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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조화석습(朝花夕拾)

[칼럼] 조화석습(朝花夕拾)

기사승인 2019. 11. 22.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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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변호사 사진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고문 / 숙명여대 석좌교수
낙엽이 흩날리지 않는 가을 길녘을 걸어본 적 있는가. 거리가 말끔한 것은 좋지만, 계절의 정취가 사라진 듯한 허전함이 가득 밀려온다. 낙엽은 얼마쯤 그대로 두는 것이 좋다.

어지러이 나뒹구는 낙엽과 함께 명상의 뜨락으로 이끌리는 것은 가을의 영혼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그래서일까, 루쉰(魯迅)은 ‘조화석습(朝花夕拾)’이라는 글을 남겼다. 아침에 피었다가 떨어진 꽃잎을 곧바로 쓸어내지 않고 해가 진 뒤에야 거둔다는 뜻이다.

찬란한 아침과 적막한 저녁 사이에 놓인 갈등을 두루 껴안아 온 하루의 값진 의미를 되짚어가는 반성적 성찰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낙엽을 쓸면서 우리는 마음에 쌓인 애환의 찌꺼기를 함께 쓸어낸다. 그것은 하루의 삶 전체를 관조(觀照)한 뒤가 아니면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 녘에 날개를 편다는데, 지혜의 깨달음은 열정의 한낮을 지나고 명상의 황혼 녘이 돼서야 비로소 찾아오는 것일까. 감성의 광풍이 몰아치고 지나간 뒤에야 이성의 더듬이가 겨우 꿈틀대기 시작한다.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의 상징동물인 부엉이는 낮에는 사물을 보지 못하고 해가 진 뒤에야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주맹증(晝盲症) 환자다. 게다가 무리생활을 하지 않고 홀로 밤하늘을 떠도는 외로운 존재다. 부엉이의 주맹증은 역사적 사건의 폭풍우가 지나간 다음에야 뒤늦게 그 사건의 참 의미를 깨닫곤 하는 우리네의 아둔한 역사의식과 꽤 닮았다.

열정의 한낮은 분주한 군중의 시간, 명상의 저녁은 고요한 영혼의 시간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황혼 녘에 홀로 날개를 펴는 것은 대중의 감성과 고독한 이성 사이에 ‘거리를 두는 것’이다.

조화석습도 사물과 관찰 사이의 ‘거리 두기’다. 사실이나 현상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즉각적·감성적이어서 맹신 아니면 혐오의 양극단으로 흐르기 일쑤다. 대중의 견해와 다른 신념에는 적대적 광기를 내뿜는다. 엷은 감성에 휩싸인 대중의 집단의식만 으르렁거릴 따름이다. 객관적 상황 속에 주체적 인격으로 서기 위해서는 사실이나 현상이 빚어내는 갈등과 모순을 균형 있게 이해하고 넉넉히 품어 안는 이성의 혜안이 필요하다.

한 발짝 물러나 삶 전체를 고요히 묵상하는 성찰과 참회의 눈길 말이다. 조화석습… 아침에 떨어진 꽃을 곧바로 쓸어내지 않고 온종일 기다렸다가 저녁에야 거두는 뜻은 오만과 독선에 찌든 감성의 찌꺼기를 낙엽 쓸듯 털어내기 위함이 아닌가.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황혼 무렵에 이성의 날개를 펴는 것은 한낮의 열정보다 더 치열한 황혼 녘의 명상에 잠기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렇게 온 하루의 삶을 겸허히 되짚어 내일의 한낮을 해맑은 이성으로 맞이하기 위함이 아닌가. 저녁이 오고 밤이 깊어가도 좀처럼 펼칠 줄 모르는 이성의 날개, 주맹증에 야맹증까지 겹친 합병증의 부엉이보다 더 슬픈 존재가 있을까.

옛 유대인들은 가을의 풍성한 수확으로 흥청거리지 않았다. 도리어 안락한 집을 떠나 광야에 초라한 장막을 치고 들어앉아 고난의 옛 시절을 회상하곤 했다. 넘치는 곳간을 뒤로 한 채 허허로운 들판에 나앉은 저들의 삶의 자리는 지나간 역사를 통해 오늘의 삶을 성찰하는 참회의 자리였다. 마치 어버이의 무덤을 찾아 공손히 머리 숙인 가을 사람의 모습이다.

우리는 그 성찰에 게을렀다. 선인(先人)들이 물려준 풍요와 번영을 누리면서, 그들이 고난을 무릅쓰고 이룩한 성취의 역사를 비웃지 않았던가. 자유를 방종으로, 민주주의를 포퓰리즘으로 더럽히지 않았던가.

아직 성숙한 가을의 인격이 되지 못한 탓이려니… 깊어가는 가을, 여름내 화려했던 꽃들은 시들어 나뭇잎으로 떨어지지만, 땅속 깊이 틀어박힌 뿌리는 그 낙엽을 거름 삼아 겨우내 쉬지 않고 생명의 젖을 빨아올리며 새로운 열매를 잉태할 것이다. 아침에 떨어진 저 나뭇잎들을 황혼 녘까지 그대로 둬야겠다. 흩날리는 낙엽은 성숙의 밑거름일 터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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