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칼럼]아카데미시상식서 봉준호감독이 마틴 스콜세이지를 언급한 이유

[칼럼]아카데미시상식서 봉준호감독이 마틴 스콜세이지를 언급한 이유

기사승인 2020. 02. 13. 10:41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이황석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영화제 시상식에서 4관왕에 올랐단 소식으로 온 매체가 떠들썩하다. 그런데 사실 아카데미상은 세계 3대 영화제에 들지 않는다. 미국의 아카데미상은 그간 영어권 영화들을 대상으로 치러져 왔다. 비영어권 영화가 국제장편영화상(기존의 외국어영화상) 외에 각본상과 작품상 그리고 감독상을 받은 것은 이례적인 것을 넘어 그동안 배타적인 입장을 취해왔던 아카데미의 입장에선 파격 그 자체다. 가히 혁명적이라는 말도 과장이 아닌 듯싶다.

이쯤 되면 많은 이들이 오해를 한다. 아카데미영화제가 세계 3대 영화제에 비해 역사가 짧다고 이해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아카데미상은 올해로 92회다. 협회가 1927년 창설됐으니 앞으로 7년 후엔 100주년 행사소식으로 세계영화계에 한바탕 난리가 예상된다. 반면 2019년을 기준으로 세계 3대 영화제인 칸영화제는 72회(1946년 개최), 베를린영화제는 69회(1951년 개최), 베네치아영화제는 76회(1932년 개최)다. 상대적으로 개최 시기가 빨랐던 베네치아영화제의 경우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영화제가 열리지 않았던 적이 있으며, 1970년대엔 영화제가 전격 축소돼 비경쟁으로만 운영되다가 1980년에 다시 영화제가 재개되는 등 부침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전란을 피할 수 있었던 미국의 아카데미는 최초 수상식이 개최된 1929년 이후로 매년 봄이면 빠짐없이 영화제를 열어왔다. 때문에 그 역사가 다른 영화제들에 비해 월등히 길다.

그럼에도 아카데미가 세계 3대 영화제에 들지 못한 이유는 배타성에 있다. 배타적 태도는 오만함에서 온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정치, 경제에 이어 문화의 종주국이 되고자 노력을 경주했다. 특히 뉴욕 현대미술관(MOMA)을 앞세워 CIA는 문화예술의 헤게모니를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기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그러나 영화시장은 이미 전쟁 이전부터 미국이 세계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990년대 우리나라에 한참 이슈화됐던 스크린 쿼터제는 이미 유럽에선 1920년대에 시행했을 정도로 할리우드영화의 위상은 하늘을 찔렀다. 이같은 상황은 이후에도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현재도 미국영화는 여전히 세계시장 주류다. 어쩌면 그간 아카데미가 오만한 태도로 일관할 만한 환경은 충분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칸과 베를린영화제 개최는 각국 젊은이들의 영혼을 잠식해가는 미국영화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프랑스와 독일정부 차원의 지원에서 이뤄졌다. 베네치아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 이전 무솔리니에 의해 독려된 영화산업은 패전 후에도 국민적 자긍심을 회복하기 위해 문화적 헤게모니를 되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활용된다. 유럽은 일종의 연대 방식에서 해결책을 찾는다. 소위 제 3세계의 영화들을 발굴하고 할리우드와 다른 문법을 구사하는 다양한 영화들을 자국의 영화제를 통해 소개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들 영화들에서 보여준 탈문법적인 다양한 시도들은 표준화된 할리우드 언어를 극복하고 예술로서 영화의 영향력과 표현 영역을 확장시켰다.

봉준호 감독은 시상식에서 영리하게도 마틴 스콜세이지를 호명했다.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가장 세계적인 이야기’라는 스콜세이지의 과거 인터뷰를 상기시키고 그에게 많은 것을 배운 영화학도였다고 말함으로써 영광을 노감독에게 돌렸다. 거장에 대한 진심어린 경의와 존경을 담은 수상 소감이다. 그러나 봉준호의 덕담엔 그 행간을 읽어야 한다. 사실 스콜세이지의 영화는 아카데미에서 오랫동안 외면돼 왔다. 앵글로색슨과 유대계가 주류인 할리우드에서 변방인 라틴계 이탈리아의 날 것 그대로인 ‘폭력의 미학’을 구사해왔던 거장을 애써 외면했던 아카데미에 대해 뼈 있는 농담을 한 것처럼 보인다. 바로 봉준호가 아카데미를 로컬영화제라고 말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의 수상 소감에도 ‘봉테일’이라는 별명답게 디테일이 느껴진다. 역시!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