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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인터뷰] 나윤경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 “남녀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 줄여야”

[창간 인터뷰] 나윤경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 “남녀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 줄여야”

기사승인 2019. 11. 12.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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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윤경 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 인터뷰
여성의 경력단절로 인한 사회적 매몰비용 높아
남녀 갈등이 결국 조직 생산성에도 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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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윤경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은 6일 진행된 아시아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남녀갈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것이 경제적 효율성을 올리는 길”이라고 밝혔다.
남성과 여성, 두 성별간 갈등으로 소모되는 사회적 비용을 정확히 수치상으로 계량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남녀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분명히 존재하고, 그것이 사회의 생산성을 저해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하 양평원)은 남녀 갈등을 교육으로 해소하고 우리 사회의 소모적 갈등비용을 생산적 자원으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윤경 양평원장은 6일 진행된 아시아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양성평등은 시대적 흐름이자 사명인데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여전히 나타난다. 그 자체로 불필요한 비용들을 발생시키며 사회적 낭비로 이어져 안타깝다”고 지적하며 “양성평등 수준이 지금보다 더 높아지게 된다면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국가 생산성을 더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나 원장과의 일문일답

-양평원이 하는 활동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해달라.
“양평원은 양성평등 교육 콘텐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예전에는 초중학교에서 받았던 성평등교육이나 성인이 받았던 교육이나 별 차이가 없었다. 물론 국민들의 성평등 의식도 과거와 비교하면 상당히 높아졌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핵심은 다양성이다. 그렇기에 교육에도 다양성이 필요하다. 효과적인 교육을 위해서는 맥락과 상황에 맞는 콘텐츠가 필요하다. 다양한 맥락에 맞춘 콘텐츠와 프로그램을 통해 상황별로 가장 적합한 교육을 할 수 있도록 하는게 양평원의 목표다.”

-남성혐오·여성혐오라는 개념이 크게 유행하고 있다. 남혐·여혐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남혐·여혐 개념은 사실 언론과 미디어에서 세운 프레임이라고 본다. 학자적 입장에서 보기에는 그 프레임에 문제가 있다. 역사·문화·경제적 배경을 먼저 이해해야 ‘혐오’라는 개념을 이해할 수 있으며 단순히 ‘싫어한다’는 개념이 혐오가 아니다.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시대에 백인의 흑인 혐오는 성립했지만 흑인의 백인혐오가 성립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흑인이 백인을 좋아해서 혐오가 성립하지 않은 게 아니다. 동등한 위치가 아니었기 때문에 혐오가 성립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 사회의 ‘남혐’은 굉장히 생경한 개념이다. ‘남혐’이든 ‘여혐’이든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위치에 있다’는 전제 위에서 출발할 수 있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물론 언론 등을 통해 일부 여성들이 남성들을 비하하며 몰상식한 표현을 쓰는 모습들이 ‘남혐’이라는 키워드와 결합되어 노출되곤 하지만, 언론에서 다뤄지는 만큼 결코 그것이 사회 주류를 대변하는 현상은 아니다. 언론과 미디어에서 이슈메이킹을 위해 어느 정도 의도성을 가지고 ‘여혐’에 대비되는 ‘남혐’이라는 표현을 내세우며 유통시킨 결과물이자 착시현상일 뿐이다. 결론적으로 ‘남혐’, ‘여혐’이라는 개별 키워드를 사회 전체의 대결구도로 포장하고 갈등으로 비화시키는 언론의 프레임과 생산·유통구조가 무엇보다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과제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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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윤경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은 6일 진행된 아시아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공공부문에서 먼저 성평등 실현을 위해 과감한 시도를 해야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요즘 비혼주의가 젊은 세대들에게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또 출산률이 사상 최저로 떨어져 인구절벽이 현실화 되고 있다. 국가 경쟁력에 매우 큰 악영향이 될 수밖에 없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혼인하면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패러다임은 이미 깨지고 있다. 유럽 사람들은 예전부터 그 고정관념에서 벗어났고 혼인을 안하고 아이를 낳는 사람들도 많다. 비혼주의에 대해 살펴보자면, 여성들이 일단 가부장적 제도와 현실에 대한 반감으로 결혼을 포기한다. 또 결혼하고 나면 자기 삶의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하니까 비혼을 선택한다. 하지만 남성들은 결혼하고 나서도 포기하는 것이 적다. 여성은 결혼으로 인해 삶의 궤적이 크게 달라지지만 남성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것이 슬픈 현실이다.

인구절벽에 대처하기 위해 국가와 정부가 고민해야 할 것은 결혼 없이 아이를 낳더라도 아이에 대한 교육과 성장을 책임질 수 있는 공적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건강가정기본법만 보더라도 이 법에서 ‘가족’은 4인 가족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다양성에 대한 고려가 애초에 없다. 그런 고려가 없으니 개인의 선택지가 극히 제한된다. 정책적으로 가족구성 형태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 가족 형태를 개인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한국처럼 인구절벽이 드라마틱하게 나타나는 상황에서는 그런 가족형태에 대한 상상력이 더욱 발휘돼야 한다.

그리고 청소년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보다 절실하다. 청소년 시기에 가정에서 행복감을 느껴야 나중에 자신 또한 가정을 꾸리겠다는 희망이 생길텐데, 지나친 경쟁에만 내몰리며 가정에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다보니 비혼주의로 쉽게 눈을 돌리는 것 아니겠는가. 얼마 전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보면 전업주부 엄마들이 본인의 능력을 증명해내기 위해 자녀들을 엄청난 경쟁의 장으로 내모는 모습이 나타난다. 드라마 속 그 아이들은 행복하지 않다. 그 아이들이 성장했을 때 자신의 자녀에게 그런 불행을 되물림하지 않게 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이 바로 자녀를 낳지 않는 것이다. 아이를 낳으면 보조금 주고 난임부부에게 시술 지원하는 등의 방편들은 인구절벽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 방안은 될 수 없다.”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많이 활발하다. 그럼에도 ‘유리천장’이라고 표현되는 여성의 사회활동 장벽이 아직도 심각한 수준이라고 보는가.
“상당히 뿌리깊은 여성차별의식이 사회 곳곳에 여전히 남아있다. 대부분의 조직문화도 여전히 남성적 문화로 돌아가고 있고 남성적 분위기를 기대한다. 예를 들어 ‘가정적이고 따뜻한 조직문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여성에게 기대하는 것이지 남성에게 기대하는 문화가 아니다. 성차별적 고정관념과 인식이 여전히 바뀌지 않은 것이다. 그걸 깨는 것은 정말 어렵다.

교육을 아무리 한다고 해도 의식의 밑바닥에 남성중심적 사고가 깔려 있는 이상 그것을 뒤집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정치·경제·미디어 등 사회의 각 분야가 남성중심적으로 돌아가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대기업에서 여성임원이 나오는 것이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관료 사회 또한 마찬가지다. 공공조직에서부터 과감한 변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결국 조직은 효율을 내기 위한 방향으로 구성되고 돌아가는 것 아닌가.
“효율성도 필요하지만 성차별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어마어마하다. 그 비용 자체가 비효율로 이어진다. 모 기업의 예를 들면 그 기업은 여성고용에 매우 적극적이다. 그 기업의 역대 회장들은 모두 해외에서 공부했고 성평등 의식이 매우 높다. 하지만 정작 기업 간부들이 그 사고 수준에 맞추지 못하고 성차별적 관행 및 조직문화에 매몰되어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성차별에 대한 징벌적 시스템을 갖춰서라도 이러한 비효율적 현상을 해소해야 한다고 본다. 특히 여성들의 경력이 단절됨으로써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 매몰비용이 매우 크다. 그것을 절약할 수 있다면 경제적으로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한국사회의 사교육 열풍도 결국 여성들이 ‘사회적 존재’로서 유지되지 못한 채 ‘개인적 존재’로만 남아있게 되는 것에서 기인한 특이현상이다. 개인적으로는 ‘모성적 생산성’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자녀들에게 사회적 경쟁력을 더욱 갖추게 하기 위한, 그리고 자녀의 교육 성취도를 통해 스스로의 존재 의의를 어떻게든 증명하려는 노력인 것이다.”

-조직 내 젠더갈등이 교육을 통해 해결된 사례가 있다면 설명해달라.
“양평원에서 교육청을 다니면서 교사들을 만난다. 교육청이 시행하는 교사들에 대한 성인지 교육은 만족도가 매우 낮았다. 그런데 양평원이 개발한 콘텐츠로 교육을 하니 만족도가 매우 높아졌다. 이것이 바로 교육의 맥락이라는 것이다. 평면적인 콘텐츠는 만들기는 쉽지만 효과가 없다. 상황과 맥락을 고려한 입체적 콘텐츠를 만들어야 진정한 교육 효과가 있다.”

-양평원이 생산하는 콘텐츠는 어떤 입체성을 가지고 있는가.
“평원에서 교육청을 다니면서 교사들을 만난다. 기존에 교육청이 교사들에 대해 시행하는 성인지 교육은 만족도가 낮은 편이었다. 그런데 양평원이 현직 교사 그룹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그들의 맥락과 상황에 맞춰 개발한 콘텐츠들로 교육을 하니 이전에 비해 만족도가 매우 높아졌다. ‘교육의 맥락’이 중요하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평면적인 콘텐츠는 만들기는 쉽지만 교육적 효과가 아무래도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상황과 맥락을 고려한 ‘입체적 콘텐츠’를 만들어야 진정한 교육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초등학생을 교육대상으로 본다면, ‘집안일은 누가 해요?’라는 질문에 지금까지 교과서에서는 가사노동 전담자로서의 엄마가 앞치마 입은 모습, 청소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그쳤다. 하지만 그런 단편적인 제시 방식은 오히려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고착시킨다. 그래서 양평원에서는 학생 개개인의 다양한 사고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했다. 예를 들어 ‘이럴 때 어떻게 입어야 할까요?’라는 공통 질문을 ‘계곡 캠핑’, ‘교실 대청소’, ‘수학여행’, ‘체육 수업’ 등 다양한 상황에 각각 대입해보며 다양한 종류의 복장 예시들을 제시한다. 이 장면에서 학생들은 무엇이 옳다 그르다를 즉각적으로 선택하고 결정내리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대한 이해와 나 자신에 대한 존중, 그리고 각자의 개성을 바탕으로 ‘나에게 적합한 옷차림은 무엇일까?’를 탐색하고 서로 이야기 나눠봄으로써 더욱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방법을 스스로 찾아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정부와 국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은.
“공공·민간 부문을 막론하고 성평등을 실현하지 못하고 치루게 되는 사회적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을 꼭 말씀드리고 싶다. 예컨대 북유럽과 같이 성평등 수준이 높은 나라라면 이 비용을 보다 생산적인 다른 곳에 쓸 수 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그간의 사건사례들만 살펴 보더라도, 성차별·성폭력으로 인해 개별 조직이 치러야 하는 비용이 상당함을 경험적으로 알 수 있지 않은가. 성차별·성폭력 등 조직의 병폐는 조직의 사기와 유기성을 떨어뜨려 결국 조직의 생산성 저하로 연결된다. 양성평등은 시대적 흐름이자 사명인데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여전히 나타난다. 그 자체로 불필요한 비용들을 발생시키며 사회적 낭비로 이어져 안타깝다.

공직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성평등’에 대한 공직사회 구성원 각자의 신념은 물론 개인의 자유의 영역에 속한다. 하지만 공공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좀더 넓은 안목에서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국민들께서도 양성평등 수준이 지금보다 더 높아지게 된다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비용이 줄어들고 국가 생산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을 잘 인지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윤경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은...

<학력>
1984년 중앙대부속여자고등학교 졸업
1988년 연세대 교육학과 졸업
1995년 미국 위스콘신주립대학교 성인여성교육 석사
1998년 동 대학원 페미니스트 페다고지 박사

<경력>
2002년~현재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 교수
2012~2014년 연세대학교 성평등센터 소장
2018년~현재 법무부 성희롱·성범죄 대책위원회 위원
2018년~현재 국방부 양성평등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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