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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 대만 독립운동 대부 103세로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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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 대만 독립운동 대부 103세로 타계

홍순도 베이징 특파원 | 기사승인 2019. 09. 21.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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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 활동 했던 스차오후이, 차이잉원의 정치적 스승
대만 국민당 집권 시기에 치열한 독립운동을 벌인 ‘대만 독립의 아버지’ 스차오후이(施朝暉)가 20일 심야에 타이베이(臺北)의학대학 부속병원에서 타계했다. 향년 103세로 장례는 대만 총통부 주재 하에 치러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스밍
이념적으로 부녀관계와 같았던 스차오후이와 차이잉원 대만 총통./제공=대만 중궈스바오(中國時報).
중국과 대만 양안(兩岸) 정보에 밝은 베이징 소식통의 21일 전언에 따르면 필명이 스밍(史明)인 스차오후이는 노환으로 그동안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으나 전날 병세가 갑자기 악화돼 끝내 세상을 등졌다. 그는 대만이 일본 식민 치하에 있던 1916년 타이베이에서 태어난 이른바 본성인(本省人)으로 태생적으로 대만 독립의 성향이 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젊은 시절에는 사회주의와 무정부주의에 경도됐던 것으로 유명하다. 20대의 학창 시절을 보낸 일본 와세다(早稻田)대학 정치경제학부에서 탐독한 마르크스주의 서적들이 그의 사상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이다. 대학 졸업 후 공산주의 운동에 본격적으로 참가한 것은 이로 보면 아주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일설에는 공산당 지하 정보기관의 요원으로 활약했다는 소문도 없지 않다.

그는 그러나 공산당이 대륙을 통일한 후에는 대만에 그대로 남았다. 이후 당시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장제스(蔣介石) 국민당 총통에 대한 암살 계획을 모의했다. 이로 인해 1952년 일본으로 피산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됐다. 일본에서는 도쿄(東京) 이케부쿠로(池袋)에 신전웨이(新珍味)라는 중국 음식점을 열어 운영하기도 했다. 이 식당은 훗날 일본 내 대만 독립 운동의 기지로 명성을 떨치게 됐다. 대만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음식점을 경영하면서 틈틈이 역사 연구에도 전념, 1962년 자신의 불후 명저인 ‘대만인400년사’이라는 대만 통사를 집필하기도 했다. 이 책은 곧 대만 독립을 열망하는 지식인들에게 거의 성경과 같은 필독서가 됐다. 그가 대만 국민당의 눈엣가시가 된 것은 하나 이상할 것이 없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그의 일본 망명 생활은 리덩후이(李登輝) 총통 정부 시절인 1993년 계엄령이 풀리면서 막을 내렸다. 80대를 바라보는 나이에 귀환한 그는 이후에도 계속 노구를 이끌고 대만 독립을 위한 활동을 벌였다. 2014년에는 대만 독립을 촉구하는 ‘해바라기 학생운동’ 등을 지원하면서 노익장을 과시했다.

그는 독립 성향의 민주진보당 출신의 차이잉원(蔡英文·63) 총통과는 이념적으로 가까울 수밖에 없었다. 2016년 차이 총통 정부가 출범할 때는 총통부의 자정(資政·고문)을 맡아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기도 했다. 차이 총통 역시 최근까지 틈만 나면 그를 문병하기도 했다. 이념적으로는 거의 부녀 관계였다고 해도 좋았다. 그가 사망 직전까지 “대만의 진정한 독립을 위해서는 차이 총통의 재선이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차이 총통의 승리를 기원한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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