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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당국 파룬궁 사교 규정 20주년 맞아 초긴장

中 당국 파룬궁 사교 규정 20주년 맞아 초긴장

기사승인 2019. 07. 08.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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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0일 전후에 대대적 저항 시위 예상된다는 소문도
오는 20일은 파룬궁(法輪功)이 중국 당국에 의해 사교(邪敎)로 규정된 날이다. 수많은 파룬궁 신도들이 대대적인 탄압을 받아온 만큼 당국의 긴장도 높아지고 있다. 그야말로 정중동(靜中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일부 파룬궁 신도들이 과격한 행동에 나서는 것을 보면 정면충돌 가능성도 없지 않아 보인다. 경우에 따라서는 당국에 의한 사전 검거 선풍이 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파룬궁
대만의 파룬궁 신도들이 최근 중정(中正)기념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는 모습. 이들 역시 중국 당국의 눈엣가시가 되고 있다./제공=다지위안(大紀元)
베이징 소식통의 8일 전언에 따르면 파룬궁은 원래 이름이 파룬다파(法輪大法)다. 처음에는 진(眞), 선(善), 인(忍)을 원리로 하는 전통적 기공 수련법으로 출발했다. 대중에게 처음 알려진 것은 창시자인 리훙즈(李洪志·68)가 본격적인 전파에 나선 1992년. 이후 수련 효과가 뛰어났던 탓인지 신도들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현역 군 장성, 고위 당정 관리 등 각계각층의 수많은 사람들까지 수련에 나서기도 했다. 급기야 1998년 말에는 신도 수가 최대 1억명으로 불어났다는 소문도 퍼져나갔다. 사실이라면 올해 9000만명을 돌파한 공산당원보다 많은 규모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되자 당초 파룬궁 수련을 권장하던 당국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 무렵에는 파룬궁의 성격이 묘하게 종교 색채도 띄기 시작했다. 하기야 리훙즈가 처음부터 파룬궁을 불교와 도교의 교리에 근거해 창시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가 대사(大師)로 불리면서 마치 교주 대접을 받은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당국의 견제가 거의 탄압 수준으로 진화한 것 역시 당연했다. 이에 파룬궁 신도 수만명은 1999년 4월 25일 당국에 항의하기 위해 권부의 상징인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를 둘러싼 채 시위를 벌였다. 결국 이것이 빌미가 돼 3개월 후인 7월 20일 파룬궁은 사교로 공식 규정되면서 대대적인 탄압을 받기 시작했다. 수만명의 신도들이 체포돼 투옥됐을 뿐 아니라 탈퇴를 강요당하지 않으면 안됐다.

파룬궁 위폐
중국의 인민폐에 적힌 파룬궁의 반정부 구호. 지하에 숨어든 파룬궁 신도들의 저항 의식을 말해주는 듯하다./베이징=홍순도 특파원
한 때 1억명에 이르던 파룬궁 신도들은 지난 20년 동안 대대적 단속에 의해 대부분 자의 반, 타의 반 전향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지하로 숨어들어간 골수 신도들도 적지 않다. 소식통의 전언에 의하면 최소한 수백만명은 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은 지하에서 숨 죽인 채 숨어 지내기만 하고 있지 않다. 잊힐만 하면 당국의 탄압에 항의하는 분신자살이나 시위 등 적극적인 저항을 벌이고 있다. 게다가 해외로 도피한 신도들의 세력도 만만치 않다. 특히 홍콩과 대만 신도들은 본토의 지하 비밀조직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당국에게는 눈엣가시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파룬궁이 탄압을 당해 지하로 숨어든지 20년을 맞이한다는 사실은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신도들로서는 어떻게든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면서 국제사회에 탄압을 당하는 입장을 하소연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 더구나 그동안의 크고 작은 저항을 보여온 행보로 봐서는 어느 정도 소요가 일어나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당국도 이같은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대비를 철저하게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베이징의 파룬궁 신도 진(晉) 모씨는 “3년 동안 투옥된 경험이 있다. 그 때도 나는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파룬궁이 당국의 인정을 받고 그동안의 탄압에 대한 사과를 받을 때까지 싸우겠다”면서 전의를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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