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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먼 아시아인권재판소, 가까운 아시아인권연구소

[칼럼] 먼 아시아인권재판소, 가까운 아시아인권연구소

기사승인 2019. 12. 23. 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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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찬식 주 코스타리카 한국대사
코스타리카, 미주인권재판소·인권연구소 보유 가치외교 선도
미주·유럽·아프리카 비해 아시아 인권기구 발전 늦어
한국 주도, 아시아인권연구소 우선 설립 제안
윤찬식
윤찬식 주 코스타리카 한국대사
미주인권재판소와 미주인권연구소를 찾을 때 마다 코스타리카는 참 매력적인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작은 나라임에도 유엔인권 최고대표 창설을 주도하는 등 국제무대에서 가치외교를 선도해왔다.

올해는 산호세 협약으로 알려진 미주인권협약 채택 50돌이자 협약에 따라 탄생한 미주인권재판소 설립 40주년이다. 코스타리카의 두 국제기구 관계자를 만나면 아시아 인권체제 필요성과 가능성, 접근방식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저항이 많을 겁니다”라고 이들은 내다본다.

현재 미주와 유럽·아프리카에 지역인권재판소가 있다. 오랜 논쟁과 법적·제도적·외교적 노력의 결과다. 개인이 국내적 구제 절차를 밟았지만 만족하지 못한 경우에는 요건을 갖춰 인권재판소에 청원권이 인정된다.

◇ 미주·유럽·아프리카 인권기구 오랜 역사...아시아는 갈 길 멀어

미주대륙의 인권국제기구는 인간의 권리의무에 관한 미주선언(1948), 미주인권위원회(1959), 미주인권협약(1969), 미주인권재판소(1979), 미주인권연구소(1980) 순서로 발전해왔다. 미주인권위원회·재판소·연구소는 지역인권의 트로이카로 불린다. 그중 인권연구소는 회원국 공무원 등에 대한 인권 교육 훈련과 전문가 포럼, 연구보고서 발간, 기술 협력에 기여하고 있다. 인권연구소는 재판소가 인권교육의 소중함을 스스로 절감하면서 탄생했다.

유럽에서는 유럽평의회가 유럽인권협약(1950), 유럽인권위원회(1954), 유럽인권재판소(1959) 순으로 제도화됐다. 인권위원회는 1998년 폐지되고 대신 회원국에 권고·보고서 제출 등 독립적·비사법적 권한을 행사하는 인권대표실이 도입됐다. 아프리카는 아프리카인권헌장(1986), 아프리카인권위원회(1987), 아프리카인권재판소(2006) 체제로 구성돼 있다.

반면 아시아의 전체적인 인권보장기구나 인권체제는 아직 없다. 문화와 언어, 역사, 정치체제 차이 때문으로 판단하고 있다.

소지역별 시도는 있었다. 아랍연맹은 2008년 아랍인권위원회와 아랍인권헌장을 채택하고 2013년 아랍인권재판소 창설협정(미발효)을 맺었다. 개인 청원권은 인정되지 않는다. 아세안의 경우 정부 간 인권위원회(2009)와 아세안인권선언(2012)을 채택했지만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 아시아 인권연구소부터 설립 제안…인권재판소 전초기지

최근 우리나라가 아시아인권재판소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헌법재판소가 설립 제안도 했었다. 하지만 진전은 없고 아시아지역도 무관심한 편이다. 한국은 아직 차별금지법도 없고 국제인권법의 헌법적 수용 제도와 국내재판에서의 원용 소식도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재판소에 대한 열망은 환영해야 한다. 아시아에게는 미주 모델이 어떨까. 이런 로드맵을 생각해본다.

첫째, 학자들의 정례포럼부터 시작한다. 소규모라도 상관없다. 둘째, 포럼주제와 방향은 비교인권체제 연구다. 아랍·아세안인권위원회, 유럽인권대표실, 미주인권연구소와도 교류한다. 다람쥐 쳇바퀴식 국가별 인권정책과 사례 발표로는 답이 없다. 셋째, 한국 정부가 주도해 관심국가를 결성한다.

넷째, 재판소에 앞서 독립적 싱크탱크로서의 아시아인권연구소부터 설립한다. 연구소는 덜 예민한 사안이다. 코스타리카처럼 우리 정부의 사무소 제공 등이 도움이 될 것이다. 공감하는 국가부터 가입시켜 국제기구로서의 면모를 갖춘 후 인권 협약과 재판소 설립 프로세스의 마중물 역할을 하게 한다. 미주인권연구소 사무총장도 이 방식을 권하고 싶다고 했다.

아시아·태평양 차원의 국가인권기구포럼과 헌법재판소연합, 대법원장회의 등을 계기로 이런 그림을 제시해 봄직하다. 다만 분절화를 막기 위해 우리 유관기관끼리 협력할 필요가 있다. 종국적으로는 협정과 기구설립 문제이기에 외교적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인류 보편적 가치의 주도는 좋지만 마음으로만 들녘의 밭을 갈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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