 7년이 지났다. 그는 뭔가 뜻깊은 일을 하고 싶어 지난해 제1회 대회 춘향제 생활체육대회를 의욕적으로 개최했지만 큰 손실을 입어 고통스런 축제였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제2회 대회를 앞두고 이정린·한건희 두 조력자의 등장은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였다, 유 관장은 이번 대회를 유치하면서 남원시청 신준섭 감독과 만남을 가졌는데 겸손하고 차분한 성품을 지닌 복싱인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하며 앞으로 자주 뵙고 자문을 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행사장에는 이번 복싱비화의 주인공 WBA 플라이급 챔피언 김태식이 오랜만에 등장해 관심을 끌었다. 1956년 강원도 동해출신인 김태식은 국내에서 배출한 43명의 챔피언 중 독일병정이란 캐릭터로 10연속 KO퍼레이드를 펼친 강타자였다,

사본 -이정린 도의원과 유형곤 관장(우측)
이정린 도의원과 유형곤 관장 /조영섭 관장
특이한 점은 이번 대회를 주관한 유형곤이 현역시절 김태식의 전담 스파링파트너였다는 사실이다. 김태식과 같은 원진체육관 소속의 11전 8승(6KO승)2패1무의 짧고 굵은 커리어를 남긴 유형곤을 두고 선배 복서 김태식은 ‘사나이 중에 사나이’라고 말한다, 이유인즉 한 사람의 세계챔피언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숱한 복서들의 희생이 필연적으로 따라야 하는데 유형곤은 주 2회씩 치러지는 스파링에서 두들겨 맞을 줄 알면서도 단 한번도 주저 없이 링에 올랐던 배짱 좋던 복서였기 때문이다. 당시 김태식의 스파링 파트너는 편호철, 유형곤, 김기봉 등 유망주 3명이었다. 김태식이 이들과 스파링을 할 때면 길거리를 지나던 행인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구경할 정도로 김태식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김태식의 스파링 파트너였던 KPBF 심판위원장인 김기봉은 김태식의 강타에 앞니가 뽑힐 정도로 그의 주먹은 폭발력이 있었다. 편호철, 유형곤, 김기봉 등은 수준급 기량을 지닌 복서였지만 김태식과 스파링에 의한 누적된 데미지로 일찍 복싱을 접었던 공통점이 있었다.

당시 최고 인기복서였던 김태식은 정동 문화체육관의 관계자에 의하면 경기장 입장 수입은 최고 340만원을 기록했고 박종팔, 황충재, 김사왕 등의 수입이 그 뒤를 따랐다고 했다. 김태식의 권투는 가랑비에 옷을 젖게 만드는 스몰권투가 아닌 마치 쇠망치로 온몸 구석구석을 뼛속까지 피멍이 들도록 무지막지하게 난타하는 전형적인 슬러거였다. 김태식에 대한 지난 날의 숨은 비화가 생각난다. 1971년 서울에 상경, 가리봉동에 정착해 타고난 쌈꾼답게 스트리트 파이터로 명성을 날린 김태식은 복싱을 하고 싶어 1975년 노량진 동아체육관 김현치 관장에게 구구절절 사연을 담은 장문의 편지를 보낸다. 이후 김현치 관장 에게 허락을 받고 체육관에 도착한 김태식에게 김현치 관장은 대뜸 한마디 던졌다. “회비는 가져왔냐?” 순간 말문이 막힌 김태식은 허탈감에 빠졌다. 이후 즉석에서 치러진 스파링에서 날다람쥐처럼 빠른 상대에게 김태식은 공포탄만 쏟아내면서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다. 그날 상대복서가 훗날 WBA 주니어 플라이급 타이틀에 도전한 최문진이었다. 허탈하게 돌아온 그는 1976년 3월 필승체육관에 등록한 후 이듬해 11월 MBC 신인왕전에 출전, MVP에 등극해 10연속 KO퍼레이드를 펼치며 1980년 2월 WBA 플라이급 세계정상에 올랐다.
사본 -문성길 10차 방어전 계체량때 참석
문성길 10차 방어전 계체량때 참석한 생전의 임현호관장(오른쪽) /조영섭 관장
챔피언 김태식의 유명세를 알리는 또다른 비화가 생각난다. 1980년 권력을 잡은 신군부는 8월 1일부터 이듬해 1월까지 순화교육 대상자로 전국에서 6만명을 법원의 영장발부 없이 순화교육을 위한 명분으로 불량배들을 잡아가두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끌려온 인원이 1400명이나 됐다고 한다. 이때 서대문에서 사자라는 닉네임으로 불린 임현호(김태식 트레이너)도 압송되어 구금됐다, 임현호는 후에 장정구가 15차 방어전의 대업을 완성할 때 전담 트레이너였던 명장이다. 무장한 군인들의 폭력이 난무하는 구금지에서 임현호는 보안사 대위가 호출해 불려갔다. 불려 간 곳에는 김태식이 있었다. 김태식이 “이 분은 타이틀전을 앞둔 내 트레이너인데 이게 무슨 짓이냐”고 따져 묻자 보안사 대위는 두말 없이 임현호를 석방시켜줬다 했다. 이는 몇 달 전 고인이 되신 임 관장이 생전에 내게 들려준 실화다. 임현호 관장은 올초 지병으로 향년 71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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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식 후 포즈를 취한 한건희 남원복싱연맹 회장(왼쪽) /조영섭 관장
한편 김태식은 이날 펼쳐진 경기중에서 러시아 국적의 누리선수를 6회 판정으로 잡은 김현석(웰터급·박경철 복싱)에게 장래성이 보이는 선수라고 말하며 격려해줬다. 그러면서 그는 다이아몬드 원석을 찿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원석을 잘 닦아서 빛을 낼수 있게 만드는 조력자들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개천에서 낚시대를 펼치고 고래잡이를 꿈꾸는 척박한 한국복싱의 현실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듯한 애정 어린 고언이라는 생각이든다. 끝으로 이번 행사를 치를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준 모든 분들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문성길복싱클럽 관장·서울시복싱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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