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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니 대선불복 헌재 심의 시작…쁘라보워 선거무효 주장

인니 대선불복 헌재 심의 시작…쁘라보워 선거무효 주장

기사승인 2019. 06. 18.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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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0일부터 시작해 이달 9일까지 이어진 이둘피트리(Idul Fitri) 기간 동안 인도네시아 도심은 텅텅 비다시피 했다. 이둘피트리는 라마단 금식 종료를 축하하는 축제. 고향 방문이나 해외여행을 떠났던 수천만 명의 인도네시아인들이 지난주 정상업무에 복귀했지만 14일 새벽 자카르타 요충지에 군병력이 전격 배치되면서 장기휴가의 여운은 단번에 깨져버렸다. 인도네시아 헌법재판소의 대선불복 첫 심의가 열리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5월 21일과 22일 자카르타 도심에서 수백명의 사상자를 낸 유혈사태의 재발을 우려했던 것인데, 다행히 야당 대선후보로 나선 쁘라보워 수비안토 대인도네시아운동당(그린드라당) 총재가 지지자들의 자제를 촉구하면서 첫 날은 대체로 평화롭게 지나갔다. 자카르타 요충지에 배치된 군병력도 철수했다. 하지만 향후 2주간 심의가 진행될 헌법재판소 인근은 줄곧 팽팽한 긴장이 감돌고 있다.

일간 꼼파스의 17일 보도에 따르면 5월 21일 새벽 인도네시아 선거관리위원회(KPU)는 4월 17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조코 위도도(일명 조코위) 현 대통령이 55.50%의 득표율로 승리했다고 발표했다. 야당 대선후보인 쁘라보워 총재는 44.50%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쁘라보워 총재는 정부·여당이 개표조작을 비롯해 선거과정에서 조직적으로 부정을 저질렀다며 불복을 선언하면서 6명이 사망하고, 200여명이 다치는 유혈사태가 벌어진 것. 쁘라보워 총재는 5월 24일 헌법재판소에 대선불복 청원(소송)을 제기했다.

쁘라보워 총재는 헌재에 제출한 7개 항목 37페이지 분량의 대선불복 청원 내용을 다음달 10일 15개 항목 147페이지 분량으로 수정했다. 쁘라보워 총재의 주장은 조코위 대통령 측이 선거기간 중 대규모의 조직적·체계적 부정을 저질렀고, 사실상 자신이 52%를 득표해 조코위 대통령을 눌렀으니 선거 승리를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물론 조코위 대통령과 선거관리위원회 변호사들은 쁘라보워 총재의 청원 내용에 즉시 이의를 제기했다.

임기 5년의 대통령과 부통령을 뽑는 인도네시아 대선은 2004년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된 6대 대통령부터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해 치러졌다. 5대 메가와티 수카르노 대통령까지는 인도네시아 국민협의회(MPR)에서 선출한 것. 국민협의회는 국민의회와 지역대표회의 의원·대통령이 임명하는 직능대표로 구성되는데, 군부 대표를 통한 군의 정치 개입 우려를 받아왔다. 이같은 인도네시아의 정치사를 보면 대선불복 청원은 드문 일인데, 조코위 대통령과 쁘라보워 총재는 대대적으로 법무팀을 꾸린 상태다. 조코위 대통령 법무팀은 이전 정권의 법무장관과 국무장관을 지낸 유스릴 이자 마헨드라가 이끌고, 쁘라보워 총재 법무팀장은 부패척결위원회 부의장을 역임한 베테랑 변호사 밤방 위조얀토다.

안와르 우스만 헌재 소장은 첫 공판에서 헌법재판관 9명은 아무도 두려워하거나 누구에게도 무릎 꿇지 않을 것이며, 헌법에 준거해 독립적 판단을 내리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헌재가 조코위 정권의 눈치를 볼 것이란 쁘라보워 총재의 주장을 감안한 발언이다. 헌재는 쁘라보워 총재의 청원 수정으로 심의 일정의 변경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확정하지는 않았다. 대선불복 청원에 대한 헌재 판결은 당초 이달 28일로 예정돼 있었다.

이같은 대선불복 정국에서 조코위 대통령은 상대 세력 끌어안기에 나서고 있다. 특히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전 대통령의 부인 아니 여사가 지난 1일 혈액암으로 타개하자 다음날 자카르타 깔리바타 영웅묘지에서 자신이 직접 장례식을 집전했다. 장례식에는 유도요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앙숙이자 조코위 대통령 소속 정당인 민주투쟁당의 메가와티 전 대통령도 참석했다. 특히 유도요노 전 대통령의 장남 아구스 하리무르티는 장례식 직후인 5일 조코위 대통령을 따로 만나면서 민주투쟁당과 민주당의 극적인 화해를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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