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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담화]‘돈이 뭐라고’ 증권사 PB들의 속사정

[취재뒷담화]‘돈이 뭐라고’ 증권사 PB들의 속사정

기사승인 2019. 09. 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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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에게 칼을 주면 사람을 살리고 살인범에게 칼을 주면 사람을 죽이게 됩니다. 이럴 경우 칼이 잘못일까요, 사람이 잘못일까요. 프라이빗뱅커(PB)와 VIP와의 관계도 이와 같습니다. 사실상 이 둘을 따지자면 갑을 관계는 아닙니다. 고객이 PB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좋은 관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갑의 입장이 된 VIP들의 무리한 요구는 이미 비일비재합니다. PB들은 어쩔 수 없이 VIP를 잡아야 하기 때문에 싫은 내색도 못하고 무리한 심부름까지 하는 게 이미 관행처럼 됐습니다.

회사 차원에서도 PB들에게 VIP를 잡기 위해선 무리한 부탁도 들어줘야 한다는 방침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VIP들의 거액 자산을 굴려 수익을 내는 구조이기 때문에 무조건 VIP를 잡아야 한다는 식입니다. 이 때문에 PB들은 고객을 대상으로 세무와 법률, 상속, 부동산 관리 등은 기본이고 VIP의 자녀끼리 중매를 해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자산가들의 대소사를 챙기면서 ‘VIP 서비스’를 해주는 것입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VIP 고객 중에선 자녀가 유학 갈 학교를 알아봐달라고 한 적도 있고, 공항 픽업도 부탁받는다. VIP를 놓치면 안되니까 PB들은 무리한 부탁도 다 들어준다”고 토로했습니다. 조국 법무부 장관의 부인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PC를 옮기는 등 증거 인멸을 도운 증권사 PB를 보며 과한 처사이긴 하지만, 관행적으로 이뤄지는 일이라는 얘깁니다.

PB들은 고객의 민원 처리부터 업무 외적인 부탁을 받는 데 거부감을 느끼는 게 사실입니다. 회사에서 ‘고객 신뢰’를 강요하는 분위기라 고객의 부탁을 거부할 수도 없다는 서러움도 느껴집니다. 자산가 자녀들의 학원 등록은 물론 유학까지 알아봐줄 뿐 아니라 병원과 여행 예약까지 돕는 것을 ‘VIP서비스’라고 부를지는 물음표입니다. 정작 ‘서비스’를 가장해 VIP들의 민원 처리까지 도맡아온 PB들의 말 못 할 속사정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갑이 된 VIP들이 PB들을 대상으로 현대판 노예처럼 부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무리하게 고객들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을 단순히 ‘VIP서비스’로 봐서는 안 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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