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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불안한 일본

[칼럼]불안한 일본

기사승인 2019. 07. 09.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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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아침 출근길에 듣던 라디오 방송에서 어안이 벙벙해지는 말을 들었다. 프로그램의 앵커와 극우 성향의 산케이신문 논설위원 사이에 이루어진 일본의 보복성 수출규제에 대한 일문일답이었다. 일본 측 입장이 무엇인지 듣기 위해 마련된 인터뷰 중 진행자가 흥분하는 일이 발생했다. 일본인 논설위원이 한국의 발전은 일제 식민 지배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일본에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진행자 못지않게 필자도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든 생각이 있었다. ‘고도로 기획된 도발’이라는 것이다. 이는 한국사회에 분노의 감정을 유발하기 위한 치밀한 전략으로 읽혔다.

뉴스를 통해 알려진 대로 일본의 참의원 선거가 코앞에 다가왔다. 자민당이 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본사회의 극우 정서를 자극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내부 단속을 위해 이웃 나라에 도발을 일삼는 것은 일본의 오랜 정치적 술수였다. 1592년 임진년의 동아시아 전쟁이 그랬으며 메이지유신 이후 제국주의 야망에서 비롯된 여러 전쟁과 한반도 침탈이 그랬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무엇인가? 차분한 외교적 타협, 아니면 일본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을 비롯한 시민사회와 정부의 적극적인 맞대응 등이 있을 것이다.

다 나름대로 논리가 있고 이유가 분명해 보인다. 각기 자신들의 생각을 주장할 자유는 있다. 그런데 일본이 노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 아니던가? 걱정스러운 것은 우리의 생각과 논리라는 것을 진영논리로 유도해 정쟁으로 삼으려는 자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관심을 끄라는 건 아니다. 더욱 들끓고 떠들어야 한다. 다만 적을 분명히 하고 그들이 꾀하는 바가 무엇인지 파악하는데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적은 일본의 진짜 극우와 우리 내부의 수구 세력들이다. 그들의 야합이 이번 논란을 통해 권력을 지속하고 탈환하려는 이해관계에 있다는 것을 냉철히 파악해야 한다.

일본 극우세력의 정서는 양가적이다. 여전히 한국을 자신들의 속국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을 보이면서도 동시에 불안의 정서가 엿보인다. 대한민국의 민주적 역동성과 문화, 경제적 발전은 그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된 지 오래지 싶다. 게다가 정치적으로 한반도가 대륙으로 직행하는 시대가 도래하면 일본은 그야말로 섬나라가 된다. 자신들이 고립되지 않기 위해 우리나라가 삼면이 바다고 휴전선으로 가로막힌 인위적인 섬이 되길 바란다. 북한 또한 소위 불량국가로 남아야 한다.

위와 같이 식민지 착취를 일삼은 국가들의 도발과 콤플렉스에 대해 냉철하게 파악한 이가 인도 출신의 석학 호미 바바다. 그는 식민 지배자들은 위와 같은 양가적 콤플렉스로 인해 궁극적으로 피지배국에 지배국을 닮아갈 것을 주문하면서도 반면 선을 긋고 자신들과 구별 짓기를 시도했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결과로 식민 지배를 경험한 나라들은 역사적으로 잡종성을 띄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바는 이처럼 잡음이 많은 혼종성은 피지배국을 경험한 나라들의 역동성이며 타자로 규정되는 본질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인 동시에 대안이라고 진단한다.

아무튼 진짜 우리가 고마운 것은 ‘혼내’라고 불리는 일본 특유의 속을 내보이지 않는 정서가 이들 극우세력에 의해 와해, 불안감을 그대로 내비치고 있다는 점이다. 싸움에 임하는 이가 불안한 마음을 들키면 이미 진 게임 아니던가!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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