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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사모펀드, 필요악인가 ② 84조 불어난 PEF의 ‘두 얼굴’] ‘M&A 큰 손’ 토종 PEF…한국판 엘리엇? 해결사?

[토종 사모펀드, 필요악인가 ② 84조 불어난 PEF의 ‘두 얼굴’] ‘M&A 큰 손’ 토종 PEF…한국판 엘리엇? 해결사?

기사승인 2020. 02. 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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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vs KCGI 등 3자 주주연합(조현아·반도건설 등)’. 오는 3월 주주총회를 앞둔 한진그룹의 경영권 싸움 대결 구도다. 행동주의 토종 사모펀드(PEF) KCGI는 현 체제의 경영 실패를 주장하며 압박을 수위를 높이는 반면 조 회장 측은 투기 자본이라고 맞선다. 최근 양자 간 지분율은 ‘박빙’이다. 자칫 사모펀드에 경영권을 잃을 우려까지 나온다.

최근 국내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의 기세가 매섭다. 오너 리스크 등으로 불투명해진 지배구조를 바꾸고, 일반 주주의 이익을 저버린 기업에 경영진 인사를 요구하거나 배당 확대와 자사주 매입·소각 같은 주주권 행사를 강하게 요구한다. 재벌개혁이라는 화두와 맞물려 몸집이 커진 사모펀드에 감시자 역할을 기대하는 시장의 바람이 한층 커졌다. 그룹총수의 영원불변할 것 같은 오너십도 사모펀드의 힘에 무너질 수 있다는 얘기다.

PEF는 기업 지분 인수(의결권 주식 10% 이상) 후 직접 경영에 뛰어들어 기업가치를 키운 후 되팔아 차익을 남기기 위해 조성한 펀드다. 지난해 출자액만 84조원을 돌파, 기업 M&A(인수합병) 시장의 ‘큰 손’으로 부상했다. 최근 경영난에 빠진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경영효율화 등 ‘구원투수’로서 긍정적 측면이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삼성과 현대차를 공격했던 미국계 행동주의 사모펀드인 엘리엇처럼 수익 극대화에 치중한 ‘기업 사냥꾼’이란 부정적 인식도 여전히 존재한다. 전문가들은 모험자본 공급자인 토종 PEF가 기업의 재무적 파트너로서 경쟁력을 갖춰 투자수익 창출을 도모해야 하며, 이를 위해선 불필요한 진입규제 해소 등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PEF 출자 약정액은 84조2767억원으로 전년(74조5244억원) 대비 13% 증가했다. 사모펀드 규제완화가 이뤄진 2015년 말(58조5180억원) 이후 4년 새 44% 증가했다. 같은 기간 PEF 펀드 수는 316개에서 지난해 721개로 2.3배 불어났다.

토종 PEF 시장 초기 성장 요인은 규제 완화다. 론스타에 데인 정부는 2004년 외국계 벌처펀드(부실기업을 정리하는 회사나 그 자금)에 대항할 수 있는 토종 PEF 육성을 법제화했다. 이후 2015년 PEF 설립 시 등록제에서 사후보고제로 전환했고, 자금 모집 규모도 개인 10억원·법인 20억원 이상에서 3억원 이상으로 하향 조정했다. 이에 따라 신규·소규모 중심의 신설 PEF 수가 가파르게 증가했다.

또,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들이 저금리와 경기불황에 대응해 대체 투자를 늘린 데 기인했다. 전체 PEF 약정액 대비 국민연금의 투자규모는 2018년 6월 말 기준 28%로 국내 PEF 시장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다. 재벌에 대한 규제 강화로 대기업들이 오너 3세 지분 정리나 핵심 사업 외의 자회사를 PEF를 통해 처분하려는 수요 증가도 영향을 미쳤다.

업력을 쌓은 국내 PEF는 최근 몇 년간 M&A 시장에서 굵직한 성과를 냈다. 기업 가치를 끌어올려 엑시트(자금회수)에 성공했다. MBK파트너스는 지난해 코웨이를 웅진그룹에 1조6831억원에 팔았고, 대성산업가스를 호주 맥쿼리그룹에 2조5000억원에 매각했다. IMM PE도 중견 의류기업 세아상역에 태림포장을 7300억원에 팔았다. 사모펀드의 기업 가치 제고 전략으로는 볼트온(유사 업체와 M&A로 규모 확대) 전략, 경영 효율화, 외부 인재 영입, 해외 진출 등이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국내 자본시장에서 사모펀드는 자본 차익만을 노리는 이미지가 강했지만, 최근에는 외형이 커지고 투자 노하우가 쌓이면서 산업구조 재조정 과정의 윤활유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화려함 속엔 그늘도 있다. 실적 악화나 투자 부진 등 실패 사례도 적지 않다. 토종 신발·스포츠 브랜드 ‘르까프’를 보유하고 있는 패션 기업 화승은 지난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산업은행과 토종 사모투자펀드 운용사인 KTB PE가 이끄는 사모투자합자회사에 인수됐지만, 별다른 투자 없이 기존 중저가 제품에 안주해 수익성이 살아나지 않았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PEF=먹튀(먹고 튀는) 자본’에 대한 우려도 아직 남아 있다. 화승이나 쌍용양회, OB맥주, 오렌지라이프 등은 사모펀드에 인수된 뒤 사업정리와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한진그룹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는 행동주의 펀드 KCGI를 향한 일부 시선도 다르지 않다. 강성부 대표는 지난 20일 기자 간담회에서 엘리엇과의 차이점에 대해 “주요 펀드의 만기가 10년이 넘는 등 ‘타임 호라이즌(참여 기간)’이 굉장히 길고 장기투자로 기업 체질을 개선해 기업가치가 올라간 부분에 대해 정당한 이익을 얻는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가 (한진그룹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는데, 나는 이전 LK파트너스 시절부터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토종 PEF 시장은 성장할 전망이다. 시장에서는 올해 CJ와 두산, 롯데, 금호그룹이 추가로 M&A 시장에 매물을 내놓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조(兆)’ 단위 대형 매물인 푸르덴셜생명 인수전도 본격화 한 상태다. 그러나 PEF 시장의 성장과 성숙을 위한 과제들은 산적하다. 전문가들은 다양한 PEF가 경쟁할 수 있도록 규제 완화와 인재 양성 등 질적 성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또, 대형 연기금들의 자금에 의존하지 말고 해외 투자자(LP)들을 적극 유치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금융당국도 자본시장 활성화 차원에서 지난 2018년 사모펀드 규제완화 법안을 추진했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에는 사모펀드의 10% 지분보유 의무, 의결권 제한 등 규제를 푸는 내용이 담겼다. 법이 시행되면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 외국계 PEF와의 역차별도 해소될 전망이다. 다만 해당 법안은 국회 계류 중이며, 최근 사모펀드 관련 사태로 규제 강화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기본 방향은 변함 없고, 국회 논의를 지켜봐야 한다”며 “(법안과 별도로) 3월 중 최근 문제가 된 헤지펀드를 중심으로 한 구체적 제도개선방안을 확정·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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